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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공업용수용으로 축조된 울주군 범서읍 사연댐의 모습.  김동균기자 justgi999@
1965년 공업용수용으로 축조된 울주군 범서읍 사연댐의 모습. 김동균기자 justgi999@

울산의 여러 댐 가운데 산업단지에 공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축조된 댐은 선암댐(1964년 완공), 사연댐(1965년 완공), 대암댐(1969년 완공)이다. 이 가운데 선암댐과 사연댐은 현재 당시 조성 목적과는 역할이 크게 달라졌다. 선암댐은 1964년 인근 공업단지의 비상용수 공급을 위해 만들어진 댐으로 일제강점기 농사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선암제를 1962년 울산이 특정공업지구로 지정되면서 공단 공업용수 공급을 위해 댐으로 확장됐다. 수질 보전을 이유로 유역면적 1.2㎢ 전역에 철조망이 설치됐던 것을 울산 남구청과 한국수자원공사가 시민들의 휴식공간 조성에 뜻을 모으면서 둘러져 있던 철조망을 걷어내고 지난 2005년부터 2년여 간 63억 4,000만원을 투입, 공원을 조성해 2007년 1월 30일에 선암수변공원으로 개장했고 이후 선암호수공원으로 이름을 바꿔 부르고 있다. 사연댐 역시 지금은 식수용 댐이지만 조성 당시는 공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축조된 댐이다. 사연댐은 댐 축조로 인해 매년 물에 잠겨야 하는 반구대 암각화 보존 문제와 맞물려 수년째 논란의 중심에 있다. 

# 반구대 암각화 발견 24년만에 국보 지정
올해로 발견 50주년을 맞는 반구대 암각화는 문화재청으로부터 유네스코 세계유산 우선등재 추진 목록에 선정됐다. 

 우선등재 대상지는 '대곡리 암각화'(국보 제285호)와 '천전리 암각화'(국보 제147호)를 아우르는 반구대 일대 계곡으로, 해당 지역 암각화는 '신석기 시대 인류 최초의 포경(고래잡이) 활동을 보여주는 독보적 증거이자 현존하는 동아시아 문화유산 중 가장 이른 시기의 것'이라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2010년 '울산 대곡천 암각화군'이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오른 지 10여 년 만의 성과다.

 문화재청은 국내 최종 관문을 통과한 등재신청 대상에 한해 유네스코에 세계유산 등재를 신청하고, 유네스코는 현지 조사와 평가, 정기 총회를 거쳐 세계유산을 선정한다. 울산시는 2025년 7월 유네스코 정기총회에서 최종 통과하기를 바라고 있다.

 울산시는 우선등재목록 선정을 계기로 반구대 암각화의 역사·문화적 가치 발굴에 집중, 세계유산 등재 작업에 행정력을 한층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넘어야 할 숙제가 산적해 있다.
 문화재청은 신석기 시대부터 그려진 국보 285호 반구대 암각화가 있는 '울주 반구천 일원'을 국가지정문화재 명승으로 지정예고 했지만 주민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

 울주군 반구대 암각화 인근 주민과 지주 등으로 구성된 '대곡천주민상생협의회'는 원주민 동의 없는 명승 지정 강행을 반대한다며 반발의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반구대 암각화는 백운산 탑골샘에서 발원해 흘러 내리는 대곡천변에 자리잡고 있다.  김동균기자 justgo999@
반구대 암각화는 백운산 탑골샘에서 발원해 흘러 내리는 대곡천변에 자리잡고 있다. 김동균기자 justgo999@

 이러한 논란 이상으로 해묵은 난제가 사연댐의 물 문제다.

 그동안 국토부와 문화재청은 매년 홍수기 때 물에 잠겼다 벗어 났다를 반복하며 훼손이 가속화 되고 있는 암각화 보존의 근본대책이라며 사연댐 수위를 낮춰 줄 것을 요구해왔고, 울산시는 청정원수 확보를 우선 주장하며 10년째 논쟁중이다.

