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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아 수필가
정경아 수필가

새 학기를 앞두고 있었다. 안방 문 안쪽 손잡이가 떨어졌다. 흉물스러운데다 떨어진 손잡이는 깨져 있었다. 손잡이가 있던 자리에는 검은색 윤활유가 묻은 링과 손잡이가 맞물려 돌아가는 가느다란 각축이 드러났다. 

 문 손잡이 교체를 차일피일 미뤘다. 떨어진 손잡이를 각축 부분에 갖다 대어 돌리면 문이 열렸기에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문 옆에 엄지손가락 크기로 튀어나온 렛지머리도 느슨하게 움직여서 꽉 닫히지 않았다. 손잡이를 갖다 대는 일은 점점 번거로워졌다. 슬쩍 스치기만 해도 문이 열렸다.

 깊은 밤이었다. 숙면하지 못하고 괭이잠을 자던 나는 누군가 훌쩍 거리는 소리에 깼다. 문이 잠겨서 우리는 안방을 나갈 수 없다며 아이는 울고 있었다. 웬일인지 렛지머리가 꽉 맞아서 문이 열리지 않았다. 부서진 손잡이만 있다면 쉽게 열 수 있었다. 문 바깥 책장 위에 손잡이를 놓아두고 문을 닫은 게 화근이었다. 고칠 도구라고는 작은 집게와 간식을 먹던 포크가 다였다. 아이 곁에서 뭐든 해보자는 심정으로 포크로 문에 붙어 있던 몸통 피스 두 개를 풀기 시작했다. 몸통 피스와 잠근 버튼이 해체되었다.

 "덜커덩! 쿵!"

 문 바깥 손잡이마저 떨어졌다. 아이와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자정이 다 된 시간에 119를 부를 수도, 경비실에 연락할 수도 없었다. 누군가 이 밤에 와서 떨어진 손잡이를 집어 들고 닫힌 문을 열어주기란 요원한 일이었다. 나갈 수 없다고 생각하니까 그제야 답답함이 몰려왔다. 모든 존재는 고장 나거나 소실되었을 때 비로소 그 가치를 알게 되는 법. 

 작년 한 해, 사회에 잠입한 전염병은 모든 일의 우선순위로 등극했다. 제 기능을 하던 사회의 문들은 몸살을 크게 앓았다. 불청객을 막느라 문들은 죄다 닫혔다 열리기를 반복했다. 학교 문도 닫혀 있는 일이 흔했다.

 일 년간 잃어버린 대면교육은 다음 세대까지 갚아야 하는 빚으로 남았다는 교육 칼럼을 읽었다. 교육은 임금을 증가시키고, 흡연과 과음을 할 확률을 낮추고, 좋은 배우자를 만나게 하며, 수명을 늘린다고 했다. 아이들이 숙지하지 못한 교육의 순기능들이 훗날 삶에 있어서 이음새가 허술한 문고리가 될까 봐 걱정이 앞섰다. 새 학기에는 닫힌 교문을 세차게 열고 등교하는 정어리 떼를 닮은 아이들을 그렸다. 더 멀리까지 헤엄쳐 갈 수 있는 기회의 문이 닫히지 않길 바랐다.

 신학기의 봄은 희망의 꽃망울을 정성껏 부풀렸다. 학교는 활기가 돌았다. 학교 안 운동놀이기구들이 새롭게 설치되어 아이들은 웅크렸던 몸을 활짝 펴고 자유로운 유영을 시도했다. 우왕좌왕하지 않고 유연하게 물살을 헤쳐 나갔다.

 봄을 즐기려는 마음이 채 식지 않았다. 왕벚나무는 만첩벚나무와 철쭉에게 배턴을 넘기며 만개 릴레이를 이어나갔지만 봄을 완주하지 못했다. 학교의 문이 또 닫혔다. 하지만 대응 매뉴얼에 맞춰서 민첩하게 진행되었다. 선별 진료소가 꾸려지는 것도 삽시간이었고 검사도 당일에 나왔으며 관련 업무들도 순차적으로 이뤄졌다. 봄과 멀어졌지만 그래도 모두가 무사했다. 학교 문은 닫혔다가 정비한 후 금세 열렸고.

 가상세계의 문도 활짝 열렸다. 원격수업과 화상회의에 편한 줌(ZOOM)은 익숙한 말이 되었다. 미국의 한 대학은 대면 수업이 어려워지자 게임 '마인크래프트'에 가상 캠퍼스를 만들었다. 도서관, 강의실 등을 만들어 놓고 수업을 열어, 가상세계 수업에 참여하면 실제 출석으로 인정해 줬다. 미국 대통령 조 바이든 역시 닌텐도 게임 '모여봐요 동물의 숲'에 선거캠프처럼 만들어 놓고 선거 유세를 펴 젊은 세대들의 정치 참여를 유도했다. 
 다음 세대들에게 향한 나의 걱정은 기우일까. 우리 아이들만 해도 현실세계 놀이터에는 자유롭게 가지 못하지만 가상세계 놀이터에서 친구들을 사귀며 함께 놀고 우정을 만들어 가고 있다. 현실세계 문을 뛰어넘어 가상세계 문을 여는 그들은 마치 해리포터가 호그와트 마법학교로 가는 킹스크로스 역 9와 4분의 3번 승강장을 찾아내는 것처럼 보인다.

 언제나 열리기를 두려워하는 고장 난 문은 나인지 모른다. 타인과 부딪히며 발생하는 작은 갈등에도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문고리를 잠그고 숨어들었다. 타인을 이해하려고 애써야 하는 시간을 열어 놓지 않고 문을 닫고 고장 난 척했다. 현실세계든 가상세계 문이든 발아래 안정감이 옅어지면 서둘러 침묵하는 쪽을 택했다.

 문 손잡이를 새것으로 교체했다. 전기 드릴로 피스를 다 박으니 제법 그럴싸한 모양이 되었다. 근데 뭔가 이상하다. 손잡이를 돌려서 닫았는데 쉽게 열린다. 아뿔싸! 렛지머리 방향이 반대가 되었다. 다시 다 뜯어내야 한다. 현실세계 앞에 놓인 무수한 실패들을 위로한다. 실패해도 다시 한 판 시작되는 게임처럼 해 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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