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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성제 수필가
설성제 수필가

아파트 복도에 철로 레일이 뻗어있다. 집집마다 현관은 닫혀있고 달리는 차도 없는 적막한 기찻길이다. 옆집까지 천리만리길. 오늘날 이웃과의 거리를 뜻하는 어느 포스터 내용이었다. 우리 집 현관 밖에도 레일이 깔렸다. 나의 잘못이 아닌 전적 내 이웃의 잘못으로 치부했다. 아파트 복도에는 무심하고 무정한 시베리아 바람만 불어쳤다.

 오른편 옆집에는 노부부가 산다.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부르는 호칭은 '야아!'이다. 지옥의 염라대왕이 벌벌 떨고 있는 사람에게 오달지게 한방 먹이는 소리 같아 할아버지께 아무 잘못 없는 나조차 사시나무 떨듯 했다. 할머니는 고양이 앞에 쥐처럼 옴짝달싹 못하는 모양이었다. 할머니의 찍, 소리 한번 들어본 적 없는 나는 할머니에 대한 연민과 할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쌍벽을 이루며 솟아올랐다.  

 한번은 내가 할아버지 집 앞을 지날 때 문이 벌컥 열어젖혔다. 할아버지와 딱 마주쳤다. 순간, 내 안에서 '야아!'라는 화산이 폭발하는 줄 알았다. 정말이지 하마터면, 내 입을 틀어막지 않았으면 할아버지를 향해 "야아!"하고 소리를 지를 뻔했다. 혼비백산, 그 앞을 빠져나왔을 때 이내 또 천둥 같은 고함이 내 등 뒤에서 내리쳤다. "야아아!" 

 왼편 옆집은 내가 이사 왔을 때 인사 나눈 첫 이웃이었다. 잘 부탁드린다는 말에 이주민을 맞이하는 원주민 같이 약간은 근엄하게 군 아저씨. 그래도 인사를 나누는 좋은 사이가 되었다. 그런데 이집 아저씨가 우리 집 현관 앞을 지나치면서 열린 문으로 집안을 빤히 쳐다보는 게 내 눈에 몇 번이나 걸렸다. 그때부터 이하 모든 이유인즉슨 불문하고 그 아저씨는 나한테 투명인간이 되고 말았다. 인사는커녕 눈길 한번 주지 않았기에 그쪽 입장에서 보면 돌변한 나를 어리둥절해 할 것이 불 보듯 뻔했다. 그렇게 한파를 일으키며 복도를 지나다니다 내 이웃만큼 무례하고 불량한 사람들이 어디에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차디찬 태도가 당연지사라 여겼다.

 어느 해 봄부터 아파트 마당에 핀 꽃들을 보는 재미에 빠져들었다. 목련부터 시작해 벚꽃과 영산홍, 좀 있으면 봉선화, 분꽃, 맨드라미까지도 자릴 잡아갔다. 꽃밭을 킁킁거리며 엎드려 있노라면 내 불편한 이웃들도 저만치서 스멀스멀 나오는 것이 보였다. 그러다 점점 그들을 바라보게 되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자주 차를 타고 외출을 한 후 돌아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럴 때면 할아버지는 부축 없이도 얌전하게 집으로 들어갔고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뒤따랐다. 나는 할머니가 할아버지께 듣는 호칭에 대해 얼마나 상처가 많을까 싶어 그동안 품어온 연민을 내보였다.

 "할머니! 안녕하세요? 늘 할아버지 모시고 다니시네요?"
 "우리 할아버지 몸이 많이 아파서 날마다 병원 다녀요. 나간 김에 바람도 쏘이고요."
 할머니가 교직에 있다가 은퇴하셨다는 소문을 들었던 게 떠올랐다. 아이 다루듯 자상하고 따뜻하게 할아버지를 대하는 것과 한 번도 따뜻한 적 없었던 이웃인 나를 대하는 목소리가 참으로 조용하고 부드러웠다.

 이웃 아저씨는 가끔 마당 꽃밭 앞에서 아들과 배드민턴을 쳤다. 중학생으로 보이는 아들이 제 아빠를 최고로 여기며 셔틀콕을 날릴 때 아저씨의 웃음이 낯설고도 신기해보였다. 아들이 있어 아버지 존재가 완성되는 느낌. 오래전 중국 땅에서 본 고구려의 광개토대왕 비석이 생각났다. 아들인 장수왕이 아버지를 위해 세웠다는 그 비를 보며 아버지가 있어 아들이 존재하지만 '아들이 있어 아버지 존재가 확고해진다'는 생각을 했었다. 불량한 이웃으로 여기며 상대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아저씨가 자식으로 인해 비로소 사람다운 사람으로 돌아온 것처럼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복도에서 마주친 아저씨가 먼저 인사를 해왔다. 놀라운 것은 내가 인사를 받아주지 않았다는 것. 나의 밴댕이 소갈딱지가 그대로 드러나 버리는 순간이었다. 다음번 부딪쳤을 때도 그가 멋쩍은 얼굴로 인사를 건네 왔다. 나는 마지못해 어영부영 인사를 했다. 그럼에도 왠지 막혔던 변기가 뚫린 듯 물이 쾌재를 부르며 빠져나가는 듯했다. 몸과 마음이 절로 가벼워졌다. 

 "야!" 천둥소리를 질러놓고 금세 조용해지는 할아버지. 행여 할머니가 호칭에 대한 반란을 일으킨다면 나는 버선발로 쫓아가 할머니 편을 들 준비가 되어있다. 그러나 여태 겪은바 결코 그런 반란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 할머니는 그저 번개를 삼키는 피뢰침 같다. 아저씨는 이제 남의 집 안을 쳐다보지 않고 앞만 보며 지나간다. 서로 말은 하지 않았지만 아저씨도 뭔가 깨달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나저나 내 이웃들은 이런 나의 성질머리를 어떻게 여길지 자못 궁금했다. '진정 이웃을 품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하는 너!' 내 안의 누군가가 말해왔다. 한 동네 한 공간에서 다닥다닥 붙어있는 내 이웃에게 나야말로 불편하고도 슬픈 지체 같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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