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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숙 수필가
정영숙 수필가

삶과 죽음은 인간의 의지대로 되는 게 아니라고 한다. 파리 목숨보다 못한 게 사람 목숨이라는 말이 있는가 하면 고래 힘줄보다 더 모질고도 질긴 것이 인간의 생명이라고도 한다. 삶과 죽음이 어떤 것이라고 한마디로 규정지을 수 없다는 뜻이리라.

코로나19 백신 예방접종 날짜가 점점 다가오자 불안이 엄습했다. 백신을 맞은 후 돌연사한 사람, 뇌사 상태가 된 사람, 하반신이 마비된 사람 등의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려왔기 때문이다. 특히 나와 같은 연령대가 맞아야 하는 백신은 혈소판 감소성 혈전증 논란이 있어 불안함이 더 컸다. 백신 접종과 부작용 사례의 인과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게 대부분이라고 했지만 그런 부연 설명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부작용의 확률이 낮다고 하지만 불행한 사례가 내 일이 되지 않을 거라는 보장은 없지 않은가.

사전 예약을 하고도 마치 선택 불가 증후군이라도 걸린 것처럼 백신을 맞을 것인지 취소할 것인지 결정하지 못했다. 나쁜 상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마음을 어지럽혔다. 급하게 만들어진 백신이어서 부작용에 대한 검증이 충분하지 못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살아가면서 겪는 일 중에는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일도 있지만, 백신을 맞는 것은 좀 더 자유롭고 안정된 생활을 누리기 위한 포석이다. 그런데 예방 차원의 행위가 엄청난 사고를 수반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은 무시할 수 없는 두려움이었다.

만일을 대비하기 위해 유서를 써 놓기로 했다. 백신을 맞으면서 유서까지 쓴다고 하면 웃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 자신도 내 마음을 어쩔 수 없었다. 주변의 누군가 하루아침에 목숨을 잃어도 내게는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싶은 게 사람이다. 내일 지구가 망해도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던가. 하지만 불행한 일이 나에게만 일어날 것 같은 생각이 지워지지 않았다. 약속된 내일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불행에는 문지기가 없다는 말이 뇌리를 스쳤다.

예금과 적금, 그리고 보험 목록을 알기 쉽게 정리했다. 각종 인터넷 사이트나 e-메일의 비밀번호도 적었다. 기록해야 할 것들이 그다지 많지 않았지만, 혹시 놓치는 것은 없는지 꼼꼼하게 살폈다. 내가 떠난 자리를 지킬 가족과 지인들에게 남길 인사의 말도 준비했다. 할 말이 참 많을 것 같았는데 감사하다는 말이 필요할 뿐이었다. 나와 연이 닿았던 사람들도 그저 고맙기만 했다.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말이 원망과 미움이 아니라 고마움과 감사라는 사실이 다행스러웠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모습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남은 사람들의 몫으로 남겨두기로 했다.

그런대로 하고 싶었던 말을 정리했지만, 딸에게는 인사말 하는 게 쉽지 않았다. 생각만 해도 마음이 아프고 눈시울이 붉어졌다. 장성한 자식을 뭐 그리 걱정하느냐고 할 수 있지만, 어미로써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딸에게 남길 말을 쓰고 지우기 며칠, 마흔이 다 된 딸을 걱정하는 내 모습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물론 아쉽고 안타깝기는 말로 표현할 수 없지만 걱정한다고 달라질 것은 없지 않은가. 모성을 앞세워 딸을 지켜주어야 할 대상으로만 바라보고 있었던 것 같았다. 나의 걱정이 지나쳤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딸을 걱정하는 내 마음이 과도하다는 데 생각이 미치자 자신의 삶을 책임질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을 갖춘 딸이 보였다. 어차피 자신에게 주어진 희로애락은 본인의 몫이며 인생은 스스로 책임지는 것이다. 행여 백신 부작용이 심해 나에게 어떤 문제가 생겨도 딸에게는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을 만한 지혜와 용기가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딸아이를 염려하며 살아온 내 방식을 바꿀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걱정을 내려놓으니 나에 관한 생각도 정리되는 것 같았다. 현실의 장벽에 갇혀 가져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을 분간하지 못했던 아둔함도 보이고 욕심을 내려놓아야 한다면서도 그렇게 하지 못했던 어리석음도 읽혔다. 어떤 일을 잘하려는 것도, 완벽해지려는 것도 다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물질적인 것은 물론이고 자존심이라고 믿었던 것들마저 그리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나니 그제야 불안함이 덜어지고 마음이 조금 편해지는 것 같았다.

유서를 출력해 봉투에 넣어 밀봉한 뒤 서랍에 넣었다. 그리고 인터넷 개인 카페 상단의 공지사항에도 띄워 놓고, 비밀번호도 적어 확인할 수 있도록 조치해 놓았으니 내가 할 일은 마무리한 셈이었다. 백신 부작용을 최대한 줄이려면 단백질 섭취량을 늘리고 몸을 편하게 이완하라는 조언을 따랐다. 마음을 편하게 가진 덕분인지 백신 접종은 약간의 나른함과 두통이 있었지만 별다른 큰 부작용은 없었다.

불안한 마음에 유서까지 쓰면서 백신을 맞은 지 한참이나 지났다. 2차 접종이 눈앞이지만 1차 때처럼 불안함이 크지 않다. 백신 부작용에 대한 불안함이 수그러들고 나니 남은 생을 후회 없이 살아야겠다는 또 다른 욕심이 서서히 자리를 잡아간다. 쓸데없는 욕심이 고개를 들면 유서를 쓰던 때의 심경을 돌이켜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손에 잡고 싶은 것이 많지 않으면 마음의 평화를 얻는 일은 그만큼 쉽지 않을까 싶다. 엄습하는 불안감을 이기기 위해 유서를 쓰던 시간은 나 자신을 성찰해 볼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다. 그저 무탈하게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다는 게 감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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