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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화 소설가
정정화 소설가

취사 예약을 하려고 쌀을 씻어 안치고 압력밥솥을 닫았다. 평소처럼 왼쪽으로 돌려 잘 걸어 잠갔는데 뚜껑을 닫으라는 기계음이 울렸다. 다시 열어서 닫아 봤지만, 역시 같은 소리가 흘러나왔다. 뚜껑은 잘 닫혀 있는데, 이상했다. 예약을 포기하고 밥을 바로 하려고 취사 버튼을 눌렀다. 무슨 이유인지 작동하지 않았다. 밥솥 센서 화면에는 E01이라고 적혀 있었다. 에러 표시인 듯한데, 무슨 의민지 알 수 없었다. 밤이라 서비스센터에 연락을 해볼 수도 없었다. 할 수 없이 이전에 쓰던 밥솥에다 쌀을 안쳤다.

다음 날, 서비스센터에 밥솥을 가져갔을 때 바닥 뚜껑을 열어 가느다란 선에 납땜을 해줬다. 미세한 선이 떨어져 있었던 것이다. 수리비는 없었다. 생각보다 간단한 수리였다. 기사 아저씨가 수리 후에 작동상태를 보여주는데, 뚜껑을 닫으라는 기계음이 더는 나오지 않았다. 어젯밤부터 가슴 졸인 것을 생각하니 왠지 허탈했다.

센서 기능은 삶을 편리하고 안전하도록 도와준다. 하지만, 프로그램이 너무 기계적으로 짜여서 겪는 불편도 있다는 걸 몸소 겪었다. 밥하는 기능이 고장 난 게 아니라 센서의 연결선이 끊어졌는데, 밥을 하는 시도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이 뭔가 불합리해 보였다. 가스레인지의 센서 기능이 불 조절을 마음대로 하는 바람에 요리를 제대로 할 수 없었던 기억이 났다. 불이 나지 말라고 일정 온도가 올라가면 자동으로 불의 세기를 조절하는 기능 때문에, 전을 구울 때나 작두콩차를 볶을 때면 불편을 겪었다. 전은 일정하게 높은 온도에서 구워야 제맛인데 마음대로 불을 낮추니 야채가 물러져 질퍽해지기 십상이었다. 작두콩차도 마찬가지였다. 팬이 달면 센서가 감지해 자꾸 불을 낮추는 바람에 볶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

전자제품의 기능이 좋아질수록 덧붙여진 기능 때문에 원래 기능을 제대로 못 쓰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요즘은 손으로 직접 작동하지 않고 말로만 해도 사이트를 찾아주고, 내비게이션을 작동시킨다. AI 기능을 탑재한 제품들이 많이 쏟아져 나와 편리하기 그지없다. 

그렇다고 편리한 점만 있는 건 아니다. 잘 짜인 프로그램으로 불편할 때도 있다. 아무리 좋아도 전기나 배터리가 없으면 작동되지 못하는 것 또한 난점이다. 기기가 발달하면 순기능이 많을 테지만 역기능도 존재한다. 시대에 맞추어 다른 일자리가 생긴다지만 실제로 생기는 것보다 줄어드는 일자리가 더 많지 않을까 싶다. 코로나바이러스로 가뜩이나 어려운 취업 시장이 꽁꽁 얼어붙었다. 올해 초 실업자 수가 150만 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취업률 역시 모든 업종에서 큰 폭으로 줄어들었다. 영세 소상공인의 도산도 줄을 잇고 있다.

취업과 결혼과 출산은 어떤 면에서 연결돼 있다고 볼 수 있다. 예전에는 사글셋방에서 살림을 시작하는 부부도 많았지만, 요즘은 제대로 된 주거지가 없으면 결혼을 유예하는 경우가 많다. 결혼을 하더라도 출산을 유예하거나 하지 않기도 한다. 2020년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84로 출산율이 해마다 떨어지고 있다. 유엔인구기금(UNFPA)의 2020년 세계 인구 현황 보고서에서도 한국은 조사대상 198개국 중 꼴찌를 차지했다고 한다. 출산율은 인구절벽을 실감할 만큼 심각한 수준이다.

지방자치단체마다 출산 장려정책을 많이 내놓지만 효과는 미미하다. 그 이유의 밑바닥을 캐보면 자아실현이나 현재 삶을 중시하는 풍조 등도 있겠지만, 경제력이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내 집 마련과 교육비로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가는 현시점에서 책임을 담보해야 하는 출산에 지레 겁부터 먹는다. 안정된 일자리가 없으면 결혼도 출산도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공시족이 늘어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본다.

우리 사회가 가진 많은 문제점은 밥솥에 달린 센서 기능처럼 곁가지를 건드리고 있는 건 아닌지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빠르게 발전하는 사회에서 미처 문제를 파악하기도 전에 다음 단계로 나아간다. 그러면서 문제의 근원은 그대로 둔 채 취업은 취업대로, 결혼은 결혼대로, 출산은 출산대로 각각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다 보면 좀처럼 풀리지 않게 된다. 좀 더 제대로 들여다보고 문제점을 진단하고 그 이유를 찾아낼 때 출산장려정책도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빠르고 양적인 성장보다 느리지만 질적인 성장에 관심을 기울일 때다.
 
△소설가 정정화
◇2015년 경남신문, 농민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당선
◇소설집 『고양이가 사는 집』, 『실금 하나』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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