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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소나무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소나무 할아버지'

정임조 작가가 '안녕하세요, 소나무 할아버지'란 동화책 신간을 들고 돌아왔습니다. 작가는 역사, 환경, 가족, 현재로 이어지는 과거 이야기들 8편을 이 책에 담았습니다. 작가는 "어른들도 읽어주세요. 동심은 우리가 사는 동안 꼭 간직해야 할 주머니 속 손난로 같은 것이잖아요."라고 부탁합니다. 

 책장을 펼쳐볼게요. 어떤 글을 읽어볼까요. '할머니는 치매 중'이란 제목이 보이네요. 우리 주변에 부쩍 치매를 앓는 이들이 많아서 눈에 띄나 봅니다. 
 주인공 할머니는 "우리 강아지 밥 먹었냐?"하고 묻고 5분도 지나지 않아 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할머니입니다. 한 시간에 열 번도 넘게 "밥은 먹었냐?"고 묻습니다. 할머니와 떨어져 사는 가족들은 할머니 기억을 붙잡기 위해 전화를 걸어 문제를 냅니다. 월요일에는 할머니에 대한 문제, 화요일에는 구구단 문제, 수요일에는 가족들 생일 문제, 목요일에는 엄마가 내는 명절 음식 문제, 금요일에는 아빠가 내는 흘러간 옛 노래 문제. 

 세상에! 이런 가족이 있을까요? 동화 속 가족답게 착합니다. 이 가족은 매주 한 가지씩 음식을 만들어달라고 할머니께 부탁합니다. 
 토요일 아침이 되자 손주는 할머니에게 전화를 거네요. 
 "동그랗고 폭신폭신한 것, 넓은 초록 이파리 속에 숨은 것, 노랑 꽃이 피는 것. 할머니가 옛날에 시장에 내다 팔던 것. 그건 준비해 놓았겠지?"
 "애호박 종종종 썰어 놨지."
 할머니가 자신 있게 대답하네요.
 "줄넘기같이 길고 은빛 나고 비린내 나지만 맛있는 것. 아빠가 뼈째로 빠자작 부셔 먹는 것. 내가 어렸을 때 할머니가 구워서 살 발라 먹여 준 것."
 손주가 또 문제를 냅니다.
 "그건 갈치. 그런데 갈치는 어딨누?"
 할머니가 정답을 말할 때마다 손주가 좋아합니다.
 "갈치는 거기에 있어. 이제부턴 힌트 없어. 지금부터는 진짜 어려운 주관식 문제야. 나머지는 할머니가 풀어야 해."
 "알았다, 애호박갈칫국 끊이기."

아동문학가 엄성미
아동문학가 엄성미

 할머니가 제대로 음식을 준비했을까요?
 가족들이 도착했을 때, 할머니는 밭에서 딴 애호박만 썰어 놓고 낮잠을 주무시네요. 할머니가 깨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엄마가 국을 끓입니다.
 "할머니, 우리 배고파. 할머니가 애호박갈칫국 맛있게 끓여 놓는다고 해서 왔는데 끓여 놨어?"
 손주가 능청스럽게 묻습니다.
 "글쎄, 끓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부엌에서 나온 엄마는 연기를 하네요.
 "어머니, 애호박갈칫국 진짜 맛있는데요. 어머니 솜씨는 정말 알아줘야 한다니까요."
 할머니의 기억 창고는 서서히 비워져 가지만, 그 빈자리에 가족의 사랑이 쌓여갑니다.
 여러분, 어떤가요? 동화책 속에나 나올법한 가족이죠? '할머니는 치매 중'에 나오는 일이 마법처럼 동화에서만 일어날 것 같아 슬픕니다.  아동문학가 엄성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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