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를 읽는 금요일] 다시 찾은 이웃
[에세이를 읽는 금요일] 다시 찾은 이웃
  • 배정순
  • 2021.04.15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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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정순 수필가
배정순 수필가
배정순 수필가

비어있던 위층에 새사람이 이사 왔다. 여름 내내 보수하느라 쿵쾅거리더니 오늘은 사람이 뛰는 소리가 신경을 자극한다. 짓궂은 개구쟁이라도 있으면 어쩌나 하는 노파심에 촉각을 곤두세우게 된다. 그 속에는 은근히 그동안 불편했던 심기도 깔려있다. 사과는 아니더라도 미안했다는 인사 정도는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며칠 지나도 감감한 것으로 보아 그런 인정도 기대할 수 없는 사람인 것 같다. 아쉬움이 남는다. 이럴 때 이사 떡을 돌리며 웃는 얼굴로 퉁 치면 봐줄 수도 있는데….

 아니지. 내가 덜떨어진 인간이다. 바랄 걸 바라야지 지금이 감히 어떤 세상이라고. 요즘은 이사 들어도 떡 돌리는 사람은 없다. 돌리지 않아도 누구 하나 뒷말하는 사람도 없다. 솔직히 그런 말 나눌 정도로 가까운 이웃이 없다. 이웃에 누가 들고 나는지도 모른다. 엘리베이터에 낯선 얼굴이 멀뚱히 서 있는 걸 보면 새로 이사든 사람이구나, 짐작할 뿐이다.

 15년 전 우리가 이사할 때만 해도 이러진 않았다. 이삿날 나는 팥 시루떡을 해 돌렸다. 예로부터 이사할 때는 팥 시루떡 하는 건 예사였다. 붉은 팥에는 벽사(辟邪)의 의미가 담겨있다고 한다. 개업하거나 이사, 고사 때 팥 시루떡이 빠지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이다. 액막이가 아니더라도 그게 정 문화이고 대대로 내려오는 풍습이라면 지켜가는 게 삶을 풍요롭게 하는 길이 아닐까. 이삿날 대충 짐 정리하고 이웃에 떡을 나누고 나면 왠지 마음이 푸근해진다. 아마도 나누면 기쁨이 배가 된다는 말은 그런 의미이리라. 

 요즘에는 이사 떡을 돌려도 좋아하지 않을뿐더러 낯선 사람이 벨 누르는 것 자체를 싫어한다고도 한다. 물질이 풍부해지고 개인주의가 팽배해지다 보니 이웃 간 소통을 사생활 침해로 보는 것 같다. 나이 탓일까? 그런 상황이 안타깝다. 우리는 어느 나라보다 정이 많은 민족이었다. 기실 삶 속의 소소한 기쁨은 공동선을 향한 자잘한 행위에 있지 않던가. 

냉담한 세상인 줄 알았는데
함께 느낀 고통의 시간이
닫힌 마음 여는 열쇠였네


 이곳에 처음 이사를 와서 색다른 음식을 하면 앞집 벨을 눌렀다. 이웃과 따뜻한 관계를 맺고 싶었다. 음식을 건네면 과일이라든가 다른 물질을 부담되게 되돌려 받았다. 내가 바라던 차 한 잔 나눌 친분은 쌓이지 않았다. 몇 번 그러다 그마저도 접었다. 내가 괜히 민폐를 끼치고 있는 것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어서다. 

 세상이 많이 변했다. 무엇이든 과학으로 말하는 세상이고 보니 보이지 않는 정 문화가 발붙일 틈이 없다. 다들 입 닫고 문 걸고 이웃에 무관심 방어벽을 치고 산다. 해를 거듭할수록 이웃은 천 리 먼 길이 되고 있다.

 엘리베이터 교체공사를 하게 되었다. 보수 기간이 이십 여일을 넘겼다. 하필이면 한여름에 공사하게 되어 주민들의 불만이 컸다. 땀을 뻘뻘 흘리며 장짐 든 주부들, 관절이 부실한 노인들, 아이를 안고 걸린 엄마들, 하나같이 고통을 호소했다. 변화는 거기서부터 시작되었다. 불편함에 내몰리자 계단에서 만나는 이웃들이 너도나도 입을 열었다. "오뉴월 염천에 이게 무슨 짓이냐, 공사가 왜 이리 더디냐, 는 둥 불만을 쏟아내면서 한편이 되었다. 계단에 퍼질러 앉아있는 노인에게 말동무도 해주고, 힘들어 보이는 이웃의 시장바구니도 들어주면서. 

 신기했다. 15년이 넘도록 이웃과 입을 닫고 살았는데 고통스러운 20여 일 동안 훨씬 많은 대화가 오갔다. 엘리베이터에서 웃으며 인사하는 사람이 생긴 것도 그때부터다. 비로소 내가 이들의 이웃이라는 소속감이 생겼다. 


 초인종 소리에 현관문을 열어보니 계단을 오르내리며 사귄 형님이다. 손에는 함지박이 들려있다. 촌에서 푸성귀와 단감을 가져왔는데 양이 많아 가져왔노라고 한다. 물질보다 귀한 마음이 와 닿았다. 덧붙인 말인즉슨 자기 집에 차 마시러 오라고 한다. 반가웠다, 차 한 잔 하자는 초대. 이 말을 언제 들어 봤던가! 결혼 초, 작은 평 아파트에 살 때 들어본 후 처음이다.        

 참으로 냉담한 세상인 줄 알았다. 이웃에서 누가 죽어나가도 모르는, 한데 그게 아니었다. 마음속에는 따뜻한 정이 살아있었다. 20여 일간의 고통이 닫힌 문의 열쇠였다. 그러고 보면 삶에서 붉어지는 고통을 불평할 일만은 아닌 것 같다. 

 아파트는 기능만 생각하면 이웃 도움이 필요 없다. 하지만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편리함이 다가 아닌 것 같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인정해 주는 그 안에서 자존감도, 살맛도 생기는 것 같다. 편리함을 쫓아 아파트로 달아났던 내가 지난날을 그리워함은, 더불어 살 때 가장 인간다운 내가 되기 때문이 아닐까. 

 정을 느낄 수 없는 공간, 그 속에서 고독사하는 인간의 처참한 말로가 미래의 내 모습 같아 더럭 겁이 난다. 우리 모두가 가해자고 피해자라는 생각이 든다. 물질은 차고 넘치는데 행복해하는 사람은 드물다. 왜일까? 사람이 기계가 아닌 이상 인간의 노력으로 귀하게 가꾸고 지켜 가야 할 부분은 분명 있다. 기계도 어찌하지 못하는 마음 밭을 가꾸는 일일 것이다. 한데 그게 결코 어려운 일은 아니듯 하다. 20여 일간의 엘리베이터 공사 하나로 똘똘 뭉치는 걸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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