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에 대한 단상
설에 대한 단상
  • 심수향
  • 2021.02.25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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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를 읽는 금요일] 심수향 시인

눈부시게 맑은 하늘에 공기는 달다. 햇살은 투명하고 코끝이 아릴만치 차갑다. 아침나절 햇살 아래 나서니 익숙한 느낌이 훅 다가온다. 고향의 겨울 풍경이 스쳐간다.

설이 며칠 지났다. 어른이 된 후 명절을 맞는 마음은 설렘보다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흩어졌던 식구들이 모여 북적이니 좋고 하나라도 더 준비하여 즐겁게 먹을 생각에 힘을 내고 움직인다. 그런데 신축년 올 설은 눈도 코도 본 적 없는 코로나19 때문에 모든 것이 흐트러졌다. 주소지 다른 식구는 5인 이상은 모이지도 말아야 한다니 서운하고 당혹스러웠다. 설 전 오일장은 작년만 해도 꽤 붐볐는데 올해는 이래도 되나 싶게 한산했다.

하긴 우리가 어렸을 때와는 설맞이 풍속도 많이 달라지긴 했다. 예전에는 설 한 달 전쯤부터 아버지께서 연하장 준비하는 걸 보았다. 어린 시절 A4용지만한 한지에 뭔가 써서 방안 가득 말려놓았던 모습과 그도 잠시 그 다음에는 연하장 인쇄 묶음이 기억난다. 謹賀新年, 元旦(근하신년, 원단) 글씨와 사군자가 인쇄된 하얀 연하장… 그조차 언젠가 모르게 사라졌다.

그때 아이들은 겨울방학 즈음부터 손꼽아 기다리는 날이 있었다. 물어볼 것도 없이 설날이다. 

일 년에 두 번 설 추석에 옷 한 벌, 양말 한 켤레, 새 신발 받는 것이 꿈이었다. 게다가 달달한 먹거리가 풍족해지니 연중 가장 넉넉하고 행복한 날을 기다리는 것이었다.

설 한 달 전쯤 되면 설 준비로 집집마다 조청를 고았다. 삭힌 엿기름을 짜내어 조청을 고느라 엄마들이 가마솥에 엎드리는 날이 아이들에겐 제일 신나는 날이었다. 단술 찌꺼기 엿밥 한 바가지에도 웃음이 넘쳐났다. 

그러는 사이 설 전 몇 장이 지나고 그 때 엄마는 설 치레로 (설빔) 옷을 사주시거나 신발을 사주셨다. 장날 천막 아래에서 때때옷도 입어보고 코고무신도 신어보던 그 부끄럽고 설레었던 시간들 지금도 선하다.  설날 입으라고 설빔을 장롱에 넣어두면 그게 너무 좋아서 자다가도 꺼내보고 변소 걸음에 신발을 신어도 보곤 하였다.

조청을 곤 이후 만들어지는 강정은 집집마다 조금씩 달랐다. 쌀강정은 기본 이고, 그 외 검정콩 깨 땅콩 노란 콩 찹쌀들이 모두 강정이 되어 나왔다. 거기에 유과며 정과며 약과며 엿이며…  골미(떡가래)를 방앗간에서 빼와서 꾸덕꾸덕 해지면 손에 물이 잡히도록 썰었다. 우리 집안에는 찹쌀고지라 해서 찹쌀반죽을 가마솥만 한 크기로 구워 굳어지면 썰어서 떡국에 함께 넣어 끓였다. 

설 전 반드시 해야 할 일은 목욕이었다. 목욕재계랄까 읍내 목욕탕엘 가거나 욕조가 있는 집 목욕탕을 빌려 온 가족이 함께 목욕을 하였다. 그리고 머리 깎기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머리를 단정히 깎았다. 남자애들은 빡빡머리 여자 아이들은 상고머리나 단발머리였다. 설 전날에는 섣달그믐에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쐰다는 말이 있었다. 아이들은 자지 않으려 애쓰다 깜빡 잠들고는 쌀가루 묻혀둔 장난인 줄 모르고 우는 애들도 있었다.

설날 당일에는 새 옷에 깨끗한 몸 새 마음으로 어른들께 세배를 올렸다. 차례는 집성촌에 살던 우리 집안은 새벽부터 윗마을에서 시작해서 아랫마을로 내려오면서 지냈다. 우리 집은 조금 멀리 떨어져서 오후 서너 시나 되어서 차례를 지냈다. 그때 모인 제관은 얼추 40여명. 여자들은 참례하지 않았다.

차례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세배였다. 보름까지는 세배 다니는 것이 큰 일과였다. 농촌에서는 보름 안에 일을 하면 상놈이라 해서 손을 놓고 일가친척 친지 두두 찾아다니며 세배를 올리고 어울려 놀았다. 

연중 가장 여유롭고 한가한 때였다. 윷놀이, 널뛰기, 연날리기를 주로 즐겼는데, 농악놀이가 그 중 백미였다. 우리는 농악이라 하지 않고 '걸림 논다' 했다. 걸림 패 따라다니다 보니 옆 동네에 가 있더라는 기억을 다 늙은 지금까지도 하는 걸 보면 꽤나 인기 있는 놀이였음에 틀림없다.

요즘 며느리들의 반란이 만만찮다. 제사는 합제로 차례는 커피 한 잔으로 끝내자는 의견도 있다. 젊은이들 덕분에 좀 편해지나 싶어 얼씨구나 맞장구치기도 했다. 허나 우리 대에 와서 잘 지켜지던 전통을 모두 망가뜨리는 건 아닌지 불편한 마음이 고개를 든다. 좀 더 현명한 방법으로 전통도 살리고 우리 여자들도 편해질 방법은 없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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