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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정 동부도서관 사서

“사서가 뭐 하는 건데?"
 
곧 마흔을 앞두고 사서 공무원에 합격하고 첫 출근하는 나에게 7살짜리 딸이 물었다. 그래 난 나이 많은 초보 사서다. 
 
단정한 첫인상을 위해 심사숙고해서 고른 4㎝ 미들 굽의 구두를 신고 출근한 첫날, 당일 배정받은 어린이 자료실에서 하루 종일 발뒤꿈치를 들고 책 정리를 했다. 둘째 날부터 푹신한 슬리퍼와 손목 보호대는 초보 사서에게 필수품이 돼버렸다.
 
사실 사서가 되면 데스크에 앉아 도서를 대출, 반납해 주는 일만 하며 남는 시간엔 책을 읽는 여유로운 상상을 했었다. 
 
사서가 되고 책은 곧 일이 돼, 책은 읽지 않고 보기만 한다. 
 
사서는 도서 대출, 반납 업무 외에 회원증 발급, 책 보수, 서가 정리, 책을 통한 독서문화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운영하며, 이용자들을 위해 신박한 행사를 개발하기 위해 많은 고민을 한다. 
 
백조는 물 위에 우아하게 떠 있지만, 그러기 위해서 물속에서는 쉴 새 없이 물장구를 치며 안간힘을 쓴다던데, 사서(司書)와 너무 비슷하다. 
 
사서는 책을 좋아하는 나에게 덕업일치, 꿈의 직업이었다. 하지만 막상 일을 시작하고 보니 가정에서는 어느 정도 경력직 엄마가, 도서관에서는 아직 모르는 것 투성인 시행착오 많은 초보 사서로 전락하면서 요즘 말로 현타가 왔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눔과 보람이 있는 이 일이 나는 너무 좋다. 도서관으로 현장학습 온 아이가 그날 오후 엄마 손을 잡고 도서관에 와서 회원증을 만들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고, 이용자들이 찾는 책의 청구기호가 적힌 종이를 손에 쥐고 서가를 누비며 한 권씩 쏙쏙 찾아낼 때마다 나도 모르게 짜릿함을 느낀다. 
 
사서가 갖춰야 할 자질 중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바로 '이용자에게 최대한 봉사하려는 적극적인 자세'이다. 
 
나는 엄마가 되면서부터 나도 모르게 오지랖이 많이 늘었다. 세상을 다 잃은 듯 뽀로로 책을 찾아내라고 울고 부는 아이에게 뽀로로 책을 얼른 찾아 건네주면 눈물을 뚝 그친다. 
 
손주에게 보여줄 책을 찾기 위해 종이에 빼곡하게 책 이름을 써오신 어르신께 먼저 다가가 도서 검색 및 대출 방법을 알려드리면 돌아오는 감사 인사에 오히려 내가 더 송구스러워진다. 
 
나뿐만이 아니라 몇십 년간 사서로 한 우물만 파신 함께 일하는 선배 사서들은 나보다 훨씬 더 적극 봉사를 실천하고 계신다. 
 
하지만 코로나로 설치된 칸막이 높이만큼 아직도 사서에게 도움 청하기를 망설이는 이용자들이 적지 않다. 
 
영화 속에 종종 등장하는, 깐깐하게 보이는 뿔테를 끼고 왠지 방해하면 안 될 것 같은 사서 이미지 때문인지, 아니면 이용자에게 명확한 답을 주지 못해 사서에게 신뢰를 잃은 예전 경험 때문인지, 먼저 쉽게 다가와 주지 않는 이용자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에 다시 한번 적극 봉사를 다짐하게 된다. 
 
사서는 책이 아니라 이용자들을 더 좋아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이모님이라고 불려도 먼저 다가와 주면 우리는 사서로서 뿌듯함을 느낀다.
 
누군가에게 도서관은 꿈을 찾는 곳이 되고, 인생의 멘토를 찾는 곳이다. 또 다른 이에게는 킬링타임용으로 가볍게 들리는 곳이기도 할 것이다. 어떤 사람도 차별하지 않고 반기고 안아주는 곳, 그곳에 활짝 마음의 문을 연 사서(司書)가 산다. 
 
사서로서 이제 겨우 두 계절을 지내왔을 뿐이다. 아줌마 초보 사서는 오늘도 딸의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출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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