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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훈 편집국장
조재훈 편집국장

그야말로 오리무중, 첩첩산중이다. 자욱한 안갯속 풍경은 '낭만'이었지만 안개가 걷힌 현실은 잔인한 '유혹'에 불과했다. 하나둘 드러나는 금융시장의 실체가 그렇다. 글로벌 경제에 인플레이션 비상등이 켜지면서 '빚투' '영끌'로 모처럼 구름 위 산책을 즐기던 젊은이들이 혼비백산하고 있다. 쇼크도 이런 쇼크가 없다. 한순간에 '벼락 거지'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당장 눈앞이 캄캄하고 숨이 콱 막힌 듯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금융시장은 안개와 같아서 시작과 끝을 구분조차 하기 어렵다고 했다. 오래전 흥행했던 영화 '폭풍속으로' 한 장면이 교차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거친 비바람과 거대한 파도 속에 모든 게 빨려 들어가는 형국이 지금과 별반 차이가 없다. 한때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디플레이션이 우려됐다. 하지만 지금은 경기회복 과정에서 풀린 전대미문의 유동성 자금이 문제를 유발한다. 원자재, 상품, 자산 등의 가격을 단숨에 밀어 올리면서 이제는 인플레이션을 우려해야 하는 지경이 된 셈이다. 
 
벌써 장바구니 물가는 인플레이션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해도 이상할 게 전혀 없다. 자고 일어나면 파, 계란, 고기 등 '밥상 물가'가 급등해 있다. 거기다가 기름값까지 덩달아 뛰면서 석유류와 공업제품 가격마저 끌어올리고 있다. 외식물가도 크게 상승했다. 전·월세가는 견디기 힘들 정도로 대폭 치솟았다.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가 이를 입증한다. 4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07.39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3% 상승했다. 코로나19 여파로 0%대 상승률을 기록하다 지난 3월 1%대로 오른 뒤, 3년 8개월 만에 최고 상승 폭을 기록한 것이다. 물론 그동안 물가가 억눌려 왔기 때문에 어느 정도 반등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일 수도 있다. 최근 물가 지표가 그렇게 우려할 만한 수준이 아니라는 진단도 있다. 하지만 체감경기가 서민들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음은 재래시장과 슈퍼마켓, 구멍가게가 대변해 준다.
 
물론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해선 금리 인상이 불가피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양날의 칼이다. 금리 인상은 자칫 빚이 많은 가계와 기업에 치명적일 수 있다. 작금의 서민 살림은 코로나 사태로 가뜩이나 위축된 탓에 작은 충격에도 휘청거릴 만큼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양상이다. 자영업자들과 소상공인들의 폐업 릴레이도 마찬가지 형편이다. 여기에 금리까지 오르면 이들은 물론 봉급생활자의 실질소득과 구매력이 줄어든다. 서민들의 생계가 결국 위기에 몰리게 된다. 
 
게다가 금리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증시다. 벌써 주식시장이 출렁이고 있다. 각종 대출 억제책이 중첩된 상황에서 금리가 오르면 '영끌' '빚투'가 어려워져 수요보다 공급 우위의 시장이 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주요 선진국 가운데 가장 무거운 부채를 짊어진 우리나라 가계에 비상이 걸리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금리가 1% 포인트만 올라도 가계의 금융부담은 12조원이 증가한다는 분석도 있다. 가계 빚의 대부분은 주택과 주식에 잠겨있어 금리 인상으로 자산 가격이 떨어지면 이중삼중의 타격을 받게 되는 건 당연지사다. 
 

삽화 ⓒ왕생이

이러니 서민들의 얼굴에서 희망의 빛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어두운 그림자만 짙게 배어 여기저기서 한숨 소리가 새어 나온다. 이 지경인데도 대통령은 취임 4주년 기념 연설에서 공감력 제로 상태의 복장 터지는 소리만 풀어놨다. 코로나 시국을 나름 선방해 수출 호조로 이끈 것은 기업들이다. 그리고 불편과 고충을 묵묵히 참고 견디며 방역에 협조한 국민들의 노력도 결코 가벼이 넘길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들의 성과는 온데간데없다. 억장이 무너질 노릇이 아닌가. 서민들이 겪고 있는 현실과는 너무도 동떨어지는 결과를 언급하는 모습에 다들 거부감마저 들었다고 한다. 허탈한 웃음이 분노의 미소로 바뀔 정도다. 부족함은 감추는 것보다 차라리 드러내고 인정하며 사과할 때 더 큰 공감을 이끄는 법이다. 
 
설마 하는 상황이 파도처럼 밀려와 서민들의 삶을 덮친다면 바이러스보다 더 무서운 경제공황 사태로 이어질 우려가 크다. 부동산, 주식, 가상화폐로 몰린 유동성 자금으로 인한 거품들이 한꺼번에 터진다면 금리는 오를 수밖에 없다. 하락하는 화폐가치로 인해 물가는 치솟기 마련이다. 국민들의 삶은 또 한 번 피폐해질 것이 뻔하다. 경제 전문가들이 앞다투어 걱정하는 이 모든 시나리오가 지나친 기우로 끝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폭풍에 대비하고 준비해야 하는 일은 재난재해 시국에만 국한된 게 아니다. 금융위기, 가계 위기에도 필요한 법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추이를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하지만 '유동성 파티 종료 후 폭풍에 대비해야'한다는 경고성 발언을 아끼지 않은 이유를 다시금 곰곰이 생각해 볼 때다. 이제는 정부나 각 경제 주체들도 인플레이션에 대한 대비가 심각하게 필요한 시점이다. '상징적 의미'에 그치지 않으려면 보다 현실적인 보완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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