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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정 온남초 교사
이민정 온남초 교사

아이들을 키우는 학부모이기도 한 동료 선생님들의 대화를 듣고 있노라면 두 가지 생각이 든다. 첫째, 조금이라도 일찍 태어나서 다행이다. 둘째, 나는 아이를 못 키우겠다. 

 영어유치원, 교구 놀이 수학, 초등학교 때 중학교 수학 선행학습, 중3까지 고등학교 수학 선행학습. 그것도 모자라 이제는 명상, 자존감 사교육까지 받는다는데, 실패하더라도 절대 좌절하지 않는 강철 멘탈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란다. 이렇게까지 안 해도 예로부터 늘 훌륭한 사람들은 있어 왔는데, 이제는 좋은 사람으로 자라는 일이 더 어려워지는 걸까. 게다가 학교에서 이런 말을 들으니 학부모도 교사도 공교육을 못 믿고 있는 것 같아 더욱 갑갑하다. 학교는 더 이상 배움터가 아니라 사교육 결과를 인증하는 곳이다. 선생님들은 학원에서 다 배웠다고 말하며 학교 수업에 흥미를 보이지 않는 아이들보다 수업 내용이 잘 이해가 안 돼서 머뭇거리는 아이들을 더 곤란해 한다. 뭔가를 처음 배웠다면 첫 시간에 모든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선행학습을 한 학생은 그렇게 하고 있고, 진짜 학교에서 처음 배우는 학생은 '못 따라오는 애', '수업 진도 나가는데 방해되는 애' 취급을 받는다. 누가 수업을 방해하고 누가 반칙을 한 건가. 어른들은 끊임없이 아이들에게 남들보다 앞서가야 한다고, 뒤쳐지면 안 된다고 압박한다. 그러더니 어떤 날은 서로 배려하고 이해하며 양보하라고 한다.  

 정리하자면 부모와 교사가 원하는 아이는 이렇다. 탄탄한 선행학습으로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원하는 답을 발표해준다. 그렇다고 젠 체 하지 않으며 친구들과의 교우 관계도 좋다. 각종 대회를 착실히 준비해서 상을 휩쓸며 특목중, 특목고, 명문대까지 가겠다는 인생의 장기 계획을 세우고 있다. 모교의 자랑, 부모의 평생 연금 보험 감이다. 그런데 이런 아이들이 최근 자살한 청소년들의 보편적인 캐릭터이기도 하다. 자기 의견 한번 내세워보지 못하고 겉으로는 착하게, 속으로는 곪아 터지며 사는 아이들. 이게 아이다운 삶인가?"

 이 글은 2013년 5월에 썼던 글이다. 며칠 전 SNS에서 '8년 전 오늘'의 추억이라고 보여준 글이다. 2년 차 신규교사였던 내게 학교는 전쟁터 같은 곳이었다. 영어 전담을 하고 있어서인지 경쟁과 격차는 더 적나라하게 보였다. 해외 어학연수를 다녀온 아이들이 기세등등하게 영어 문장을 읽을 때, 알파벳도 쓰지 못하는 '부진아'들이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같은 교실에 앉아 있었다. 전국의 학교들이 '글로벌 리더'에 대한 욕망으로 가득했고 한 학기에 두 번씩 시험을 쳐서 점수로 줄 세우는 게 당연하던 시절, 성적 비관으로 인한 청소년들의 자살이 잇따라 보도되곤 했다.   

 강산이 80% 바뀌는 동안 학교도 많이 달라졌다. 초등학교에서는 일제고사가 사라지고 과정중심평가로 학생의 성취를 평가한다. 평가가 자유로워지니 프로젝트 학습 등 학급별로 특색 있는 교육 활동을 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부진아'라는 말 대신 '느린 학습자'라는 용어를 쓰며, 학생의 학력을 위해서 교육청에서 찾아가는 학습클리닉을 운영하고 심리 상담을 제공하는 등 정서적 지원에도 힘쓰고 있다. 사교육과 선행학습을 조장하는 대회들은 대부분 폐지되었다. 과거에 비해 학교가 덜 경쟁적인 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렇다면 위의 글은 이제 과거의 기록일 뿐인가, 아니면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가? 고학년 학생의 보호자와 상담을 하면 늘 "이제 고학년이니까 공부도 좀 해야 하는데 걱정이에요"라는 말을 듣는다. 여기서 말하는 공부는 중학교 선행 학습 또는 문제 풀이식 공부를 뜻할 것이다. 적지 않은 보호자들은 아직도 책상 앞에 앉아 객관식 선다형 문제를 풀거나 뭔가를 외우는 것이 공부라고 생각한다. 덕분에 아이들은 쉬는 시간에도 자리에 앉아서 중학 필수 영단어를 외운다. 되도록 과제 부담을 주지 않으려 수업 중에 모든 걸 다 끝내려고 하는데도 아이들은 계속 학원 숙제에 쫓긴다. 일주일에 한 번 내주는 글쓰기 과제는 안 하지만 논술 학원은 간다. 고학년이라면 해야 한다는 그 '공부'가 앞으로의 중학교, 고등학교 생활을 위해 필요한 것인지 초등교사로서 선뜻 판단할 수 없다. 그러나 확실한 건 그것이 지금 현재의 배움과 행복을 방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점은 8년 전에 비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8년 전 글의 마지막 문장은 '아이들이 너무 불쌍하다'였다. 공부와 경쟁에 찌든 아이들도, 이미 출발 지점이 한참 뒤쳐진 아이들도 불쌍하기만 했다. 안타까워할 뿐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저렇게 분노로 가득 찬 글만 썼다. 나는 이제 아이들을 불쌍해하지 않는다. 대신 우리가 함께 학교에 있는 시간 동안 무엇을 같이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아이들에게 부족한 것을 채워줄 방법을 찾는다. '아이들이 어른들의 미래'라면, 나는 현재를 행복하게 살아갈 줄 아는 아이들에게 내 미래를 맡기고 싶다. 이 글을 읽는 어른들도 코인이나 주식 대신 곁에 있는 아이들의 행복에 투자하시길 바란다. 이민정 온남초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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