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갈대

박장희
 
살아있으므로 
바람 앞에서 흔들립니다
 
바람이 부르는 손짓
갈까 말까
몸은 관능官能을 동경합니다
애써 외면하며
이지理智의 물줄기로 길어 올린
샘물을 덮어씁니다
몸살꽃이 피고 지는 육신
바람이 지나갈 때마다
눕고 일어나고 눕고 일어나고
마침내 허리에 벤 삶의 탄력
바람 드셀수록
바다 깊이 더욱 억센 발목
 
바람 앞에서 흔들립니다
살아있으므로
 
△박장희 시인: 경북 군위에서 태어났으며 대학과 대학원에서 국어 국문학을 전공했다. '문예사조' 등단(1999년) '시와시학 신춘문예' 당선(2017년). 울산문학상, 사르트르문학대상, 울산 시문학상 등 수상. 전 울산중구문학회 회장. 시집 '목포에는 신화가 있네' '황금주전자' '그림자 당신', 산문집 '디시페이트와 서푼 앓이'가 있다.
 

서금자 시인
서금자 시인

갈대는 여리면서도 강한 여인을 닮았다. 날마다 허공에 연서를 쓰며 더 나은 내일을 꿈꾸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는 관능을 동경하며 몸살꽃을 앓지만 그는 언제나 제자리로 돌아온다. 이런 일상들을 견뎌내기 위해 '바람이 드셀수록 바다 깊이 뿌리를 내린다'고 박장희 시인은 인생 여정을 갈대로 환치하고 있다.
 
 우리는 살아가는 게 아니라 살아내는 것이다. 바람이 지나갈 때마다 눕고 일어나고 눕고 일어나며 삶의 탄력을 키워가는 것이다. 바람이 드셀수록 바다 깊이 억센 발목을 심어 살아남는 법을 터득하며 주어진 일상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내는 것이다. 
 
 '바람 앞에서 흔들립니다 살아있으므로' 
 박장희 시인은 시의 마지막 행에 절창 한 소절을 내어 보이며 인생 여정의 메시지를 독자들에게 강하게 던져주고 있다. 
 
 그렇다. 바람 앞에 흔들린다는 건 살아있음이다. 갈까 말까, 할까 말까 갈등하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 살아가는 이유이기도, 우리에게 주어진 즐거움이기도 하지 않은가. 
 
 시인은 한참 살아본 후에 얻어낼 수 있는 삶의 지혜를 일찍이 알고 있는 듯, 대나무의 곧음 보다 갈대의 여림이 더 강함을 이미 알고 이지理智의 물줄기로 길어 올린 샘물을 덮어쓴다고 쓰고 있다. 이렇게 자신을 다잡으며 시의 분위기를 풍요롭게 살려내며 곡선의 강함을 익히 알고 꺾일 듯 꺾이지 않고 여기까지 오는 삶의 여유도 보이고 있다.
 
 이 시의 메시지처럼 우리는 쓰러지고 다시 일어서며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씨줄과 날줄을 짜 맞추며 순간에 충실하려 애쓰지 않았던가. 이제 남은 세월은 직선으로 달려온 시간이 풍요로움 되어 곡선의 갈바람 리듬이 되기를, 하여 따뜻한 이야기들이 행간 마다에 부드럽게 뜸 들기를 빌어본다.  서금자 시인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