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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교사
이정훈 교사

요즘 들어 치매 증상을 보이는 엄마를 보면서 '진정한 효'는 무엇일까를 생각하는 게 나의 화두다. 어느새 내가 이순의 나이에 접어들고 엄마는 이 세상을 떠날 때가 다가오고 있다고 생각하니 불현듯 엄마가 보고 싶어 두 달 전에 엄마가 좋아하시던 고로케를 사서 한달음으로 대전엘 갔다.

'엄~~마 나 왔어' 언제나 늘 반겨주는 엄마였기에 설레는 마음으로 초인종을 눌렀다. 계속 초인종을 눌러도 아무 기척이 없기에 순간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한참 후에 문을 열어주시는데 기대했던 그 엄마의 모습은 어디로 가고 처음 본 너무나 당혹스런 엄마가 서 계셨다. 순하고도 청순한 모습은 사라지고 고집스럽고 뭔가 화가 잔뜩 난 무관심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셨다. 엄마 앞에 앉아 울고 말았다. 지금 이 글을 적고 있는 이 순간에도 눈물이 저절로 흐른다. 누구나 엄마를 떠 올리면 애절하겠지만 우리 엄마에게 난 잘해 드린 기억이 없어 더 애절하다.

늘 아버지께서 '우린 너희들이 행복하게 잘 지내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그게 효도이니 그리 알고 우리한테는 신경을 안 써도 된다'고 입버릇처럼 말하였기에 결혼을 한 뒤 시어머니와는 주어진 방학 기간을 항상 같이 보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엄마와 함께 지낸 시간은 매번 자식 공부시킨다는 핑계로 잠시 얼굴만 내보이는 게 다였다. 해도 해도 너무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짧았다.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면서 7남매를 키워야 했던 굳센 우리 엄마, 저녁에 엄마 발끝에 앉아서 구구단을 외우던 생각이 난다. 그때는 엄마가 듣고 있는 줄 알았는데 퇴근 후에 7남매를 돌보시랴 얼마나 고되고 힘이 드셨을까? 그 힘든 와중에도 짜증 한 번 안 내시고 자식들 공부를 시키려고 애를 쓰셨다는 생각을 하니 또 눈물이 흐른다.

'네가 결혼해서 아이를 키워보면 그때 엄마 마음을 알게 될 거야'라고 하시더니만 이제야 손녀딸 재롱에 즐거워하면서 엄마의 마음을 헤아리게 된다. 엄마가 이렇게 아프신 건 부모를 방치해서라는 누군가의 말씀이 옳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부모님은 두 분 다 교직에 계시다가 은퇴를 하셨기에 정말 고마운 일이긴 한데 너무 오랜 시간 부모님의 노후에 대해서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당당하시고 가족의 모든 일을 혼자서 묵묵히 헤쳐나가시던 아버지의 나이 든 모습과 치매 증상을 보이는 엄마를 보니 고마움과 안쓰러움이 교차 되어 가슴이 아프다.

'엄마 시계 한 번 그려 봐요' 하니 너무나도 예쁘게 정확하고 정성스럽게 그려나가는 엄마의 모습, 초등학교 교사를 해서인지 기억을 잃어가면서도 덧셈, 뺄셈을 너무나도 척척 풀어내신다. 서예를 쓰셔서인지 한글도 얼마나 예쁘고 또박또박 쓰시는지, 치매센터에서 체크를 하면 더 또렷이 잘 해내는 엄마를 보면서 반복적으로 가르치며 익힌 기억들은 잘 잃어버리지 않는 것 같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진작에 부모님께 관심을 갖고 자주 안부 전화를 드리고 찾아뵀어야 하는데 하는 후회가 따른다. 

요즘은 지식을 공유하는 시대라서 누구라도 유튜브에 접속하면 모든 것을 배울 수 있고 즐겁게 살아갈 수 있는 시대를 맞이했다. 그래서 엄마에게 알뜰폰으로 자식들과 전화만 주고받는 용도로만 쓰게 해 스마트폰을 사 드리고 유튜브를 접하게 해드리지 못한 점을 후회한다.

유튜브를 통해 세상의 모든 지식 속으로 들어가도록 했다면 시간을 소중히 잘 사용하며 자신의 삶을 충분히 알차게 마무리하셨을 텐데 그러지 못한 점이 가장 아쉽고 너무 후회스럽다. 

노후에 공부를 하는 게 제일 좋은 취미라고 누군가 말한다. 그래서 며칠 전부터 내가 공부하면서 메모한 좋은 글들을 전화로 엄마에게 매일 읽어드리기 시작했다. 귀가 어두우신 엄마는 그냥 딸의 목소리 듣는 재미로 좋아하신다. 그런 엄마가 한없이 고맙고 죄송스럽다. 좀 더 조금만 더 엄마를 생각했다면 이런 아쉬움이 적었을 텐데.

이제 은퇴를 앞둔 나에게 시간이 생기는 날들을 부모님과 과연 잘 보낼 수 있을까? 

엄마 모시고 산책도 하고 바다도 보고 책도 읽어드리고, 내가 엄마한테 곰살스럽게 대하지 못하는 내 모습을 알기에 또한 걱정도 된다. 부모님의 여생을 가족의 사랑과 보살핌 속에서 평안하고 행복하게 지내며 잘 마무리하실 수 있도록 좀 더 노력해야겠다고 다짐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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