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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훈 편집국장
조재훈 편집국장

주식의 대부 워런 버핏, 구글 공동 창업자 래리 페이지,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를 모르면 시쳇말로 '아싸'(아웃사이더) 취급받는다. 
 
스타벅스, GE, 시티그룹, 골드만삭스를 비롯해 아인슈타인, 스티븐 스필버그, 기네스 펠트로, 더스틴 호프만, 마이클 볼턴, 밥딜런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모두 공통점이 있다. 바로 유대인이거나 유대인이 투자, 창업, 경영하는 유명기업이다. 유사한 예는 언론 분야에도 수두룩하다. 정말이지 놀라우리만큼 많다.
 
요즘 코로나19 백신 접종으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곳도 유대인의 나라 이스라엘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접종률을 보이면서 벌써부터 '일상으로 복귀'를 의미하는 '코렉시트(코로률+Exit)'에 대한 논의를 하고 있다고 한다. 예상치 못한 복병이 나타날 수도 있겠지만 우리의 현실과 비교하면 너무나 큰 차이가 난다. 솔직히 부러운 정도를 넘어선다.
 
중요한 것은 이 같은 사례들이 전혀 뜬금없이 나온 얘기가 아니라는데 있다. 과거의 고난과 치욕을 다시는 겪지 말자는 다짐이 실생활 속에서 고스란히 표출된 결과다. 유대 전쟁 최후의 비극적 격전지인 '마사다'의 교훈이 그중 하나다. 
 
히브리어로 '요새'를 뜻하는 '마사다'는 예루살렘 동남쪽 100㎞가량 떨어진 사해(死海) 인근 해안 400m 절벽 위의 길이 600m, 폭 250m 되는 평지를 일컫는다. 이곳에 얽힌 전설 같은 사건은 지금도 유대인들의 정신적 지주로 남아 있다.
 
1,000명도 채 안 되는 유대인 저항군은 이곳 '마사다'에서 로마군의 끊임없는 공격에도 2년여간을 버틴다. 하지만 끝내 수세에 몰리자 이들은 로마군에게 잡혀서 온갖 수모와 고초를 당하느니 차라리 영광스레 죽기를 결심한다. 저항군들은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들을 직접 칼로 찔러 죽인 후 한자리에 모여 제비뽑기를 한다. 뽑힌 열 명은 나머지 병사들을 모두 죽인다. 또다시 제비뽑기로 남은 2명이 8명을 죽이고 둘 중 한 명이 다른 한 명을 죽인 뒤 본인은 자결로 최후를 맞는다. 다음 날 아침 로마군은 960구의 시체 앞에서 망연자실했다고 한다. 
 
요새푸스의 유대전쟁사는 노파 1명, 어린이 5명, 엘리아제르 친척 노인 1명 등 모두 7명이 생존해 이 이야기를 전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곳은 현재 이스라엘 장병들이 “마사다를 절대 잊지 말자"는 맹세를 하는 선서 식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충격적이고도 가슴 아픈 역사의 현장이 불멸의 성지가 되었으니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게다가 이들에게는 홀로코스트(대학살)라는 뼈아픈 과거도 존재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에 의해 660만명의 유대 민족이 숨진 비극의 트라우마는 '유대인'이라는 정체성과 생존의 절박함을 후손들에게 생생하게 각인시키고 있다.
 
'기억하지 않은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다. 부끄러운 과거를 덮으려 하면 다시는 회복하기 힘든 더 치명적인 상황에 맞닥뜨릴 수 있다. 세계 각지에서 그들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영향력을 발휘하는 힘은 바로 이 같은 역사의 상흔을 보듬고 태어난 게 아닐까 싶다.

삽화 ⓒ왕생이
삽화 ⓒ왕생이

우리라고 이러한 가르침을 왜 모르겠는가. 굴욕과 치욕의 환란 속에서도 꿋꿋하게 이겨낸 저력과 인내심, 관용의 미학이 이와 다를 바 없다. '품앗이'라는 공동체 문화의 전통도 고스란히 전승되고 있다. 모두 어려운 고비 때마다 용기와 희망의 싹을 틔운 것들이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코로나 백신과 관련된 정보의 난맥상, 이로 인해 유발되는 불신감 등으로 총체적 위기를 맞고 있다. 창피한 일이지만 위선과 '내로남불'의 수렁에서 허우적거리는 지도자들의 모습이 딱 그 짝이다. '궁즉통 극즉반(窮則通 極則反)'이라는 말이 있다. 궁하면 통하고 극에 달하면 반전이 있게 마련이다. 
 
하루라도 빨리 이 코로나19의 갑갑한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쩜 시민들의 희생정신과 양보의 미덕에 기댈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정말이지 서글픈 일이다. 밤늦은 시간까지 전수검사에 매진하는 방역 당국과 의료진들, 늦은 밤에도 자영업자들을 살피는 담당 공무원들, 그리고 무엇보다 어렵고 힘든 조치에도 '조금만 더 감내 하자'며 불평 없이 호응해 주는 장한 시민들이 있어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이 비 그치면 / 내 마음 강나루 긴 언덕에 / 서러운 풀빛이 짙어오것다 // 푸르른 보리밭길 / 맑은 하늘에 / 종달새만 무에라고 지껄이것다…' 이수복 시인의 '봄비'처럼 애타는 '5월의 비'가 그치면 희망의 신록이 더욱 푸르게 빛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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