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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훈 편집국장
조재훈 편집국장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이카루스의 날개'는 중용(中庸)의 미덕과 이성, 그리고 절제를 암시한다. 깃털과 밀랍으로 만든 날개를 얻어서 '미노스의 미로'를 탈출할 수는 있었지만 아름다운 태양이 좋아서 솟아오르다 결국 날개가 녹아내려 추락해 죽고 만다. 명예나 위상도 이와 다를 바 없다. 올라갈 땐 힘들어도 떨어지는 건 한순간이다.

오스트리아 출신 여류시인 바하만은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라는 시를 써 유명세를 탔다. 

'…/ 교활한 까마귀나 끈끈한 거미의 손 / 그리고 덤불 속의 깃털에 속아 넘어가지 마세요 / 또 게으름뱅이의 나라에서는 먹고 마시지 마세요 / 그곳의 남비와 항아리에선 거짓 거품이 일거든요 /…'

한때 '울산' 하면 떠오르는 말이 '부자 도시'였다. 글로벌 경제효과의 순풍을 타고 수출 경기가 한창 활발하게 타오르던 호시절의 명성이었다. 조선, 자동차, 석유화학 등 3대 주력산업의 생산액이 큰 폭으로 오르고 대기업 정규직 임금 수준도 꽤 높았던 덕택이었다.

실제로 울산은 2011년~2016년 동안 가계소득에서 전국 1위에 올랐다. 그러나 2017년 이후 세종과 서울, 경기도에 밀리면서 4위로 떨어졌다. 지역별 소득액은 세종 7,425만원, 서울 6,575만원, 경기도 6,503만원, 울산 6,400만원이었다. 이마저도 대기업 근로자의 고임금에 편중된 것이었다. 대부분의 중소기업과 영세상인들의 소득수준은 크게 낮았다. '겉만 화려한 허울 좋은 간판'이라는 비판도 일리가 있었다고 본다.

최근 발표된 국토연구원의 '지역별 소득 격차와 불균형 보고서'도 유사한 결과를 보였다. 2000년에서 2019년 사이 지역총소득이 전국 651조원에서 1,940조원으로 298% 늘어나는 사이 울산은 26조 5,000억원에서 63조원으로 20년 동안 237% 늘어난 데 그쳤다.

2019년 기준 시·도별 통계에서도 서울과 경기도가 각각 475조원, 509조원으로 1, 2위를 달렸고 울산은 경남, 부산, 인천, 경북, 충남, 대구에 이어 9위로 밀렸다. 이 때문에 종합소득세 순위도 울산은 15위로 최하위를 기록했다. 한마디로 울산시민의 자부심을 무참히 짓밟은 성적표다.

불편한 진실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기업의 부가가치 상당액이 금융 산업과 대규모 기업의 본사가 소재한 수도권으로 유출된다는 것이다. 울산의 화폐 환수율이 매우 저조하다는 방증이다. 산업구조 고도화 작업이 절실한 상황에서 연구개발 자원과 생산자 지원 서비스산업 등이 매우 취약한 탓이다. 울산의 교육, 문화, 국제화, 정보 등 제반 분야들도 타 도시보다 상대적으로 열악하다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삽화 ⓒ왕생이
삽화 ⓒ왕생이

최근에는 코로나19라는 변수로 또 한 번의 위기를 겪고 있다. 울산을 중심으로 변이 바이러스 집단 감염이 발생하면서 울산이 기피 지역으로 꼽히기도 했다. 영국 변이 바이러스가 울산에서 처음 발견된 건 지난 3월 8일이었다.

부산 한 장례식장에 다녀온 환자 한 명이 장례식장에서 변이 '지표환자(처음 발견된 환자)'로부터 감염돼 변이 확진자로 기록됐다. 질병관리청이 최근 펴낸 '주간 건강과 질병'에 따르면 지난 3월 한 달간 주요 변이 바이러스 집단 감염 사례 확진자 153명 중 울산은 75명에 달했다. 전국 발생의 절반(49%) 가까이 차지한 셈이었다. 울산의 영국 변이 바이러스 검출률도 63.8%로 전국 평균보다 4배 높았다. 억울한 측면도 없지 않지만 '울산사람'이란 사실을 밝히기가 이번처럼 껄끄러웠던 적도 없었던 것 같다.

이 와중에 이른바 3살 원생에 대한 '물고문' 학대가 드러나 전 국민에게 충격을 줬다. 울산의 한 국공립 어린이집에서 벌어진 사건이었다. 이 어린아이에게 물 7컵을 억지로 마시게 했다니 어디 가당키나 한 일인가. 추가 조사에서는 학대를 당한 것으로 추정되는 원아가 46명에 이른다고 했다. 확인된 학대 정황만 무려 700여 건이나 된다니 경악을 금치 못한다. 울산의 이미지 실추는 말할 것도 없고 아동학대예방의식 실종에 대한 강한 경고의 메시지로 읽힌다.

울산은 역사와 예술을 바탕으로 한 '반구대'의 문화유전인자가 뿌리를 내린 도시다. 울산이 가진 잠재력은 근대화의 기수를 낳았고 이제는 4차 산업과 수소경제의 튼튼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 이는 곧 울산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선도하는 대한민국의 미래라는 이야기다.

하지만 도시의 매력을 잃으면 도시 경쟁력도 덩달아 추락하기 마련이다. 기업 유치도, 양질의 일자리도 줄어들 게 뻔하다. 소득수준 향상에는 더더욱 걸림돌로 작용한다. '추락한 날개'를 서둘러 보수하고 개선해야 하는 이유다. '날개' 없이는 다시 하늘을 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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