 만약, 지금의 사연댐이 없었다면 어떠했을까. 공업용수며 식수 확보에 적잖은 곤란을 겪었겠지만 대곡천변의 수려한 자연경관과 한적한 시골마을의 풍광도 그대로 있었을 것이다. 댐 축조로 정들었던 집과 학교를 떠나야 했던 실향민의 아픔도 없었을 테고 지금처럼 암각화가 물에 잠겨 훼손을 걱정하는 논쟁도 일지 않았을 것이다.

 한삼건 교수로부터 사연댐의 역사를 들었다.
 사연댐의 총 저수량은 2,500만톤, 유효저수량은 2,000만톤으로 연간 6,580만톤, 하루 13만톤을 공급할 수 있다. 둑 높이는 46m, 둑 길이는 300m다. 유역면적은 124.5㎢다. 

 사연댐 공사는 1962년 10월 12일에 시작돼 1965년 12월 28일에 완공됐다.

 댐 축조 직전인 1960년 당시 대곡리에는 4개 자연마을에 97가구 627명이 살고 있었고, 대곡국민학교도 있었다. 4곳의 마을은 대곡리의 본동인 한실마을, 반구대 앞의 반구마을, 신리마을, 서당마을 등이다. 반연리에 속한 아랫옹태마을과 세연동 마을도 모두 수몰됐다. 아랫옹태는 반연리의 본동마을로 수몰당시 약 28호가 살았고, 세연동에는 12호가 살았다고 한다.

사연댐을 들러 보는 한삼건 울산대학교 명예교수(왼쪽)와 전우수 기자.  김동균기자 justgo999@
사연댐을 들러 보는 한삼건 울산대학교 명예교수(왼쪽)와 전우수 기자. 김동균기자 justgo999@

# 유네스코 세계유산 우선등재 추진 대상 올라
사연댐으로 인해 한실마을 일부와 반구마을을 제외하고는 모두 수몰돼 이 시대 울산사람 다수가 겪고 있는 실향의 아픔을 낳게 했다.

 사연댐 남쪽 언덕 위에는 '공업의 원천 사연제'라는 글이 새겨진 큰 기념비가 서 있다. 울산공업도시, 또는 대한민국 공업화의 근원이라는 의미다. 사연댐은 이렇게 공업용수 전용댐으로 건설됐지만 지금은 식수전용으로 바뀌었다. 

 한 교수는 사연댐 축조 당시 지금처럼 자연이나 인문, 역사문화자산 등에 대해 꼼꼼한 조사가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전한다.

 사연댐 건설 당시 울산특별건설국은 현재의 사연댐은 물론 범서읍 서사리 등 여러 곳의 후보지를 두고 검토한 결과 현재의 위치로 결정했다. 

 1938년 일제가 만들었던 공업용수 계획안이 반영된 것이라는 게 한 교수의 설명이다.

 울산공업도시 조성의 중추적 역할을 했던 울산특별건설국은 오직 댐을 효율적으로 건설하는 데만 목적을 두었고, 지금처럼 수몰지의 자연환경, 인문환경, 역사문화자산 등을 꼼꼼히 조사하지 못했다.

그 때문에 반구대 암각화는 수난의 역사를 걷게 됐다. 암각화는 사연댐이 조성된 후 6년이 지난 1971년에서야 학자에 의해 발견됐고, 이로부터 11년이 지난 1982년 8월에 경상남도 기념물 제57호로 지정됐다가 다시 이로부터 13년이 지난 1995년 6월 23일에서야 국보 285호로 지정됐다. 처음 학계에 발견된 지 무려 24년이 지난 시점이다. 

 그러나 더 문제는 사연댐이 완공된 1965년 이후 지금까지 56년 동안 물이 차오를 때마다 귀중한 우리의 문화유산이 훼손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 교수는 지금까지 물 문제와 암각화 보존 문제를 한꺼번에 묶어 해법을 찾으려 했던 데서 암각화 문제가 공전을 거듭할 수밖에 없었다고 지적한다. 

