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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승달, 봄
 
박수현
 
봄 볕에 마른 노랑을 한 번 더 말린다
 
복수초가 밀어 올린 귀때기 시린 노랑
생강나무 가지에서 눈 비비는 새끼 노랑
개나리 울타리에서 여기저기 창하는 노랑
 
노랑 원복 입은 아이들이 병아리 떼를 데리고 와
종알종알 노랗게 나들이 간다
봄 햇살을 빨아대는 어린 노랑들을 뒤집으니
민들레, 씀바귀, 애기똥풀 꽃이 노랑 노랑 풀밭에 쏟아진다
바람이 들판에다 노랑 바리케이트를 둘러친다
젊은 연인들이 두고 간 새뜻한 노랑 속에 
언 발을 옹송그렸던 노랑턱멧새 한 마리
팽팽히 하늘 한 자락을 들어 올린다
 
누가 저 출렁이는 노랑들을 한 다발 묶어 
별무늬 꽃병에다 꽂아두었나
초승달 샛노랗게 
돋아난, 삼월 어느 저녁
 
△박수현: 대구 출생. 경북대학교 사범대 영어과 졸업. 2003년 계간 '시안'으로 등단. 시집 '운문호 붕어찜' '복사뼈를 만지다' '샌드페인팅' 연합 기행시집 '테베트의 초승달' '밍글라바 미얀바' '나자르 본주' 등 출간. 2011년 서울 문화재단 창작기금 수혜. 2018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 창작기금 수혜. 제4회 동천 문학상 수상.(2020년)

도순태 시인
도순태 시인

노랑 노랑 노랑 노랑 노랑, 시인이 시에 한껏 부려 놓은 노랑을 따라 가다보면 봄날 천지의 노랑꽃들이 다 보인다. 복수초, 생강나무, 개나리, 민들레, 씀바귀, 애기똥풀, 그리고 시인이 불러오지 않은 양지꽃, 풍년화, 산수유 꽃도 모두 노랑이다. 노랑의 상징적 의미로 낙천적인 태도를 가지고 또한 풍요로움을 뜻한다. 그래서 시의 시작부터 봄의 한가로움 속의 여유로움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그리고 따뜻한 심성이 시 행간에 누워있어 '팽팽히 하늘 한 자락을 들어 올린다'로 힘을 보여주어도 어색하지 않는 봄의 전경이 환하게 그려진다. 

 시인의 봄은 풍경 속에 등장하는 봄꽃들, 노랑 원복 입은 아이들, 젊은 연인들, 노랑턱멧새가 전부가 아니었을 지도 모른다. '출렁이는 노랑들'을 시인 안으로 옮겨 놓는 것으로 봄을 완성하려고 한 것은 아닐까. 자연이 주는 것들을 그냥 받아 적기만 했더라면 노랑의 의미를 더 안전하게 전할 수 있었을까. 그래서 한 다발 묶어 꽃병에 꽂아 두는 적극적인 행동으로 봄에 대한 의지를 다진 것일 수도 있겠다.

 '초승달 샛노랗게'의 행에서 이 시의 묘수가 다 모인 것 같다. 계절의 시작인 봄과 봄의 시작인 3월과 만월의 시작 초승달을 노란 줄로 엮어 절묘하게 완전한 봄을 만들고 있음이다.
 시인이 생강나무 꽃의 무한화서처럼 끝에서 안으로 끌어들여 차분하게 '삼월 어느 저녁'을 기다리게 하듯 봄은 더 많은 꽃으로, 연두로 제 길을 가겠지. 이 봄 그 길 위에 시인이 신을 노란 신발을 얹어 두고 싶다. 도순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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