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윤순옥 플로리스트·시낭송가

오래된 노트를 뒤적이다 예전의 나를 만났다. 십수 년 전 써 놓은 글이 거기에 있었다. 무엇이 그토록 간절했기에 밤을 새워 그곳을 다녀왔을까. 
 
아무렇지도 않은 듯 써 내려간 글처럼 보이지만 가슴 한쪽이 아린다. 아팠었구나…. 
 
나는 천양희 시인의 '마음의 달'을 십수 년 전의 나에게 보내 토닥이고 위로한다.
 
'가시나무 울타리에 달빛 한 채 걸려 있습니다. / 마음이 또 생각 끝에 머뭅니다. / 망초꽃까지 다 피어나 / 들판 한쪽이 기울 것 같은 보름밤입니다. / 달빛이 너무 환해서 / 나는 그만 어둠을 내려놓았습니다. / 둥글게 살지 못한 사람들이 / 달보고 자꾸 절을 합니다. / 바라보는 것이 바라는 만큼이나 간절합니다. / 무엇엔가 찔려본 사람들은 알 것입니다. / 달도 때로 빛이 꺾인다는 것을 / 한 달도 반 꺾이면 보름이듯이 / 꺾어지는 것은 무릎이 아니라 마음입니다. / 마음을 들고 달빛 아래 섰습니다. / 들숨 속으로 들어온 달이 / 마음 속에 떴습니다. / 달빛이 가시나무 울타리를 넘어 설 무렵 / 마음은 벌써 보름달입니다'
 
십수 년 전의 24일은 음력으로 보름날이었다. 밤 8시 30분에 보리암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12시가 조금 지나서야 버스는 남해에 도착을 했고, 보리암을 가기 위해서는 산 중턱까지 가는 작은 버스로 갈아타야 했다. 
 
구불구불 휘어진 산길을 버스가 올라가고 휘어진 길을 돌아갈 때는 차 안의 사람들도 길처럼 휘어질 듯 몸이 심하게 흔들렸다. 
 
작은 상점 두어 곳이 있는 곳에 버스는 사람들을 토해냈고, 사람들은 달빛에 의지해서 어두운 산길을 20여 분 걸어 올라갔다. 
 
환한 보름달 끝에는 동그란 달무리가 져 있고, 그날따라 바람도 세차게 불더군. 겉으론 아무렇지도 않은 척 옆 사람과 간간이 이야기를 나누며 산길을 오르긴 했지만, 달빛에 어슴푸레 비치는 사람들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바람에 심하게 흔들리는 나뭇가지 그리고 그들의 그림자, 사실 너무 무서워서 쳐다볼 수가 없었다. 때맞춰 누군가가 하는 말 “요새는 전설의 고향 안하데?"
 
보리암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니 어두운 밤인데도 바다와 산과의 경계를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부둣가의 알록달록한 불빛들도 아름답게 보였다. 
 
법당에 엎드려 기도를 올렸다. 내 소중한 사람들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그들의 안녕을 위한 기도를 올렸다.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과 저린 다리를 풀고 법당을 나왔다. 
 
바람이 한결 시원하게 느껴지더군. 한참을 난간에 기대서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어둠에 익숙해지자 산과 바다가 한결 또렷이 눈에 들어왔고, 희미한 안갯속에 불어대는 바람이 어찌나 부드럽던지.
 
가슴이 부풀어 오른다는 표현이 딱 맞을 거야. 정말 잘 왔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내 속의 작은 찌꺼기조차 다 토해낼 양만큼 크게 심호흡을 해봤다. 산의 맑은 공기가 내 속의 가득 차오르는 듯했다. 
 
그 순간 난 참 착했을 거야. 그 순간만큼은 내가 참 착해졌을 거야.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