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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화 소설가
정정화 소설가

고등학교 시절, 교실 환경미화를 한다고 담임선생님이 화초를 하나씩 사 오라고 한 적 있었다. 화원에 들러 온몸에 가시를 두른 채 하나의 원형으로 된, 예쁘장한 선인장을 샀다. 다른 종류에 비해 가격이 저렴하고 무난해서 마음이 갔다. 
 
다음 날 교실에는 각양각색의 화초들이 창틀 위에서 나름의 멋과 향기를 뽐냈다. 화초는 들고 온 사람이 스스로 키우라고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학교 일과를 시작하기 전에 선인장에 물을 줬다. 아침에 물 주는 걸 잊을 때면 점심때 주거나 늦어도 방과 후에는 꼭 줬다. 그렇게 부지런히 선인장에 물을 준 지 열흘쯤 지났을까. 여느 때처럼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물을 떠서 선인장이 있는 곳으로 갔다. 물뿌리개를 들고 선 채 나는 부동자세가 됐다. 그렇게 봉긋하고 싱싱하던 선인장이 아래쪽부터 절반 정도 내려앉아 있었던 것이다. 허물어진 선인장을 하염없이 바라봐야 했던 아쉬움, 아끼던 선인장이 죽어버렸을 때의 황당함이 아직도 뇌리에 남아 있다. 선인장은 물을 너무 많이 주면 썩는다는 걸 몰라서 일어난 일이었다. 
 
인간관계도 이와 비슷하다. 친하다고 지나칠 정도로 편하게 대한 것이 화근이 돼 하루아침에 관계를 끊기도 한다.
 
사람 사이의 관계는 복잡하고도 미묘하다. 어제까지 간이라도 내어줄 듯하던 사람이 오늘 냉담한 경우도 있고, 처음에는 별로 관심이 없던 사람이 나중에 '절친'이 되기도 한다. 
 
나는 첫 만남에서 직관적으로 느낀 감정과 유사하게 이후의 친밀도가 유지되는 편이다. 하지만 작정하고 가면을 쓰고 다가오는 사람에게 곁을 내줬다가 스트레스에 시달리곤 한다. 어떤 목적을 갖고 다가오는 사람과는 좋은 관계를 맺기 어렵다. 이런 사람들은 대부분 잘 나갈 때는 주변에 있다가도 힘든 상황에서는 슬그머니 꽁무니를 빼고 도망간다. 사람을 이용 가치로 평가하는 이들이다.
 
평생 친구처럼 오래 지속되는 관계도 있지만, 사람 사이의 관계에는 얼마간 생로병사의 원리가 작동하는 듯하다. 사람이 성장함에 따라 직장, 친구, 동호회 등 여러 부류의 사람과 관계를 맺고 발전하게 된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람 사이의 관계는 조금씩 변한다. 멀찍이서 바라볼 때 사람 사이의 관계는 별문제가 없다. 친밀한 사이가 되면 부지불식간에 서로 간섭하고, 상대방이 자신에게 맞추기를 바란다. 사회적 얼굴에 가려졌던 내면의 치부가 드러나면서 실망하게 되고 관계가 소원해지는 일이 생긴다. 사람 사이의 관계가 한결같을 수는 없다. 서로 바라는 바가 달라서, 서운하게 해서, 성향이 맞지 않아서 등 관계가 틀어지는 이유는 다양하다. 
 
사람은 서로 맞지 않으면 멀어지는 게 당연하겠지만, 그럴 때도 신뢰를 깨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제 한 말을 오늘 뒤집는 일은 자신의 삶을 부정하는 일이다. 이기적인 욕심으로 타인에게 상처를 남기는 것은 관계 회복을 불가능하게 하는 요인이 되고, 더 나아가 사회 분위기까지 경직시킨다.
 
요즘은 대면으로 만나는 인간관계도 있지만, 인터넷상에서만 소통하는 사람들도 많다. 코로나 시대에는 SNS에서 타인과 만나는 일이 더 잦아지는 것 같다. 성향이나 취미가 비슷할 때 서로의 글에 공감하거나 댓글을 단다. 평소 소통이 잘 되다가도 상반되는 주장이라도 할라치면 팔로우를 끊거나 친구 차단을 하기도 한다. 
 
비언어적 표현이 어려운 글로만 소통하다 보면 오해의 소지가 생기기 쉽다. 반론을 제시하거나 댓글로 응수할 때 감정적으로 돼선 안 된다.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유연성이 필요하다. 한 사람의 글을 읽고 공감하고 댓글을 다는 일이 별거냐 할 수도 있겠지만, 거기에는 생각을 공유한 시간이 있다. 그런데 어떤 이유로 돌연 차단이 되면 지나간 시간이 송두리째 사라져 버리는 기분이 든다. SNS의 특성상 사람을 쉽게 만나고 끊을 수 있는 속성이 있다손 치더라도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면 어떨까 싶다.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이라는 말이 있다. 너무 가까이도 하지 말고 너무 멀리도 하지 말라는 말이다. 예쁘다고 물을 너무 많이 주면 선인장이 썩어버리듯이, 사람에게도 애정이 지나치면 그 관계가 깨어지기도 한다. 물론 지나치게 소홀해도 마찬가지 결과를 불러온다. 서로 소통함으로써 이해의 폭을 넓힐 필요가 있다. 대면에서든 비대면에서든 서로 배려하고, 사람 사이에 아름다운 거리를 유지하는 지혜로움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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