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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양옥 울산금연운동협회 사무국장

“됐습니다. 됐고요" “끝까지 안 들어도 다 알겠네" “더 이상 들을 것도 없어~" “어머니, 그게 아니고요~" “네, 아니오로 대답하세요"
 
과거의 드라마는 보는 이의 속을 정말 답답하게 만들었습니다. 매회 마지막 장면은 일관되게 답답했고 어이가 없었지만 그 덕에 다음 방송 날이 기다려지곤 했습니다. 이런 장치가 드라마를 이끌어가는 힘인지는 모르겠으나 드라마를 보는 동안 가슴을 쳤던 것은 사실입니다. 
 
법정 드라마의 경우 이런 고구마 같은 상황은 더 합니다. 시청자들은 극 속의 사실관계를 이미 알고 있어 '네' 또는 '아니요' 의 답만 요구하는 검사가 얄밉고 또 사실관계를 떠나 사건의 맥락을 이야기하지 못하는 피의자를 보며 착하고 어리숙한 것도 죄라며 안타까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극의 말미엔 곡절을 지나 엉켜져 있던 매듭이 하나 둘 풀어지긴 했지만요. 
 
자식을 키우는 대다수의 부모는 자녀들의 성장과정에서 소소한 사건과 사고를 접합니다. 그런 경우 많은 부모들은 사고 상황에서 아이들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지 않고 지레짐작을 하거나 어른이라는 혹은 부모라는 우위적 생각에 갇혀 아이에게 상처를 주곤 합니다. 변한 세상만큼 대화도 자주 하고 이해하려 노력하지만 저 또한 부지불식간에 상처를 주었을지도 모릅니다. 
 
위의 두 상황을 볼 때 독자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는가요? 저의 경우는 '말 좀 하게 내버려두지' 와 '말 좀 잘 들어주지' 의 두 가지 상황으로 정리됩니다. 약자의 입장이지만 이런 생각이 들었던 까닭은 드라마의 경우엔 대충의 극의 흐름을 알고 있기에 관조적으로 말할 수 있고, 육아의 경우에서는 시행착오를 통한 뼈아픈 경험이 있어서 그런 듯합니다. 그러나 두 상황 모두 답답하기는 매 한 가집니다. 
 
최근 몇 년 동안 자주 봐서 좋을 일 없는 청문회, 특히 인사청문회를 더러 보았습니다. 청문회장은 다들 아시겠지만 핵심에 인사 대상자가 있고 주변으로 나름의 검증 자료를 준비한 국회의원들이 즐비하게 있습니다. 어떨 땐 그 모습이 먹잇감과 그를 둘러싸고 으르렁거리고 있는 하이에나와 다를 바가 없어 보여 청문회장이 약육강식의 세렝게티 같기도 합니다. 청문의 기본적인 준비도 없이 잘잘못만을 따지고 판단하기에 급급한 것이 안타까운 자립니다.
 
많은 사람들이 청문회라고 하면 질문하고 대답하는 자리라고 생각하지만 실제 한자를 보면 청문(聽聞)은 '듣고 듣는' 것입니다. 차라리 만연한 오해처럼 질문을 하고 대답을 하는 자리라면 중간 이상은 되지 싶지만 이 경우도 드뭅니다. 방송을 보고 있자면 모두들 말하지 못해 안달 난 사람들처럼 한 단어라도 더 말하려 기를 씁니다. 잘 들어야 잘 판단하게 됩니다. 다들 말로서는 귀가 둘이고 입이 하나인 것에 대한 똑같은 생각을 공유하지만 진심을 다해 잘 들어주는 귀가 없음에 더욱 아쉽기만 합니다.
 
안타깝고 가슴 아픈 일이지만 해마다 기업에서 발생하는 크고 작은 사고의 경우도 그러합니다. 사고 발생과 거의 동시에 이미 예견된 사고 혹은 인재(人災)라는 보도가 뜨고 그 내용을 읽고 보다 보면 기업 입장에서는 이래저래 답답할 것 같습니다. 기업을 두둔하는 것은 아니나 발생한 사고를 수습하고 해결책을 마련하는 과정에서도 청문(聽聞)은 부족한 듯합니다. 코로나 시대, 기업은 마스크 착용 외에 불편함을 모를 것 같은 다소 배 아픈 존재라 국민적 정서를 거스를 수도 있습니다. 
 
언론의 속성이 신속 정확한 것이지만 정확한 사실을 차치하고라도 사건에 대한 과도한 표현과 사건과 관련 없는 과오까지 들쑤셔 불안감을 자극하는 고질적 병폐와 신속만 남은 언론의 듣기 점수는 매우 낮아 보입니다. 
 
조사 기관들도 마찬가집니다. 사고에 대한 개요, 기업의 입장, 책임, 대안 및 개선책, 피해 노동자에 대한 고려와 대책을 잘 듣고 들어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켜주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청문(聽聞) 이후의 결과가 오히려 빼박의 처벌일 텐데 말입니다. 힘의 맛을 본 사람도 힘에 당해 본 사람도 제대로 된 힘의 의미를 알면 좋겠는데 툭툭 튀어나오는 갑을관계식의 권력형 청문을 필자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필자는 대학에서 전공 외에 교양으로 인문관련 강의를 합니다. 인문학이 사람의 이야기이고 사람이 살아왔고 살아갈 길을 알게 하는 학문이라 여기며 제자들과 생각을 나누는데 인문학이 낯설었던 제자들도 한 학기가 지나니 제법 생각들을 잘 표현합니다. 몰라서였든 부끄러워서든 입을 꾹 다물었던 학생들이 학기 종강 후 그럽니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잘 듣고 깊이 생각하고 그것을 정리해 다른 친구들에게 말하는 것의 즐거움이 이렇게 큰 것인지 이제야 알게 됐다고.
 
소통의 기본은 먼저 잘 들어주는 것입니다. 귀가 두 개인 이유 두말하면 잔소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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