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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무 겸 편집국장
전무 겸 편집국장

# 장관의 직원 두둔 발언에 화들짝
세상사가 그렇지만 달콤함에 빠지면 허우적거리기 마련이다. 바로 기득권 이야기다. 거의 모든 유기체는 썩으면 변질한다. 고기가 썩으면 벌레가 생기고, 물고기가 마르면 곰팡이가 생기며, 사람이 나타(懶惰, 게으름)에 빠지면 재앙을 당하기 마련이다.

선인의 경구는 이렇게 이야기 한다. 말에 과녁을 펼쳐 놓으면 화살이 날아오기 마련이고, 나무숲이 무성하면 도끼로 찍어내기 마련이고, 나무가 그늘을 이루면 새 떼들이 와서 쉬게 마련이고, 식초가 시어지면 벌레가 모여들 게 마련이다.

최근에 드러난 일련의 부패 사건은 그 뿌리를 이야기 하면 어디까지 갈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공직에서는 벌써부터 '우리만 그렇나 뭐'라고 이야기하고 여권에서는 '보수정권 때부터 있었던 부패 고리'라고 물타기를 하고 있지만 그런 식의 닭과 달걀 논쟁이라면 세상사 논쟁의 필요성은 처음부터 없어지는 셈이다.

지난주부터 터져 나온 LH 직원 투기 사건의 본질은 공직의 부패사슬이다. 이는 김현미 국토부 장관 시절부터 중첩된 부동산 정책의 오판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를 잘 말해주는 결과물이다. 21타석 무안타 최장 타석 삼진 아웃이라는 불명예는 그 뿌리에 김현미를 둘러싼 부동산 시장과 공직의 비리가 그림자처럼 덮쳐 있었다는 게 이번 사건으로 드러났다. 그만큼 이 사건은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아픈 사건이다. 문제는 정책 결정의 책임자가 가진 느슨한 문제 의식이다. 바로 변창흠 장관의 잇단 구설이다. 변 장관은 LH 직원들의 투기 행위를 옹호한 듯한 발언으로 민심에 기름을 부었다.

정부가 투기 의혹에 대한 전수조사 계획을 발표한 당일 한 방송이 변 장관 스스로 "(직원들이)개발 정보를 알고 땅을 미리 산 건 아닌 것 같다"라거나 "전면 수용되는 신도시에 땅을 사는 것은 바보짓이다"면서 LH 직원들의 투기 의혹을 옹호하는 발언을 했다고 보도했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 정부기관은 물론 청와대 식구들까지 지난 여름의 일들을 뒤져보라고 지시한 판에 주무 장관이 이런 김빠진 소리를 하니 맥이 풀릴 일이다.

상황이 이쯤되자 장관의 상관도 아니고 상하관계라고 볼 수도 없는 여당의 대표가 주무장관을 호출했다. 언론은 이를 두고 집권당 대표의 장관 소환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질타라는 용어까지 걸개로 걸었다. 이 대표 역시 언론을 불러 변 장관 소환을 알렸다. 그리고 "앞으로도 조직을 두둔하는 듯한 언동은 절대 되지 않는다, 국민의 분노와 실망은 훨씬 더 감수성 있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고 주문했다"는 이야기를 장관에게 주문했다는 주석까지 달았다.

# 정권 위기설까지 확산되는 LH 투기
더불어민주당이 느끼는 이번 사건의 중대성은 시간이 지나면서 가중되는 상황이다. 처음에는 일부 직원의 일탈 정도로 몰아가면 될 듯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현재까지 드러난 신도시 예정 부지 투기사건의 연루자는 LH 전·현직 직원과 가족 등 13명이다. 이들은 3기 신도시 예정지인 광명·시흥에 마구잡이식으로 땅을 사들였다. 그 시기도 LH가 내부적으로 후보지를 검토하던 때와 겹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무엇보다 투기 수법이 요란했다. 이들은 농협 지점 한 곳에서 58억원이란 거액을 대출까지 받아가며 토지 매입에 나섰다. 특별 공급 아파트나 단독주택 택지 등을 받는 '1,000㎡ 이상' 조건에 맞춰 땅을 쪼개고, 토지 수용 때 별도 보상을 받는 묘목까지 심었다. 누가 봐도 토지 보상을 노린 투기다. 그런데도 개발 정보를 몰랐고, 이익 볼 것도 없다는 말을 흘리니 민심이 불길을 만났다. 뒤늦게 진상조사에 전수조사, 조사 대상 확대라는 불끄기에 나섰지만 골든타임을 놓쳤다.

