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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거룩 
 
문성해
 
이 다섯 평의 방안에서 콧바람을 일으키며
갈비뼈를 긁어대며 자는 어린것들을 보니
생활이 내게로 와서 벽을 이루고
지붕을 이루고 사는 것이 조금은 대견해보인다
태풍 때면 유리창을 다 쏟아낼 듯 흔들리는 어수룩한 허공에
창문을 내고 변기를 들이고
방속으로 쐐애 쐐애 흘려 넣을 형광등 빛이 있다는 것과 
아침이면 학교로 도서관으로 사마귀새끼들처럼 대가리를 쳐들며 흩어졌다가
저녁이면 시든 배추처럼 되돌아오는 식구들이 있다는 것도 거룩하다
내 몸이 자꾸만 왜소해지는 대신 
어린 몸이 둥싯둥싯 부푸는 것과 
바닥날 듯 바닥날 듯
되살아나는 통장잔고도 신기하다
몇 달씩이나 남의 책을 뻔뻔스레 빌릴 수 있는 시립도서관과 
두 마리에 칠천 원하는 세네갈 갈치를 구입할 수 있는
오렌지 마트가 가까이 있다는 것과
아침마다 잠을 깨우는 세탁집 여자의 목소리가
이제는 유행가로 들리는 것도 신기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닦달하던 생활이 
옆구리에 낀 거룩을 도시락처럼 내미는 오늘
소독안하냐고 벌컥 뛰쳐 들어오는 여자의 목소리조차
참으로 거룩하다
 
△문성해: 경북 문경 출생. 영남대 국문과 졸업. 1998년 '매일신문' 신춘 당선. 2003년 '경향신문' 신춘당선. 김달진문학상. 젊은시인상. 대구시협상. 시집 '자라' '아주 친근한 소용돌이' '입술을 건너간 이름' '밥이나 한번 먹자고 할 때'.

박정옥 시인
박정옥 시인

사전에서 '거룩'이란 '성스럽고 위대하다'라고 풀이 되어 있다.  
 건강하게 자라는 아이들이 있고 비바람 막아주고 전기가 들어오는 집이 있으며 아침이면 각기 제 갈 곳으로 갔던 식구들이 진을 빼고 돌아와서 다시 충전이 되는 집. 이웃의 시끄러운 수다도 적당한 마트가 있는 것도 정신을 충족하는 도서관을 다닐 수 있는 것도 모두 지극히 평범했던 일상의 연결이다. 나이 들어 몸피가 줄어드는 화자 대신 부풀 듯 몸집이 커가는 아이들. 실로 너무나 평범해서 거들떠보지 않던 미세한 일상들을 시인은 콕 콕 집어서 먹여준다. 

팬데믹 이후 대부분의 사람들은 몇 년 뒤보다 오늘과 내일이 중요하단걸 알아버렸다. 그리고 조금 더 느리게 걸어도 깊게 볼 수 있게 되었다. 이런 현상을 줄탁동시라 해도 될까마는 병아리가 알에서 나오기 위해서는 새끼와 어미 닭이 안팎에서 서로 쪼아야 한다는 것이라 치고 한 발 앞서가는 시인을 따라가면 아니 될 것도 없다 싶다. 깨달음을 향하여 앞으로 나아가는 수행자, 안과 밖에서 쪼는 행위는 동시에 일어나야 하는데, 잘 관찰하다가 시기가 무르익었을 때 깨우침의 길을 열어 주는 시점의 일치에 시인의 눈은 환해진다.

누군가는 말한다. 인간은 놀 수 있을 때만 진정한 인간이 된다고. 말하자면 play는 유용하지 않은 일이며 쓸모없는 일이지만, 그러나 가치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논다는 것은, 좋아하는 것을 배우고 경험하고 재미있는 체험을 할 때 비로소 온전한 인간이 된다고 한다. 능력이 아니라 놀이를 하는 인간으로 존엄을 지켜가기를 바라는 것이 '성스럽고 위대하다'는 시인의 진짜 마음 아닐까. 그렇다면 코로나는 play적인 인간에겐 새로운 선물이 되는 셈이다.  
 박정옥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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