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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훈 편집국장
조재훈 편집국장

요즘처럼 따사로운 봄볕이 내리쬐면 문득 생각나는 시(詩)가 있다. 

'꽃가루와 같이 부드러운 고양이의 털에/고운 봄의 향기가 어리우도다./금방울과 같이 호동그란 고양이의 눈에/미친 봄의 불길이 흐르도다./고요히 다물은 고양이의 수염에/푸른 봄의 생기가 뛰놀아라.' 

일제강점기의 이장희 시인이 쓴 '봄은 고양이로다'이다. 봄과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고양이를 통해 봄에 대한 느낌을 상큼하게 표현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양이를 생각하면 생선을 떠올릴 가능성이 많다. 아마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꼴이다' '고양이 생선가게를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등과 같은 속담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일부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고양이는 생선을 좋아한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고양이는 육식동물이다. 생선을 싫어한단다. 그러면 왜 그런 착각을 할까. 

세계 2차 대전 때부터였다. 당시 유럽의 각 국가는 극심한 물자난에 허덕였다. 주식인 육류가 턱없이 부족해 사료 회사들은 사료에 육류를 섞기가 매우 힘들게 됐다. 

궁여지책 끝에 그나마 공급량이 많았던 생선을 주재료로 사용하는 방법을 고안해 냈다. '고양이는 생선을 좋아한다'는 허위 광고까지 만들어 홍보도 했다. 잘못된 상식의 배경이 여기서 시작됐다. 결국 사료업계의 잔꾀가 '고양이는 생선을 좋아한다'는 선입견을 만들어낸 셈이다.

'천한 재주로 남을 속이는 사람'을 사자성어로 '계명구도'(鷄鳴狗盜)라 한다. '닭 울음소리를 내고 개처럼 도둑질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허무맹랑한 사람도 때에 따라선 적절하게 쓰일 때가 있다. 하지만 도가 지나치면 패가망신하는 법이다. 나아가 '고양이에게 생선 맡긴 꼴'이 되면 그 어떤 방패막이도 무용지물이 된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사전 투기의혹에 대한 국민들의 공분이 그렇다. 좀체 사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 불똥은 이제 행정기관과 정치권으로 튀고 있다.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괴물처럼 말이다.

전문가들은 그간 부동산 가격 급등의 주범으로 지목된 '투기' 세력이 내부에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정책 신뢰도에 치명상을 입었다고 우려한다. 개인 비리가 아닌 공직윤리의 보편적 부재 사건이라는 지적에도 공감이 간다. 그럼에도 '일부 직원의 일탈이어서 억울하다'는 애먼 변명이 나오고, '꼬우면 이직해라'는 정체불명의 댓글도 달려 성실한 직장인들의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

가뜩이나 지금은 코로나19 여파로 온 사회가 우울한 시기다. 자영업자들은 줄폐업 위기 앞에 심신이 멍들고 마이너스통장, 투잡 부업 등으로 근근이 생계를 꾸려나가는 서민들은 밤잠을 설치기 일쑤다. 이들은 참담함을 숨기지 못한 채 상실감으로 하루하루를 무기력하게 보내고 있다. 위로를 해주어도 시원찮은 판에 울화통만 더 터지게 만드니 정말이지 살맛이 안 난다.

경남 진주에 위치한 한국토지주택공사(LH) 본사 입구에는 웅장한 돌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세상 모든 가치가 시작되는 LH, 희망의 터전을 만드는 사람들'이라는 문구를 새겨 놓았다. '국민주거안정의 실현과 국토의 효율적 이용으로 삶의 질 향상과 국민경제 발전을 선도한다'는 미션을 축약해 놓은 말이다.

임직원이 갖춰야 할 기본역량도 '협력·소통, 전문·성과, 미래·도전, 공정·공익'이라고 한다. 물론 대다수의 직원들은 이를 충실히 이행하고 있으리라 믿는다. 필자가 이번 사태를 꼬집는 것은 공직자라면 적어도 사회의 모범이 돼야 한다는 점을 되짚어 보고자 함이다. 

이번 LH사태는 '권력은 정보이고, 정보는 곧 돈이다'라는 등식을 확인시켜 줬다. '부동산 적폐청산'의 빌미를 제공한 측면도 없지 않다. 무엇보다 사회의 공정성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린 잘못이 크다. 그래서 하는 얘기다.

이제는 '권력은 품격이고, 품격은 솔선수범에서 나온다'는 도덕의 정석을 보여줘야 한다. 적어도 이 사회의 리더들은 최소한 그런 흉내라도 내야 한다. 그리고 실행할 수도 없는 일을 공연히 끄집어내는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의 우(愚)를 더는 범해서는 안 된다. 꽃이 피어야 진정한 봄을 느낄 수 있기에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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