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저학년 여름 방학 때의 일이다. 읍내 오일장을 다녀오시던 어머니 시장바구니 속에 새끼강아지 한 마리가 더위에 지쳐 축 늘어져 죽은 듯이 잠을 자고 있었다.
"여름 장날에 해삼 사 들고 오면 다 녹아뿐다 카디만 강새이도 다 녹아뿌겠다. 네가 그렇게 소원하던 강아지 잘 키워보거라. 물부터 먹이고……." 라고 하시는 말씀이 끝나기가 무섭게 물 먹이는 것도 잊은 채 강아지를 끌어안고 온 동네 자랑하러 다녔다. 친구들의 부러운 눈빛 세례를 온몸에 받아 가며 해가 지도록 이 골목 저 골목 누비고 다니며 "한번 만지는데 딱지 한 장! 두 번 만지면 딱지 두 장……." 한 손에는 딱지 한 움큼 거머쥐고 한쪽 팔에는 축 늘어진 강아지 옆구리에 끼고 다니다가 어머니께 목덜미 붙잡혀 집에 질질 끌려오고 말았다.
"문디 아 낳아가 쭈물라 찍인다 카더니만 저래가 올케 키우겠나 쯧쯧쯧……." 그렇게 말씀하셨지만, 그 뒤로 강아지는 무럭무럭 건강하게 잘 자랐다. 나는 강아지의 누나, 강아지는 내 동생, 내 이름 끝자를 따서 옥동자라고 불렀고 어머니가 숯불에 고등어를 구우시면 몰래 훔쳐다가 먹이고, 소쿠리에 말리던 생선도 훔쳐다가 먹여 토실토실하게 살찌워놓은 나는 일등공신이다. 몸과 맘과 영혼을 다 받쳐 충성을 맹세한 사이인데 내 입에 들어가는 그 어떤 것을 나눠먹어도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그런데 다음해 어느 봄날, 학교에서 돌아와보니 대문 앞에서 늘 맞아주던 옥동자가 보이지 않았다. 옥동자 집도 사라졌고, 물그릇, 밥그릇도 사라졌음을 발견했다. 순간 30마이크로, 3만 암페어만큼 온몸을 타고 흐르는 이 좌절감의 전율, 머릿속 뇌가 뒤엉켜버린듯한 복잡한 생각과 힘이 빡 들어간 두 눈의 이글거리는 레이더광채, 걷잡을 수 없을 만큼 튀어 나가버리는 입술, 씩씩거리며 부엌으로 달려가 물어봤지만 묵묵부답, 방으로 달려가서 물어봐도 묵묵부답, 목에 핏대를 세워 핵폭탄을 던졌다. "사과 한 상자 값도 안 된다고 해놓고선 개는 왜 팔아! 차라리 밭에 가서 사과 한 상자 따서 팔면 될 것을……" 울고불고 바닥에 뒹굴며 한바탕 푸닥거리를 했는데도 부모님은 여전히 묵묵부답……. 세상을 다 잃은 듯, 한동안 하루에 서너 차례 상습적으로 우는 울보가 되곤 했었다. 밥도 먹는 둥, 마는 둥 눈앞에 옥동자만 아른거렸다. 오라버니 몸이 약해서 약해줬다는 이야기를 한참 후에야 들었지만, 마음의 병, 마음의 상처, 사무치는 그리움이라는 것을 너무 어린 나이에 경험했다. 필자의 추억담은 함축하여 써내려왔지만 더 쓰고 싶은 손끝을 다스려 필자가 읽은 강민숙 작가의 '내 사랑 꾸러기' 소개하려 한다. 책 펴낸 날이 1995년이다. 26년 된 책인데 보관을 잘못한 탓인지 100년 된 것처럼 누렇게 변색되어 표지 사진 찍기가 좀 민망하지만 겉모양 보다는 내용이 중요하기에…….
강민숙 작가는 1948년 경남 산청 출생으로 고신대학과 서울예술전문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경남매일신문과 한국일보 신춘문예 동화부문에 당선되어 '꿈꾸는 민들레' '꿈이 있는 아이는 울지 않아요' 등 그 당시(1995년) 저서를 남겼다. 50년을 넘게 글을 창작한 작가로서 지금은 많은 저서와 다양한 문학 활동을 하고 있지만, 필자는 오래된 책에 마음이 끌린다. 요즘 책은 기교가 다양하여 배울 점이 참 많지만 오래된 책을 마주하면 순수함에 빨려 들어가는 마법의 속으로 한참 동안 어릴 때의 추억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꾸러기'라는 명사가 수백 번 넘게 나오는데 꾸러기는 개 이름이다. 동화 속 주인공은 반려견을 키우며 개와의 일상과 애환을 낱낱이 그려낸 그런 작품이다. 동물들의 언어나 표정은 읽을 수 없지만, 애정으로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교감이랄까, 공감이라할까 그런 공감대의 느낌이 일치하는바가 크기 때문에 필자 또한 추억 한 자락을 또 소환했다. 내용이 길어져 한정된 공간에서 책 내용은 발췌하지 못했으나 지금 한참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감성과 인성을 불어넣어 줄 이 동화책을 적극 추천하고픈 맘이다. 아동문학가 서순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