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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숙 교사
홍경숙 교사

막내가 전교생 12명인 초등학교 분교를 다닐 때 5~6학년 2년 연속 담임을 하신 최보이 선생님이 계신다. 정말 뜨거운 열정으로 아이들을 키워내고 특히 야학 배움터를 열었을 때 퇴근후 월, 수, 금요일을 자발적으로 오셔서 아이들과 함께 즐겁게 공부를 지도해주셨기에 늘 감사함을 가지고 있었다.

2년 후 서울로 파견근무를 가셨고 몇 년이 지난 후 한국어교사로 중국에 파견근무를 간다고 막내한테 소식을 전해 듣고는 사는 게 바빠서 늘 마음에 고마움을 간직하고만 있었다. 

요즘들어 부쩍 최보이 선생님의 안부가 궁금하기도 하고 만나서 감사의 마음도 전하고 싶고 해서 페이스북으로 연결을 해봤더니 소통의 끈이 연결돼서 반갑고 기뻤다. 

그런데 지난주에 최보이 선생님이 '어깨동무 피스 레터' 3월호에 막내를 주제로 쓴 글이 실렸다면서 보내온 것이다. 10여 년의 시간이 지났음에도 우리 막내를 잊지 않고 응원해주는 멋진 선생님이 있어서 감사하고 감동이 돼 지면을 빌어 실어본다. 

제목은 '2년의 시간, 2번의 만남…그리고 언제쯤?'(부제: 첫 제자에게)였다. 글 내용은 이렇다. 

# 2008년의 경주
경주 시내에서 1시간마다 있는 버스를 탄다. 1시간을 꼬박 달려 종점에 내린다. 다시 개인 이동 수단으로 30분 이상 간다. 12명 학생이 전부인 분교가 나타난다. 처음 교단에 선 곳이다. 그곳에서 5학년 일곱 학생의 담임이 됐다. 도서관에서 처음 만났는데, 그 중 유독 '허세(?)'스런 자세의 창백할 정도로 뽀얀 얼굴의 남학생이 눈에 띄었다. 주.윤.석! 

# 2021년의 지금 
"선생님, 반가워요. 윤석이 엄마입니다" 휴대폰의 번호가 바뀌었던 나를 13년 전의 학부모께서 페이스북으로 찾으신 것이다. 당시에 학생들을 집으로 불러 밥을 해 먹이고 학습지도를 하며 열악한 교육환경의 분교생에게 야간 공부방을 만들어 줬던 분. 그래서 이제 막 교육의 길에 들어선 내게 깊은 감화를 줬던 윤석이 어머니는 뜻밖의 소식을 전해 오셨다. "윤석이가 독일에서 돌아왔고, 지금은 공군장교가 됐어요!"

# 2011년의 서울
윤석이의 담임으로서 2년의 시간을 보낸 뒤 나는 서울로 파견을 갔다. 그해 겨울, 어린이인줄만 알았던 시골 소년이 옛 담임을 만나기 위해 홀로 서울을 왔다. 동료 선생님 두 분이 그런 학생이 누군지 궁금했던지 나를 따라나섰다. 체게바라 사진전도 함께 관람하며 헤어질 때쯤엔 나보다 더 아쉬워하며 이제 곧 중2가 될 학생의 옷을 사줬다.

# 2014년의 대전
졸업한 뒤 처음 서울에서 본 이후 두 번째 만남은 대전에서 이뤄졌다. 당시 내가 여름방학 중 연수를 KAIST에서 하고 있었기 때문인데, 윤석이는 3일 뒤 독일로 유학을 떠난다고 했다. 외고에서 영어를 전공하고 중국어가 부전공이었던 학생이라 의외였다. "잘 가, 용길아!" (윤석에게 붙여준 애칭)

# 2021년의 지금
쌤의 구조주의 학습법을 완벽히 소화하고, 힐러리의 ' 여성인권선언문'을 영어로 암기하고, 원더걸스의 노래 'nobody' 춤을 멋들어지게 추고, '쥘리앵' 데생을 가르쳤더니 그럴듯하게 따라 그려내고,  쌤의 식사를 걱정하며 아침부터 부담백배 닭발요리를 내밀고, 스탕달의 '적과 흑'을 정확하고도 센스 있는 만화로 변환시키고, 쌤이 좋아하는 'Over the rainbow'를 배워 클라리넷으로 연주하고, 집에 공부하러 온 어린 분교 동생들에게 다정다감하게 책을 읽어주고, 초급을 갓 벗어난 스키 실력인데도 쌤을 따라와서 중상코스를 완주하고, 시골 학생이 대구·경북 아마추어 골프대회에 출전해 당당히 순위 안에 들고, '청소년 토지' 책을 읽고 마침내 완결된 구조를 갖춘 자신만의 새로운 이야기인 '토나오냥'을 탄생시켜 복사본도 없이 쌤에게 바치곤 했던, 그 많은 사건 속에서 지금 내게 가장 기억되는 것은 첫 제자, 윤석의 '미소'다.

원래 중등 국어교사를 하고 싶었던 내게, 초등 교사로서의 가르치는 희열을 맛보게 함으로써 결국 다른 생각(?) 않도록 만든 용길아! 며칠 전 네 아버지께서 직접 채취하신 고로쇠수액을 보내오셨다. 아까워 뚜껑조차 못 열겠어. 코로나19로 외출이 어렵다고 하니, 이거 가지고 쌤이 한번 가봐야 하니? ㅋㅋㅋ 언제쯤 3번째 만남을 하려나…! 연락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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