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생포 시편
장생포 시편
  • 서금자
  • 2021.07.27 18:18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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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선에 머물다]

장생포 시편

류현서
 
천길만길 물결 따라 떠밀려와 생긴 마을 
물굽이 출렁이면 삶도 함께 일렁이고
노을에 자맥질하는 해를 건져 말렸다
 
귀신고래 열을 지어 점호 소리 우렁차던
포경선 억센 노래 사진 속에 잠들어도
몇몇은 주막에 앉아 작살 멀리 던진다
 
수평선 남겨 두고 하늘 문을 닫으면 
천 동이의 먹물 바다 환히 웃는 달 한 접시
땀 배인 시 한 구절을 흘림체로 읽는다
 
△류현서 시인: 경북 경주 출생. 부산일보,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수필당선, 2013년 월간문학 시조 등단. 청림남구문학상(2016년), 포항스틸에세이 대상(2017년), 원종린 수필문학 작품상(2019년), 울산시조작품상(2019년),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대상(2020년). 수필집 '지워지지 않은 무늬' '물미장', 시조집 '흘림체로 읽는 바다' '태화강을 거닐며' 등이 있음.

서금자 시인
서금자 시인

장생포는 행정상으로 울산군에 속하여 왔으며 현남면(峴南面)의 관할하에 있었다. 1914년 행정구역개편 때 경상남도 울산군 대현면에 속하였으나 1962년 울산이 시로 승격됨에 따라 장생포도 장생포동으로 바뀌었고, 1997년 울산광역시가 출범함에 따라 오늘에 이르고 있다.
 
 류현서 시조 시인은 '장생포 시편' 시조를 3연으로 구성하여 읊고 있다. 
 1연은 장생포 바다를 바라다보는 시적자아의 아쉬운 마음이 묻어난다. 물굽이 출렁이면 삶도 함께 일렁인다고, 그랬다. 내가 본 젊은 날의 장생포는 고래가 몰려오면 장생포 사람들도 물결로 출렁이고 노을에 자맥질하는 해를 건져 올렸다. 고래가 그들의 금빛 해였으리라. 그 당시 고래막에서 고래 삶는 냄새가 진동하면 장생포는 날마다 부자가 되어갔다. 개도 만원짜리 지폐를 물고 다녔다는 우스갯소리가 공공연했으니 말이다. 

 2연에서는 귀신고래 열을 지어 점호소리 우렁차던 포경선의 억센 노래가 사진 속에 잠들고 있다고, 주막에 앉아 막걸리 잔을 기울이며 넋두리로 작살을 던지는 장정들의 술 취한 거나한 표정을 그려보면 세월을 읽는 시인의 마음이 묻어난다. 
 
 3연은 천 동이의 먹물 바다 환히 웃는 달 한 접시 땀 배인 시 한 구절을 흘림체로 읽는다에서는 집착을 벗어난 자유로운 시인의 영혼을 본다. 노련한 시각과 깊은 사유가 깃들어 있어 서정이 다정하고 따뜻하다.
 
 이렇게 류현서의 '장생포 시편'은 필자의 옛날을 떠올리게 되어 장생포에서 근무하던 젊은 날이 주마등으로 지나간다. 하루에 고래 여섯 마리가 잡혔다고 장생포 빅뉴스가 뜨던 날 고래막에 미처 들어가지 못한 고래는 배에 묶인 채 바다에 둥둥 떠 썩어가는 고래를 구경했고, 고래 고기 열두 맛을 흔하게 즐겼었다. 그렇게 옛날 장생포는 부귀영화도 한참 누려 보았는데, 고래가 멀리 떠난 지금은 아쉬운 추억으로만 남았다. 하지만 장생포에 보름달은 여전히 뜰 것이리라. 그 달 뜨면 천 동이의 먹물을 푼 바다에 환히 웃는 달 한 접시, 땀 배인 시 한 구절을 흘림체로 읽고 오리라.  
 서금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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