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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은숙 시인
송은숙 시인

코로나가 끝나면 가장 하고 싶은 일로 여행을 꼽는 사람이 많다.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못하니, 그저 비행기만 타고 하늘을 돌다 내려오는 상품도 순식간에 매진된다고 한다. 나도 마찬가지라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 '세계 테마 기행'이니 '걸어서 세계 속으로'니 하는 여행 관련 프로그램이 나오면 눈을 떼지 않고 시청하는 편이다. 얼마 전엔 '그 섬에 가고 싶다'란 프로그램을 보다가 스무 살 때의 남해 여행을 떠올리고 한참 추억에 잠겨서 서성거렸다.

 그해 여름, 친하게 지내는 언니와 함께 남해도에 갔었다. 남해도는 1973년에 육지와 섬을 잇는 현수교가 개통되어 사실 육지와 다름없이 편히 갈 수 있는 곳이지만 어쨌든 섬 여행은 처음이라 기대 반 설렘 반으로 다리를 건넜다. 남해도의 끝 미조란 곳을 가기로 했는데 버스를 잘못 타서 그곳에 도착했을 땐 해가 설핏 기울고 있었다. 우리는 잠자리를 구하기 위해 서두르다가 마침 길가 밭에서 김을 매던 두 여자를 만났다. 아주머니 한분과 딸인 듯싶은 몹시 해사하고 고운 처녀 농군이었다. 민박할 곳을 찾는다고 하니 이 동네에는 민박집이 없으니 괜찮다면 자기 딸 방에서 자고 가라며 처녀를 가리켰다. 물론 우리는 대찬성이었고 비로소 안도의 숨을 쉴 수 있었다. 

 양풍리란 동네였다. 그 집은 아들 하나에 딸이 여덟이나 되는 딸 부잣집이었는데 처녀 농군은 큰 딸로 올해 스물세 살이라고 했다. 인사하러 나온 딸들의 얼굴이 하나 같이 고와서 마당이 아연 환해졌다. 그날 밤은 하나의 축제 같은 날이었다. 섬들 사이에 달이 뜬 것을 처음 보았다. 달맞이꽃처럼 노란 달빛이 잔물결에 길게 부서지며 반짝거렸다. 달이 뜬 바다에서 큰딸이 저어주는 나룻배를 타니 동정호에서 달과 함께 노닐었다는 이백 생각이 났다. 뽈락이라는, 우스운 이름의 고기만 자꾸 잡히는 바다낚시 구경도 하고, 동네 친척 몇 분이 다니러 와서 평상에서 밤늦게까지 이야기꽃도 피웠다. 그 뒤로도 한숨 자지 않고 방파제 끝에서 끝없이 출렁거리는 바닷소리를 들었다.

 이튿날엔 해돋이도 구경했다. 다도해라 수많은 섬들에 가려 해는 보이지 않았지만 하늘과 바다가 일시에 분홍빛으로 물들어 분홍 장미나 코스모스 밭에 온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밭은 바람에 한시도 쉬지 않고 꽃들이 귀엽게 고개를 흔드는, 그러니까 잔물결이 끝없이 부서지는 드넓은 곳이었다. 해돋이를 보고 돌아오니 정원에 커다란 호랑가시나무가 보였다. 나무 밑엔 하얀 조개껍질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게다가 아침상에 오른, 일일이 이름을 물어서 알게 된 파래 김치와 톳나물, 꼬시래기 무침 같은 해산물을 보니 여기가 남도 바닷가라는 게 실감이 났다. 

 아침을 먹고 집을 나서니 큰딸이 선물이라며 전복껍데기 네 개를 주었다. 큰 전복 안에 작은 전복, 더 작은 전복이 마트료시카 인형처럼 차례로 들어있는, 안쪽이 무지개처럼 눈부시게 빛나는 전복껍데기였다. 그리고 동구 밖까지 따라와서 우리를 배웅했다. 

 미조에서 상주해수욕장까지 모래와 숲이 아름다운 바닷가를 천천히 걸어오면서 여름바다가 그처럼 풍요롭고 찬란하다고 느낀 것도 환하게 웃어주던 그 집 여인네들의 고운 마음 씀 덕분이리라. 갈매기 같은 바닷새가 눈에 띄지 않아서 "왜 바다에 새가 한 마리도 없지요?"물으니, "다들 더워서 먼데로 피서 갔는 갑소." 껄껄 웃던 어느 아저씨. "더운데 들어와서 물도 마시고 쉬었다 가이소." 낯선 우리에게 손짓을 하던 수국이 하얗게 피었던 집의 할머니. 그래서 나는 지금도 섬들 사이에 누워 숨 쉬는, 고양이 눈처럼 투명하고 강렬한 초록빛 여름바다를 사랑한다. 그리고 남해도 하면 금산이나 상주해수욕장보다 먼저 고즈넉한 양풍리 마을과 티 없이 웃던 그곳 섬 사람들을 떠올린다. 

 사실 얼마나 근사하고 놀라운 일인가. 전혀 낯선 곳, 낯선 사람들이 서로 관계를 맺게 되고 그곳이 뜻밖에 다정한 곳이 되어버림은. 우리가 처음 가본 곳, 다시 오리란 아무런 보장이나 기약도 없는 작은 마을에서 만나게 되는 한 모금의 시원한 물과도 같은 친절과 웃음은 우리 마음속에 각인되어 그곳은 언제까지 그리운 곳으로 남게 되는 것이다. 이런 뜻밖의 만남이 여행이 주는 가장 큰 묘미일 것이고, 이러한 만남에 대한 갈증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가 끝난 뒤 가장 하고 싶은 일로 여행을 꼽는 것일 게다. 
 미조엔 그 뒤 가보지 못했다. 양풍리는 어떻게 변했을까. 여전히 뽈락이 많이 잡힐까. 스물 셋 처녀 농군은 이제 환갑을 넘은 할머니가 되어있을 테고, 그 어머니처럼 웃음이 선하고 고운 분으로 나이 들어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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