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덕왕의 셋째 아들로 태어난 헌영(憲英)은 형인 효성왕이 아들 없이 숨지자 왕좌에 올랐으니 신라 제33대 경덕왕(景德王)이다.
불국사, 석굴암 등을 지으며 신라 불교 문화의 꽃을 피운 경덕왕은 삼모부인(三毛夫人)과 결혼해 아들을 얻지 못하자 왕비를 출궁시키고 만월부인(滿月夫人) 김씨를 새로운 왕비로 맞아 들인다. 하루는 왕이 신하들에게 위의(威儀)가 있는 승려(영복승榮服僧)를 찾아 모셔오라 하니 때마침 경주 남산 삼화령(三花嶺)에서 미륵부처에께 차 공양을 마치고 돌아오던 스님 충담사(忠談師)와 마주하게 된다. 충담스님은 화랑 '기파'를 위해 찬기파랑가(讚耆婆郞歌)를 지어 나라 안팎으로 크게 신망을 얻고 있었다.
장창호 작가는 경덕왕이 차를 올리는 충담스님에게 나라와 백성들을 위해 시를 지어 달라 청하는 대목을 연기하며 향가 '안민가(安民歌)'를 풀어 읊는다.
임금은 믿음직한 아비요
신하는 자애로운 어미라
백성은 칭얼대는 아이지만 사랑 주는 이를 알아 보네
어렵게 힘들게 사는 이
그 사람을 먹여 살린다면
이땅 버리고 어디로 갈까
나라를 가꾸는 길 알고 싶다면
아-
임금은 임금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백성은 백성답게
내내 어울려 행복하네
...
경덕왕은 시에 매우 흡족해 하며 이후 나라도 편안했다. 그런 그에게 근심이 하나 있었으니 오래도록 왕위를 이을 아들이 없었던 것이다.
어느날 왕이 도법((道法)에 능한 표훈대덕(表訓大德)에게 말하기를, 아들이 없으니 하늘의 상제(上帝)에게 부탁해 아들을 낳게 해달라고 했다. 표훈대덕이 하늘로 올라갔다와서 아뢰기를 딸은 얻을 수 있지만 아들은 안 된다고 대답했다. 왕이 다시 표훈대덕에게 딸을 아들로 바꿔달라고 부탁하자, 표훈대덕이 하늘을 갔다와서 상제가 될 수는 있지만 아들을 얻으면 나라가 위태롭게 된다고 전했다.
경덕왕은 비록 나라가 위태로워져도 아들을 얻어 왕위를 계승하게 하겠다고 말했으며, 이후 만월부인이 임신해 아들을 낳았다. 경덕왕은 태자가 8살 때 사망했고, 어린 태자가 왕위에 올랐으니 곧 혜공왕이라 한다. 혜공왕은 자라면서 여자 아이 놀이만 즐기고 비단 주머니 차기를 좋아했다고 전하고 있다 . 정리 김동균기자 justgo999@ulsanpres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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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상 보기 : 장창호TV [54] 경덕왕의 아들 욕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