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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된 살구의 맛
 
강현숙
 
예정된 살구의 맛은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상상하던 집은 집이 아니었던 것입니까 살구의 맛은 비껴가는 맛이었나요
 
예상되나요, 당신이 들어설 때 정체를 드러내는 것인가요 관절이 연결되고 혈관으로 피가 흐르고 감각을 느끼는 이가 당신인가요
 
예정되지 않은 시간과 장소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각인된 것은 돌담이 아니고, 각인된 것은 살구꽃이 아니라, 각인된 것은 당신은 더욱 아니라
 
예정될 수 없는 집을 비켜나며 붉은 사막에 비 내립니다 사막에 존재하지 않을 성이 올라갑니다 오후의 붉은 사막 위로 걸어갑니다 가도 가도 나타나지 않을
 
문도 아니고 길도 아니고 여기도 아닌 느닷없는 곳이기를 바랬습니다
 
△강현숙: 경남 함안에서 태어나 마산에서 자랐다. 부산대학교 약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울산에서 약국을 운영하고 있다. 2013년 '사안' 신인상으로 작품 활동 시작. 울산 작가회의 회원.  변방동인 시집 '물소의 춤'. 

도순태 시인
도순태 시인

우리의 삶에서 예정된 대로 되는 것이 얼마나 될까. 예정이란 불확실하고 빗나기 일쑤다. 오히려 이 어긋남이 있어 재미있는 것이 아닐까. 가끔은 전혀 딴 상황이거나 뜻밖의 장면에 웃기도하고 울기도하는 삶, 누구에게나 내일에 대한 확신은 장담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시인은 단맛과 신맛이 혼재 있는 살구 맛을 어떤 예정된 맛으로 상상하였기에 그 맛을 비껴가는 맛이라 하였는지 시인의 여러 시편에서 오는 그 열린 상상력을 다시 보게 된다.

 시인의 첫 시집의 시편들이 상상적 언어와 역설과 반어적이면서 불확실성에 대한 깊은 성찰이 돋보인 가운데 이 시에서도 살구, 집, 당신, 혈관, 시간, 장소, 돌담, 사막, 성, 문, 길 같은 언어들이 서로 등을 돌린 듯 하면서 끌어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연장선에서 시인의 상상은 불확실한 것에 대한 애정으로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있음도 볼 수 있다. 또한 '관절이 연결되고 피가 흐르는' 지극히 당연한 것에도 반문으로 더욱 시의 효과를 높이는 고도의 역량을 보게 된다.

 '예정될 수 없는 집'은 어떤 형태의 삶이 녹아 있는 집이 될까 시인의 상상은 참 엉뚱하게도 사막에 성을 쌓는다. 아마도 시인은 결국 그 성을 보지 못할 것임을 알기에 사유는 끝없이 사막을 걷게 할 것이다. 우리의 삶이 그러하듯 예정되지 않은 삶들이 기다리고 있어 매일 사막을 걷듯 살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다 살구꽃 같은 삶도 만나 가끔은 잘 살기도 하고 그런 바람들을 어쩜 시인은 더 강렬하게 염원함을 반어적으로 속내를 내보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시인은 결국 '예정'의 의미대로 현실이기 보다 생각에서 출발하여 생각으로 마무리되는 상상 안에서 '문도 아니고 길도 아니고 여기도 아닌 느닷없는 곳'이길 희망한다. 노을빛으로 익은 살구 맛을 느끼듯 감칠맛이 나는 시구로 긍정적인 삶의 방식의 여유를 보인다.

 '예정된, 예정 되나요, 예정되지 않은, 예정될 수 없는'의 사유의 형식을 빌려 시인의 상상력은 아직 붉은 사막으로 걷고 있지는 않는지. 그러나 시인은 문을 찾고 길을 찾아 느닷없는 곳에서 당신을 만나러 초록이 지천인 거리로 나설지도. 
 도순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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