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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훈 편집국장
조재훈 편집국장

시골과 읍내를 오가는 버스 운전기사가 하루는 읍내 가게 앞에서 할머니 한 분을 태웠다. 정답게 인사를 하며 타는 할머니는 검은 비닐봉지를 들고 계셨다.

얼마쯤 가서 운전기사가 정지 신호를 받고 버스를 멈췄다. 그때 이 할머니가 다가와 아몬드 한 줌을 손에 쥐여 주셨다. 운전기사는 감사하다며 받아먹었다.

그리고는 얼마쯤 지나서 다시 정차하게 됐다. 이번에도 할머니가 다가와 아몬드 한 줌을 주시는 게 아닌가. 그래서 물었다.

"할머니 아몬드를 왜 드시지 않고 저에게 자꾸 주세요?" 그러자 할머니는 "이가 없어서 야문 거는 못 먹어" "그럼 드시지도 못하는 걸 왜 사셨어요?" "그래서 초콜릿만 빨아 먹고 자네 주는 거여"

한 지인이 재미있다며 들려준 얘기다. 저마다 생각의 차이가 있고 느끼는 바도 다르겠지만 한편의 웃지 못할 에피소드인 것만은 분명하다. 할머니의 순수한 마음에서 우러난 행동이었는지, 아니면 지능적인 생활 습관 탓인지는 분간하기 어려워도 감탄할 만한 반전이 돋보였다. 

분명한 것은 세상일이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닐 때도 많다는 사실이다. 예부터 내려오는 선조들의 깨우침도 그렇다. 공자와 그의 수제자 안회에 얽힌 일화가 대표적이다. 

공자와 그의 제자들이 일주일 내도록 여행을 하고 있었다. 그동안 식량이 부족해 늘 채소만 먹었다. 이런 처지를 안타깝게 여긴 수제자 안회가 어렵게 쌀을 구해 와 밥을 지었다. 우연히 공자가 지나가다 부엌에서 밥 짓는 냄새가 나길래 살며시 부엌을 엿봤다. 그런데 안회가 솥뚜껑을 열고 흰쌀밥을 한 숟갈 떠 입에 넣고 있는 게 아닌가. 

공자는 자기 눈을 의심했다. "평소 안회는 내가 먼저 먹지 않은 음식에는 손을 대지 않았는데 어찌 저럴 수 있을까" 그래서 안회에게 에둘러 말했다. "내가 방금 꿈속에서 선친을 뵀는데 밥이 되거든 먼저 제사를 지내라고 하시더구나"

그러자 안회는 "스승님, 이 밥으로 제사를 지낼 수 없습니다. 제가 뚜껑을 여는 순간 하필 천장에서 흙덩이가 떨어져 스승님께 드리자니 더럽고 버리자니 아까워 제가 그 부분을 이미 먹었습니다" 

제사 음식에 빗대 안회의 잘못을 꾸짖으려 했던 공자는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고 바로 용서를 구했다. 

삽화 ⓒ왕생이
삽화 ⓒ왕생이

때론 어설프게 알 바에야 모르는 것이 더 나은 경우가 많다. 감춰진 진실을 알고 나면 거북하거나 불편한 마음이 이만저만한 게 아니다. 17명의 사상자를 낸 '광주 학동 재개발구역 철거 건물 붕괴사고'도 같은 맥락이다. 수사가 진행될수록 양파껍질 벗기듯 속속 밝혀지는 불법 행위들을 보고 있노라면 기가 차고 열불이 난다. 

내년도 최저임금 심의를 앞둔 노동계와 경영계의 감춰놓은 속내도 마찬가지다. 해마다 그래 왔지만 노사 양측 모두 이런저런 수를 계산하면서 벌이는 의도적인 신경전은 볼썽사납기도 하다. 결국 '용호상박'의 양보 없는 아우라가 시쳇말로 '자강두천'의 발목잡기로 비쳐지기 십상이다. '내로남불'은 차치하고라도 질타와 책임전가, 진실 공방으로 이어질 게 뻔하다. 

우선 팬데믹이라는 하나의 경제 악재를 놓고도 진단하고 해법을 찾는 방법이 극과 극이다. 코로나19 사태의 장기화로 심화된 경제 불평등과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최저임금을 대폭 올려 소득 증대와 소비 진작을 유도해야 한다는 게 근로자 측의 주장이다. 

사측의 반론은 완전 딴 판이다. 최저임금을 올리면 일자리가 대폭 줄어들어 가뜩이나 코로나19에 직격탄을 맞은 영세 상공인들이 거듭 타격을 받는다고 우려하고 있다. 실제 상당수 중소기업에서 정상적인 임금 지급이 어려운 상태임을 호소하고 있다. 

양측 모두 설득력은 있다손 쳐도 어느 쪽이 진실이고 허상인지는 두고 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악어는 먹잇감을 잡아먹을 때 눈물을 흘린다. 이는 악어가 입안에 충분히 수분을 머금고 있다가 먹이를 쉽게 삼키기 위해 수분을 밖으로 배출하는 과정일 뿐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잡아먹히는 동물이 불쌍해서 그런 것으로 잘못 인식한다.

이를 우리는 '악어의 눈물(crocodile tears)'이라 부른다. 선거나 경쟁에서 이긴 사람이 패배한 사람 앞에서 흘리는 거짓 눈물, 강자가 약자 앞에서 보이는 가식과 위선적인 행동이 모두 이 범주에 속한다.

이처럼 불편한 진실은 사회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내가 하고 싶은 건 남도 하고 싶을 것이고 내가 하기 싫은 것 또한 남도 하기 싫은 게 당연지사다. 이런 이치를 몰라서 못 하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알면서도 안 하는 게 문제다. 

진정한 미덕은 내가 못 먹는 걸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먹고 싶은 걸 참고 함께 나누는 것이다. 

자신의 위치가 타인보다 우월하다는 이유로 무조건 자신을 따르도록 강요하는 태도도 바람직하지 못하다. 그래서 정보의 홍수 시대에는 옳고 그름을 구분하는 판단력이 더 중요하다. '악어의 눈물'이 슬퍼서 흘리는 게 아니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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