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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 생가

신필주

옥도미를 사기 위해 시장을 오르다가
오른편 언덕 위에
문득 발견한 이중섭 생가

갓 이엉을 얹은 노란 초가지붕 아래
잘 닦인 앞마루에 앉으니
낮은 돌담 너머 서귀포 앞바다가
그림 한 폭으로 펼쳐진다
아이들과 게가 노는 풍경이 어린다

불우했던 천재 화가의
애타는 그리움은
현해탄을 건너
여기 서귀포 바다까지 닿았으리
바다는 아득하다
더 아득한 바다가
천재화가의 그림 속에
불멸의 영혼으로 살아있다

△ 신필주: 울산 출생. 이화여대 국문과 졸업. 1980년 '현대문학'에 박두진 시인 추천으로 작품 활동 시작. 시집 '아버지' 외 7권. 산문집 1권 창릉문학상, 울산문학상, 울산시 공로상, 울산시장상, 울산광역시 문화상 등 수상. 울산문인협회, 한국문인협회, 이화여대문인회 회원.

시인의 바다 기행시집 '후포'에 있는 '이중섭 생가'의 작품은 꾸밈보다 백지에 보이는 것 차례로 그림을 그리듯 여유로운 시선으로 따라 가며 읽을 수 있다.

마치 이중섭의 은지화 속 물고기와 노는 아이 같이 시가 환하게 보인다. 출발은 제주의 맛난 옥도미였는데 어쩌다 '이중섭 거리'에 들어선 것이다. 그때 '이중섭 생가'라고 쓴 팻말 앞에서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발걸음이 멈추게 되었을 것이다. 이중섭의 남루한 시간들이 고스란히 있는 좁은 방이었지만 네 식구의 마지막 안식처였던 곳으로 시인은 먼 시간 여행을 떠났을 거다.

가난한 삶보다 은종이의 반짝거림처럼 절절한 사랑이 빛났을 그 시간 속으로 시인의 여행은 멈추지 않았다. 아이들과 게를 잡던 바다, 이중섭의 엽서 그림 '서귀포의 환상' 속으로 시인의 걸음은 충분히 여행의 즐거움에 도취되었을 것이다.

40세로 요절한 천재화가 그리고 야마모토 마사코(이남덕)와의 사랑, 예술에 대한 순수함으로 초래한 죽음, 천재적인 영감이 넘치는 그림 등 신화적인 삶을 살다간 이중섭과 조우로 시인의 여정은 지루하지 않게 계속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도순태 시인
도순태 시인

그리고 일본으로 떠난 부인, 아들과 이별 후 '나의 귀중하고 귀여운 남덕군'으로 시작하는 아내에게 보낸 편지와 '사랑하는 태성, 태현' 두 아들에게 보낸 이중섭의 편지도 생가 안으로 들고 와 '불우했던 천재 화가의 애타는 그리움'을 시인의 형식대로 그림을 그리는 여행이었으리라.

시인의 바다 기행시 중 여러 편의 지명 따라 떠나고 싶었다. 그 중 '이중섭 생가'를 좋아하는 이유로 시인의 제주기행에 편승해서 잠시 돛을 내렸다.
오리골에서 종종 찾아 왔던 신필주 시인의 엽서, 이중섭 화가처럼 엽서 쓰길 즐긴 시인의 시간이 기억너머 머문다. 도순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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