반구대 암각화와 천전리 각석 등 2개의 국보를 품은 울산 대곡천의 물줄기가 흐르는 사연댐과 영남 알프스의 전경. 대곡박물관 제공
반구대 암각화와 천전리 각석 등 2개의 국보를 품은 울산 대곡천의 물줄기가 흐르는 사연댐과 영남 알프스의 전경. 대곡박물관 제공

최근 울산지역 시민단체들은 사연댐 여수로를 암각화 보존 해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여수로는 댐 수위 및 유량이 일정량 이상이 되었을 때 여분의 물을 배수하기 위한 수로다.

 울산~언양 국도 24호선에서 사연댐 방면을 바라보면 멀리 보이는 콘크리트 벽면이 바로 여수로다.

대곡천에서 사연댐으로 모여든 물이 만수위가 되면 여수로를 통해 태화강으로 흐른다. 김동균기자 justgo999@
대곡천에서 사연댐으로 모여든 물이 만수위가 되면 여수로를 통해 태화강으로 흐른다. 김동균기자 justgo999@

사연댐은 유니스트 방면을 바라보고 있어 일반인들이 육안으로 확인하기는 쉽지 않지만 여수로는 사연댐의 상징처럼 하얀 콘크리트 벽면을 드러내고 있다.

 사연댐은 중앙차수벽식 토석제 형식 댐이다. 물을 새지 않게 하는 벽을 가운데 세우고 바깥을 콘크리트가 아닌 흙과 돌로 만든 국내 최초의 토석제다. 울산에 있는 댐 가운데 대곡댐을 제외한 모든 댐들이 배수구가 없는 월류식이다. 댐이 만수위가 되면 물이 여수로를 넘어 자연 배수되도록 한 방식이다.

1962년부터 3년에 걸쳐 완공된 사연댐 건설현장 모습. 대곡박물관 제공
1962년부터 3년에 걸쳐 완공된 사연댐 건설현장 모습. 대곡박물관 제공

# 댐 자체로서도 근대문화유산 가치 높아
사연댐 여수로의 높이는 60m다. 암각화의 최하단 보다 8m가 높다. 

 사연댐의 수위 기준으로 볼 때 암각화는 52m일 때 침수가 시작되며, 57m가 되면 완전히 잠긴다. 

 이 때문에 최근 들어 물 문제와는 별개로 반구대암각화 보전을 위해 댐 수위를 낮출 것을 요구해온 지역 시민단체가 여수로를 50m 이하로 낮추고 댐 하단에 수문을 설치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국내 최초로 토석 재질로 된 사연댐은 수위가 60m에 이르면 댐의 남동향에 위치한 여수로를 통해 물이 태화강으로  빠져 나가게 된다. 김동균기자 justgo999@
국내 최초로 토석 재질로 된 사연댐은 수위가 60m에 이르면 댐의 남동향에 위치한 여수로를 통해 물이 태화강으로 빠져 나가게 된다. 김동균기자 justgo999@

 현재 수문 설치가 타당한지에 대한 용역이 진행 중이지만 이것을 수문 설계용역으로 대체해 공사시기를 최대한 앞당겨 암각화의 훼손시기를 조금이라도 줄여보자고 말한다.

 특히 "외부 물 유입은 암각화 보존의 조건도, 수문 설치의 조건도 될 수 없다"는게 이들의 주장이다. 한 교수도 여기에 목소리를 보태고 있다.

 

 한 교수는 "사연댐에 수문을 설치하면 댐의 기능에 다소 영향을 받겠지만 암각화 보존을 위한 최상의 방법이다. 거기에 사연댐에 일부 변형이 있다 해도 사연댐 자체로서의 역사문화적 가치는 크다"고 말한다. 사연댐은 한국 최초의 공업용수 전용 토석제로서 근대문화유산으로의 가치가 크며, 암각화 보존을 위한 환경변화가 가장 최소화 될 수 있는 방안이라는 것이다. 사연댐 언저리에 사연댐과 암각화 관련 전시관이나 방문자센터, 편의 시설 등을 갖춰 울산의 새로운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신중하게 고민해 볼 해법으로 제시했다.  전우수기자 jeus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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