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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학교'
'달팽이 학교'

시 한 편은 동화 한 편만큼의 이야기가 압축된 파일과 같다. 이 압축 파일을 클릭하는 일은 언제나 무한한 설렘을 준다. 설렘과 치유를 한꺼번에 체험하게 하는 책 '달팽이 학교'는 제목에서부터 궁금증을 유발한다.

 '달팽이'와의 인연은 매우 깊다. 2000년 10월 한 월간 문예지를 통하여 시인이란 이름표를 달게 한 등단시의 제목이 '달팽이'였다.

 이런 인연 때문일까? '달팽이 학교'는 내 마음을 자극했고 이 책을 찾기 위해 서점으로 길을 나서게 했다. 처음 읽어도 재미있고 두 번 읽어도 재미있고 자꾸 읽어도 재미있다. 이런 책을 만날 수 있다는 건 독자로서 참 행복한 일이다. 
 
# 달팽이 학교 
 
달팽이 학교는
선생님이 더 많이 지각한다.

느 릿 느 릿
 
할아버지 교장 선생님이 가장 늦는다.
 
그래서 실외 조회도 운동회도
달밤에 한다.
 
이웃 보리밭으로 소풍 다녀오는데
일주일이 걸렸다.
 
뽕잎 김밥 싸는 데만
사흘이 걸렸다.
 
교장 선생님은 아직도
보리밭 두둑 미루나무 밑에서
보물찾기를 한다.
 
교장 선생님은 이제 지각하지 않는다.
 
교장실 옆 화단으로 집을 옮겼다. 
이삿짐을 싸는 데만 한 달이 걸렸다.
 
칸나 꽃 빨간 집이 예뻤는데
이사하는 동안에 초록 집이 되었다.

화장실이 코앞인데도
교실에다가 오줌 싸는 애들이 많다.
 
전속력으로 화장실로 뛰어가다가
복도에 똥을 싸기도 한다.
 
모 두 모 두

풀잎 기저귀를 차야겠다.

성환희 아동문학가
성환희 아동문학가

'달팽이 학교'는 시와 그림이 만나서 하나의 완벽한 세계를 표현한다. 시 한 편만으로도 충분히 큰 즐거움을 준다. 그림을 읽으며 느끼는 아름다움과 행복감도 매우 크다. 따로따로 읽어도 좋고 함께 읽어도 좋은 게 시그림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 

 읽기란, 작가의 의도를 벗어나지 않기도 하고 상반된 상황에서 시작되기도 한다. 마음대로 상상하고 마음대로 읽기를 권하고 싶다. 정답이 정해지지 않은 읽기의 세계야말로 발전가능성을 향해 열려있는 무한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아무도 가닿지 않은 무한과 미지의 세계는 독자 자신의 것이다. '달팽이 학교'는 상상하게 한다. 상상력은 곧 창의력이다. 

 작년에 두 개의 국가자격증을 취득했고 올해 또 다른 자격시험을 준비했다. 딱 3주의 기간이 있었다. 꽤 두꺼운 책 한 권을 틈틈이 정독한 후 시험에 응시했는데 단 한 문제 차이로 합격하지 못했다. 나를 지나간 올해 첫 행운이 나에게 남겨 준 교훈에 감사한다. 천천히 가자. 달팽이처럼, 달팽이답게! 
 '달팽이 학교'에 입학하고 싶다. 위풍당당 첫 발을 내딛고 싶다. 걷다보면 좀 더 깊어지리라.  아동문학가 성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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