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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숙
이영숙 북구다문화가족지원센터장

“안녕하세요?" 센터 문을 들어서면서 건네는 누엔티탄 수안이의 어설픈 인사가 밝다. 환하게 웃는 입술 사이로 보이는 잇새가 고르다. 힘든 적응기의 투정이라곤 조금도 엿볼 수 없다. 그 웃음에 하루가 밝을 거라는 좋은 예감이 생긴다. 조금만 힘들어도 친정으로 달려가 하소연하는 한국 새댁들에 비하면 이민자들은 훌쩍 큰 어른 같다. 환경이 주는 장벽을 막막해하지 않고 스스로 허무는 까닭이다.  
 
나는 변화를 싫어한다. 아니 두려워하는 한 사람이다. 이런 내가 다문화 가족들과 인연을 맺은 지도 벌써 5년 하고도 3개월이 지났다. 숫자로 매기기에는 길지 않은 세월이지만 마음으로는 꽤 긴 시간이었다. 
 
처음 복지관에서 다문화센터로 발령받았을 때 생각이 많았다.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려는 마음과 달리 한편으로는 걱정이 가득했었다. 인사발령이라 불응할 처지도 못 되었기에 이틀 만에 보따리를 싸서 부랴부랴 옮겨야 했지만 모든 게 그 때문만은 아니었다. 남구에서 북구로 옮긴 것 말고는 지역의 변화는 없었다. 그렇지만 일하는 환경은 완전히 달랐다. 
 
복지관에서는 노인들을 상대했지만 이곳은 정반대였다. 젊은 사람들을 상대해야 했기에 어떤 면에서는 활력을 기대할 수는 있었다. 그렇지만 정작 익숙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업무는 물론이거니와 만나는 사람들부터 달랐다. 평소 나로서는 1%의 관심도 가진 적 없는 다문화 가족들이 대상이었다. 
 
새로운 센터장이 왔다는게 화두가 될 수는 있었겠지만 그들이 나를 보는 눈길부터 낯설었다. 삼삼오오 모여서 힐끗거리며 웃기도 하고 전혀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로 재잘거릴 때는 서먹하기만 했다. 그들이 나누는 대화는 나를 이방인으로 만들기에 그만이었다. 낯선 이국땅에 뿌리내려야 하는 이들은 그들인데 내가 마치 그들의 나라에 적응해야 하는 듯한 생경함은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참으로 부끄럽다. 
 
근무 5년을 넘기는 동안 나의 인식도 그만큼 바뀌었다. 센터의 교육프로그램인 '다문화 인식개선' 덕분이다. '이민자들의 인식을 바꿔줘야 한다'는 생각을 바꾸는 계기가 된 교육이다. 
 
그들은 토종 한국인은 아니나 한국을 받아들일 마음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이미 한국에 살겠다고 마음을 다잡고 온 사람들이다. 어쩌면 한국인들보다 더 한국을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다. 제대로 알아야 빨리 적응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이들이다. 그런 사람들을 피부와 당장 사용하는 말이 다르다고 낯설게 대해서는 다문화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민자들의 입국 연령은 대개 20대 초반이다. 보기만 해도 예쁘고 대견스럽다. 그런 그들의 해맑은 모습을 깊이 들여다보노라면 그들이 지닌 쓰라림도 읽혀서 안쓰럽기도 하다. 단순한 동정심이 아니라 이해하게 된 것이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우리 속담처럼 언젠가부터 나도 그들과 동화된 걸 깨달은 뒤부터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 그들을 우리 가족으로 칭하는 것도 자연스러워졌다. 내 머릿속에는 우리 가족들은 무조건 행복해야 한다는 바람으로 가득하다. 이웃과 시부모의 몰이해는 차치하고 남편조차 인식개선이 되지 않은 채 맞닥뜨린 한국 생활, 풍습과 문화가 다르고 생소한 환경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에 얼마나 가혹했을까? 죽을 만큼 힘든 날도 많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짠하다
 
우리 가족들은 대개 자녀들이 2~3명이다. 저출산이 사회의 문제로 대두되는 상황에서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게다가 배움의 열정을 저버리지 않고 자녀들을 업고, 안고도 씩씩한 그들. 분명 힘들어 보이는데도 환하게 웃는 그들은 센터 직원들 모두의 가족이다. 아이를 덥석 받아 안으면 나 또한 친정엄마의 마음으로 말한다. 우리 가족들의 친정은 바로 센터라고. 언제든 부담 없이 찾아와서 좋은 일 슬픈 일 맘껏 털어놓으라고. 
 
다문화는 더이상 외면하거나 배척의 대상이 돼서는 안 된다. 이민자들은 토종 한국인들과 다르지 않다. 그 나이에 맞는 순수함과 발랄함도 지녔다. 무엇보다도 10년~20년쯤 후에는 그들의 자녀들이 다수의 사회 초년생이 된다. 그들을 길러내야 하는 이들이 이민자들인 만큼, 다양성이 주는 풍부함에 기여할 양질의 거름이 되게 해야 한다는 인식개선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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