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존 안된다 해도 흔적을 남겨 후세 전해야
보존 안된다 해도 흔적을 남겨 후세 전해야
  • 울산신문
  • 2021.02.23 17:27
  •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설]

문화재청이 또 울산의 귀중한 고대유적지를 보존가치가 없다고 덮었다.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문화재청은 그동안 무수히 발굴된 울산의 선사시대 이후 주요 유적지를 파묻거나 밀어버리거나 콘크리트로 덮어버리는 만행을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했다. 

이번엔 울산 북구 골프장 조성부장에서 이같은 일이 벌어졌다. 공사를 앞두고 실시한 문화재 조사에서 청동기 시대 집터와 유물이 나왔다. 울산문화재연구원이 시행한 지표조사 결과다. 연구원은 지난해 골프장 조성 부지인 북구 어물동 산 43번지에서 유적이 발견돼 지난해 7월 8일부터 9월 25일까지 정밀 발굴 조사가 이뤄졌다고 밝혔다. 그 결과 청동기 시대 집터와 조선 시대 숯가마, 용도 불명의 수혈(땅 아래로 판구멍) 등 56기의 유구(遺構·건물의 자취)가 확인됐다. 또 청동기 시대 석부, 석촉, 석검, 무문토기, 조선 시대 자기 등 68점의 유물도 출토됐다. 

발견된 유구는 울산 지역에서 자주 발견되는 청동기 시대 주거지 형태로, 상당 부분 훼손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문화재청은 발굴 조사 결과와 문화재 전문위원들 의견서를 종합해 보존할 정도의 가치는 아니라고 최종 판단했다고 한다. 훼손 정도가 심하고 첫 발견도 아니니 중요하지 않다는 주장은 문제가 있다. 이번 발굴조사의 핵심은 평지가 아닌 산지에서 발견된 청동기 시대의 집터다. 

울산문화재연구원도 "산에서 청동기 시대 집터가 발견된 것은 당시 사람들이 평지뿐만 아니라 고지대까지 생활 범위가 넓었다는 것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학술 가치가 있다"고 이야기 하고 있다. 적어도 유적에 대한 보존이 어렵다면 집자리 정도는 존치시켜 산지에서 발견한 청동기 시대의 유물을 후세에 전할 의무가 있다. 무엇보다 국내에서 산지의 청동기 집자리가 발견된 것은 드문 사례다.

울산에서 출토되거나 발굴된 선사시대 유물이나 유적의 훼손은 무수하다. 최근에는 북구 강동산하지구 도시개발사업지구에서 벌인 산음·화암고분군 등에 대한 시굴조사 역시 '현장보존 가치가 없다'는 의견으로 이 일대의 지석묘를 옮겨버렸다. 선사유적만이 아니다. 반구동 항만 유적은 신라시대의 국제무역항을 제대로 보여주는 귀중한 역사적 자료였지만 아파트 개발에 우선권을 줘 콘크리트로 덮었다. 

연자도 고려시대 유적도 그렇다. 울산에서는 드물게 고려시대의 생활상을 알 수 있는 유적이 발견됐지만 역시 제대로 보존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울산발전연구원 문화재센터는 울주 당월리 연자도 온산국가산업단지 내 공장부지 조성을 위한 구제발굴을 실시한 결과 고려시대 건물지 20여동과 저장 및 기타 용도로 추정되는 다수의 구덩이가 확인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건물지는 모두 20동으로 온돌 시설인 구들과 아궁이 설치 유무, 범위에 따라 세분화되며 청자대접과 접시, 어골문 계통의 기와류, 청동의 불상, 젓가락 등 다량의 자기와 기와 금속 유물들이 출토됐다. 구덩이 중에서는 집터로 추정되는 것이 9동 확인됐다. 원형 또는 장방형으로 바닥면을 평탄하게 정지했으며 일부는 할석을 이용해 가장자리를 따라 석축을 쌓은 것도 있다.

유적지로는 드물게 온돌시설과 유물을 통해 고려시대의 생활상을 알 수 있는 중요 유적이었지만 보존상태는 말이 아니다. 울산지역에서는 매우 드문 고려시대 유적일 뿐 아니라 육지가 아닌 작은 섬에서 다수의 호족층 건물터가 발견됐다는 점에서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지만 공단부지로 밀어버리고 연자도에서 발굴된 유물은 울산박물관으로 옮겨졌다. 

아파트 시행사가 문화재 발굴조사 종료 후 출토된 유물을 아무렇게나 방치하는 바람에 일부가 훼손되는 등 사후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사례도 있다. 울주군 덕신리 572-1번지 일대에 공동주택을 건립하기 위한 문화재 발굴조사를 시행한 적이 있다. 울산발전연구원이 시행한 조사에서 청동기 유물과 유적이 쏟아졌다. 이 지역은 남울주지역에서 매장문화재가 분포된 몇 안되는 곳 중 한 곳으로, 실제 발굴조사 결과 청동기시대 주거지와 분묘, 제의시설로 추정되는 유구가 확인돼 주거공간과 제의공간이 함께 있는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밝혀졌다. 

울발연은 그러나 유구의 잔존상태가 불량해 별도의 보존조치는 필요치 않지만, 조사대상지역에 조성될 야외공원에 이와 관련된 안내시설을 설치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지도했다. 유물 발굴과정에서 길이 3m 가량의 상석과 그 아래 돌 밑 하부에 지석묘 형태의 분묘가 발견됐다. 시행사와 울발연은 하부 구조 파악을 위해 상석을 10m 떨어진 해당 부지 아랫편으로 옮겨 놓은 후 발굴조사 완료 후에도 그대로 방치해 놓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개발이냐 보존이냐가 아니다. 개발을 위해 발굴을 해놓고 학술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면 추가조사라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 그 결과 보존 유무를 따지고  후대에 물려줄 자산이라면 개발지 인근에 전시관이든 흔적이든 어떤 의미 있는 장소를 만들어 학술적 증거를 남겨야 한다. 무조건 밀어버리고 덮어버리는 일은 더 이상 벌어져선 안 된다는 이야기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울산신문은 여러분의 댓글을 소중히 생각합니다.
그러나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침해. 명예훼손의 우려가 있는 댓글. 도배성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위배되는 댓글은 삭제 될수도 있습니다.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