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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혁 취재본부장

중견기업에 잘 다니던 친구가 2019년 여름 돌연 사표를 던졌다.

어느 날 출근길이 공허했고, '내 삶은 무엇인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불현듯 떠올랐다 했다. 나이가 더 들어 무엇이든 할 수 없게 되기 전에 '사장님'이 되기로 작정한 친구는 자영업의 반열에 스스로 뛰어들었다.

일상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한 잔 술로, 맛있는 음식으로, 다정한 말 벗으로 위안을 주는 사장님이 되겠다며 퇴직금을 쪼개 선술집 요리를 배웠고 성남동 번화가에 가게도 얻었다. '곧 오픈하니 매일 와서 귀찮게 하지 말아라'며 큰소리 친 때가 2020년 2월. 
 
코로나19로 온 사회가 어안이 벙벙할 때다.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재앙'에 어찌할 바를 고민하다 결국 어렵사리 가게 문을 열었지만, 상상 속에서 가게를 가득 메웠던 손님들은 마스크를 낀 채 무심하게 휙휙 지나칠 뿐이었다.  
 
퇴직금을 야금야금 가게에 쏟아붓고 나서는 결국 안주를 만들어 포장해 배달을 보낸다는 승부수를 띄웠다. 비슷비슷한 업체들이 너도나도 배달의 민족으로 똘똘 뭉친지 한참이 지난 시점이었다. 
 
그러나 공룡 기업이 되어버린 배달앱 업체들은 늦깎이 '사장님'의 가맹점 접수 문의를 “한 달 이상 기다려야 한다"는 배짱으로 응수했다. 이제 40대 후반으로 치닫는 가장은 결국 눈물을 보이고야 말았다. “후회는 없지만, 걱정은 앞선다"는 친구의 눈물 젖은 넋두리에 나도 울고, 내 지갑도 울어야 했다. 
 
코로나 1년. 주변에는 딱한 사정들이 넘쳐난다. 난데없는 설상가상에 일상 속에서 늘 마주치는 사장님들은 매일 눈물을 삼키고 있다. 
 
5명 이상은 안된다, 9시 이후에는 포장만 된다니 음식점이나 주점 사장님들의 선택지는 당분간 배달뿐이다. 음식점, 주점들이 저마다 배달업에 뛰어드니 제 살 깎아먹는 경쟁판만 치열해졌다. 
 
최근 울산시가 추진하려는 '배달·픽업 서비스'에 온 정성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고민하고 연구하고, 어련히 알아서 하셨을까마는 수개월 째 학교를 가지 않아 매일 배달앱을 쓰고 있는 중2 딸아이의 말을 듣고 나니 걱정도 앞선다. “배민, 요기요와 붙어봐야 승산이 없다. 할인쿠폰도 빵빵하게 줄 수 없을 것이고, 앱 구동 자체가 불편할 게 뻔하다"는 논리다. 실제 막대한 자본력과 그동안 쌓아온 기술적 노하우로 24시간 관리 시스템을 돌리고 있는 소프트웨어적인 부분은 경쟁이 애당초 되질 않겠다. 
 
소상공인에게 뜯어낸 수수료를 바탕으로 다양한 할인 쿠폰을 살포하는 배포도 울산시가 감당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차라리 지역의 소상공인을 돕자는 '착한 소비' 범시민 캠페인을 벌이면서 울산지역 사회 여론을 형성하는 것이 더 주효할 수 있겠다.  
 
울산페이 가맹점을 기반으로 적정 수준 이상의 가맹점을 확보한 뒤, '어려운 사장님들의 눈물을 함께 닦아주자'는 대 시민 캠페인을 전개해 보는 것이 어떨까 싶다. 주문이나 결제와는 별개인 배달 시스템에 대한 공공적 접근도 고려해 볼 만하다. 배달 대행 업체들은 현재 배달 앱과는 완전 별개로, 영세한 고용환경과 상당히 위험한 노동환경에 노출돼 있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일정 구역을 설정한 뒤 공공인력(실버세대 등)을 투입하는 방안도 심각하게 고민해 볼 수 있다. 특정 사회적기업과 협업 관계를 설정해도 좋을 것이다. 
 
느닷없이 사장님이 되어 버린 친구 때문에 덩달아 고민이 깊어진 요즘, 울산시의 적극적인 행정을 자랑하며 '친구야 힘내라'는 메시지를 전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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