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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시는 제102주년 3·1절을 맞아 태극기 달기 운동을 범시민운동으로 펼쳐나가고 있다. 울산시는 시민 동참을 유도하기 위해 3월 1일까지 태극기 달기 주간을 설정하고, 주요 도로변과 시 청사 울타리에 태극기를 집중적으로 게양한다. 또 시내버스 900여 대에 태극기를 부착하고, 버스 정보 시스템과 각종 전광판, 아파트 구내방송 등을 이용해 전 가정·직장에 태극기 달기 운동 캠페인을 적극적으로 전개하기로 했다. 

울산시의 이같은 운동은 무엇보다 선열들의 숭고한 독립운동 정신을 되새기고, 시민의 애국심과 자긍심을 고취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조치다. 바로 울산이 독립운동의 상징이자 선열들의 항일 정신이 남달랐던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주말이 지나면 3·1절이다. 벌써 한 세기 하고도 두 해가 지났다. 일제는 3·1운동 첫날부터 평화적인 만세 시위 군중에게 총을 발포하며 잔혹하게 탄압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4월 29일까지 시위가 이어졌다고 한다. 전국적으로 1,717건의 시위가 일어났고 지역별로 특성이 있었다. 황해도에서는 면사무소, 경찰 주재소, 헌병분견소 등 관청 시위가 많았고, 경기도와 충청도에서는 밤에 산에서 횃불을 밝히며 만세시위를 했다고 한다.

경남에서는 장터 시위가 주류를 이뤘는데 86개 면 가운데 절반이 넘는 43곳에서 장터시위가 일어났고 장이 서는 닷새마다 같은 장터에서도 시위가 여러 번 되풀이됐다고 한다. 3·1운동은 당시 인구의 30%을 차지했던 노비, 천민을 포함해 조선인 중 3분의 1 이상이 직접 경험한 전국적, 민족적 독립운동이라고 평가되고 있다. 

이는 민주공화제를 택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에 직접적 계기로 작용했고, 이후 민족적 각성을 일으켜 사회문화 전반의 변화를 가져왔으며, 국제사회는 가난하고 힘없는 줄 알았던 한국, 한국인의 강한 자주독립 의지와 평화롭게 전개한 3·1운동에 경의를 표하기도 했다.

울산에서는 1919년 당시 언양, 남창, 병영 3곳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특히 이틀간에 걸쳐 만세 시위가 펼쳐진 중구 병영은 3·1운동 당시 울산의 저항정신을 상징하는 곳이다. 1919년 서울에서 3·1운동이 일어나자 당시 서울에서 유학 중이던 울산 병영 출신 한명조, 이영호 등은 고향으로 내려가 지역 청년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만세 운동에 동참할 것을 호소했다. 이에 지역 청년들은 4월 4일 오전 9시 지금의 병영초등학교인 일신학교 교정에서 축구 경기를 가장해 모여 축구공을 차올리는 것을 신호로 일제히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거리로 나갔다. 

이틀간 이어진 만세운동에서 일본군에 의해 4명이 목숨을 잃고 많은 사람들이 다쳤다. 22명은 감옥에 투옥됐다. 현재 병영 삼일사에는 병영만세운동을 하다 일제의 총탄에 순국한 김응룡, 문성초, 엄준, 주사문 4명의 열사와 옥고를 치른 권석운, 김송근, 김장수 등 22명의 열사의 위패와 영정, 국가가 준 훈장 등이 모셔져 있다.

우리가 무엇보다 이날을 기억하고 되새겨야 하는 것은 3·1운동이 민족자존과 얼을 지켜 나가는 것과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근본 없는 족보가 없듯이, 한 나라와 민족에게도 민족적 정체성을 밝혀 줄 역사가 있다. 3·1운동은 우리의 국민교육헌장과 헌법에 명시돼 있듯이 오늘의 우리를 우리답게 지켜낸 최고의 상징적 사건이다. 한일합병으로 나라의 주권을 빼앗겼던 우리가 가만히 앉아 있었더라면 대한민국이라는 국호, 한민족이라는 단어 자체가 지구상에 존재할 수 없었다. 3·1절은 바로 이를 기념하고 국민적 각오를 새롭게 다지는 날이다.

울산에서의 3·1절은 더욱 각별하다. 울산은 박상진 의사 등 애국충절의 열의를 온몸으로 실천한 열사들의 고장이다. 병영 만세운동은 지역에서 일어난 항일독립 운동의 시금석이 됐다. 울산에서 3·1절은 그래서 더욱 의미가 깊다. 3·1절을 맞아 우리는 새로운 각오가 필요하다. 

최근들어 일본의 역사왜곡은 도를 더하고 있다. 독도관련 막말도 노골화 되는 상황이다. 바로 이 시점에 우리가 3·1운동을 되새기는 것은 청산되지 못한 일제강점기의 상처를 제대로 치유하는 일이다. 

일제는 조선인들이 자신의 역사와 전통을 왜곡되게 알도록 해 일제강점기에 교육을 받은 이 땅의 청소년들이 자국의 조상에 대해 부정적인 지식을 갖게 하려는 목적으로 전방위적인 역사왜곡을 자행했다. 그 잔재가 여전히 우리에게 남아 있다. 아직도 일제 손으로 만든 조선의 역사가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네스코의 텍스트가 됐고, 날조된 고대사가 고스란히 세계인들의 동북아 교과서가 되어 오늘까지 암울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는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정확한 수도 파악되지 않는 위안부 희생자나 강제징용 희생자들의 문제는 여전히 용서되지 못한 역사로 남아 있다. 이번 삼일절은 그래서 우리에게 더 많은 책임을 요구한다. 여전히 과거사는 한일관계에 발목을 잡고 있고 일본의 정치지도자들은 진정성을 담은 사과에 관심이 없다. 이럴 때일수록 스스로 당당하게 일본 제국주의 망령과 싸워나가야 한다는 결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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