무엇보다 주무장관인 변창흠 국토부 장관은 직전 LH 사장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문재인 대통령이 감사원 대신 총리실 주관의 관계 부처 합동조사단을 만들라고 지시했다. 조사단엔 국토부·행안부·경찰청 등 부처·기관 6곳이 참여하지만 핵심 정보는 국토부 산하 한국부동산원이 갖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국토부가 주도하는 꼴이다.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기고 생선이 없어지니 다른 고양이를 불러 함께 찾아보자고 하는 판이다.

상황이 이쯤되니 여권의 목소리는 자기합리화로만 읽힌다. 여기에 변 장관의 또다른 발언이 알려지면서 여론은 급랭했다. 변 장관은 이번 투기 사건에 대해 "(LH 직원들이) 신도시 개발이 안 될 줄 알고 샀는데, 갑자기 신도시로 지정된 것 아닌가 생각한다"면서 "신도시 토지 수용은 감정가로 매입하니 (투기할) 메리트가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사실상 자신이 몸 담았던 공사의 직원들이 투기를 했다는 세간의 의혹을 부인하고 나선 셈이다.

# 맹지에 묘목 심고 보상 노렸다
그런데 이쯤해서 투기의 현장을 한번 보자.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일부 LH 직원은 지난해 2월 경기 시흥시 과림동의 한 필지 땅(5,025㎡·밭)을 매입해 1,200㎡ 내외의 4필지로 분할했다. 이번에 LH 직원들의 투기 의혹이 제기된 경기 시흥 과림동 토지에는 향나무와 버드나무 묘목이 식재됐다. 이들 수종은 같은 면적에 상대적으로 많이 심을 수 있고 물만 주면 별도의 관리가 크게 필요 없다는 공통점이 있다.

현행 토지보상법에 따르면 택지개발예정지구에서 토지주에게 보상을 할 때 땅 이외에도 건축물·수목·농작물·묘지 등 각종 지장물(땅에 있는 물건 중 수용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도 보상비를 지급한다. 나무 묘목을 심은 경우 먼저 이식이 가능한지를 따져 이식이 가능하다면 이식 비용만 지급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이식할 수 없다고 평가하면 감정평가사 평가에 따라 묘목의 현재 가치나 기르는 데 들어간 비용 정도를 보상하게 돼 있다.

무엇보다 향나무나 버드나무는 상대적으로 보상가가 높다고 하니 입이 벌어진다. 바로 그 점을 노린 셈이다. 모든 게 다 계획이 되어 있었던 모양이다. 아무것도 모르고 신도시 발표에 귀를 쫑긋 세운 주민들과 일반 국민들은 기가 찰 노릇이다. 열반에 들기 직전까지 욕심 버리는 일이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이라며 이런 세상에서 중 노릇 하기가 얼마나 힘들겠냐고 푸념한 법정스님은 만장회도(慢藏誨盜)라는 네 글자로 욕심의 뿌리를 죽비로 내리쳤다.

만장회도는 일반인에게 어려운 고사성어로 주역에 나오는 경구다. 물건을 태만하게 보관하면 결국 도둑에게 도적질을 가르치는 것이다는 뜻으로 견물생심(見物生心)과 다르지 않다. 물건은 언제든 쓸모로 연결되기 마련이고 누구나 필요에 의해 쓰고 버리거나 두고 때를 기다리는 법이다. 문제는 때를 위해 보관하는 자세에 있다. 물건의 때는 쓰임의 시간이다. 이를 함부로 알리거나 미리 정하면 그 물건의 쓰임을 알게 된 자들의 욕심이 가만히 있지 않는다.

욕심을 자라게 하는 것이 관리를 태만하게 하는 것이기에 법정 스님은 만장회도라는 죽비로 세속의 욕심을 내리쳤다. 도둑을 키우지 말라는 경구다. 그런데도 지금의 형국은 도둑이 도둑을 잡겠다고 설쳐대는 꼴이니 죽비소리도 효과음이 없다. 그저 봄비 내리는 날 투기장에 심어놓은 버드나무 가지에 물 오르기만 기다리는 세월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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