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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섬 거문도
 
최경선
 
곱발 디디면 바다가 보이는 고만고만한 돌담 집이거나
 
얼기설기 묶인 지붕 너머 바다의 정수리가 훤히 보이거나
 
몇 발짝 골목을 나서면 시푸른 바다로 통하는 곳이다
 
혀 둥글게 말고 턱 빠지게 하품하며 느릿느릿 걷는 고양이 폼이 적나라하게 고요를 느끼게 하는 곳
 
저 혼자 불 밝히는 등대가 있고
 
전설처럼 *신지께가 어부를 지켜주는 곳
손끝 유달리 까매도 부끄러울 것 없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온몸으로 바람을 막고 온몸으로 바람을 받아들이는 곳
하늘과 바다가 허락해야 닿을 수 있는 바로 그 섬
 
어야디야 어기야 디야
어쩌다 들려오는 사무친 뱃노래
 
어~야 디야 어~기 여차 어야디야 어기 여차
이어 되뇌다 먹먹해지는 그 섬을
 
나는 떠나왔다

*거문도 사람들이 인어를 신지께라 부름

△ 최경선: 여수시 거문도 출생 2004년 '문예사조' 등단, 시집 '어찌 이리 푸르른가' '그 섬을 떠나왔다'

김감우 시인
김감우 시인

'그 섬을 떠나왔다'라는 문장에서 '섬'을 강으로 바꾸니 내 삶이 된다. '어기여차 이어'를 되뇌다 먹먹해지는 '그 섬'은 나에게 '그 강'이 되어 와서 울컥 안긴다. 나는 섬진강가에서 나고 자랐다. 그만큼 나에게 강은 시인에게 '그 섬'처럼 말만으로도 아득해지고 서러워지는 곳이기 때문이다. 나는 거문도를 가본 적은 없다. 이 시 속에 잡힐 것 같은 풍경으로 그려지고 있는 말들을 엮어 상상해볼 뿐이다. 그런데도 '온몸으로 바람을 막고 온몸으로 바람을 받아들이는 곳'인 거문도가 전혀 낯설지 않다. '하늘과 바다가 허락해야 닿을 수 있는' 섬 거문도에 몇 차례 다녀온 듯 친근하다. 시를 다 읽고 나니, 특히 '나는 떠나왔다'라는 마지막 문장에 털썩 주저앉아서 보니 그 섬이나 그 강이나 똑같이 그립고 아린 통점일 뿐이었다. 

 '그리운 것들은 다 산 뒤에 있다'라고 김용택 시인은 말했다. '그 섬을 나는 떠나왔다'는 말 뒤에도 그리운 것들이 얼마나 모여 살까. '섬' 자리에 들어갈 무수히 많은 '말'을 생각한다. 누구는 어떤 도시를, 누구는 어떤 언덕을, 또 누군가는 어떤 사람을 떠나왔을 것이다. 

 '떠나왔다'라는 말은 '떠나갔다'는 말과는 서로 반대방향을 바라보고 있다. 현재의 지점에서 떠나기 전의 과거를 추억하는 말이다. 유년을 회상하는 시간 여행이고 '신지께가 어부를 지켜주는' 동화 같은 유토피아를 돋움발로 바라다보는 공간여행이다. 그러니 먹먹해질 밖에, 그러니 어쩌다 들려오는 사무치는 뱃노래가 이리 그리움 절절한 시를 낳을 수밖에.  김감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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