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오클립] 효공왕의 선택, 나랏일보다 사랑
[오디오클립] 효공왕의 선택, 나랏일보다 사랑
  • 장창호 극작가
  • 2021.08.18 09:18
  • 0
  • 온라인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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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울림통] 장창호가 들려주는 삼국유사 (61)

 

신라 헌강왕의 서자인 김요(金嶢)가 고모 진성여왕이 스스로 물러난 자리를 이어 제52대 효공왕(孝恭王)이 된다. 

 헌강왕이 사냥터에서 미모가 뛰어난 여인을 만나 혼외 자식 요(嶢)를 얻게 되었다. 여동생 김만이 작은 오빠 정강왕 왕위를 이어 진성여왕이 되자 큰 오빠 헌강왕의 혼외 자식을 알게 되었다. 그의 몸에서 친족 특징을 확인하고 곧 요를 태자로 삼았다. 경문왕 자식인 헌강왕. 정강왕. 진성여왕 등 삼남매가 차례로 왕좌를 이어 갔지만 모두 아들이 없었다. 서자가 왕이 된것은 골품제를 중심으로 왕위에 오른 신라에서는 선례가 없었던 일이었다. 

 민가에서 태어나 자라던 김요는 어느날 갑자기 궁궐 주인이 돼 12살에 왕좌에 앉아 효공왕이 되지만 권력 핵심에서 겉돌기만 했다. 장인 이찬 박예겸(朴乂謙)이 국정을 장악했다.

 북쪽으로 궁예가 한산주(경기도와 황해도.충청도 일부 지역)를 점령하고 송악(松岳, 개성)을 도읍으로 정하며 태봉(泰封, 후고구려)을 세우더니 상주까지 차지 한다. 서남쪽은 스스로 왕이라 칭했던 후백제 견훤이 완산주(完山州, 전주)로 도읍을 옮기고 대야성을 공략하며 끊임없이 신라 땅을 넘본다. 신라는 한반도의 드넓은 지배권을 뺏기고 겨우 경상도만 통제할수 있었다. 그것도 지방관은 모두 철수하고 지방 호족들에게 자치권을 넘겼다. 

 한반도는 신라의 존재가 서서히 사라지고 후고구려 궁예와 후백제 견훤의 패권 다툼이 시작되었다. 궁예의 부하 왕건(王建)이 병선(兵船)을 끌고 금성(錦城, 전남 나주)을 공격해 서해 해상권을 모두 장악하며 견훤을 견제하자 개성의 지방호족으로 머물렀던 그의 존재감도 커지고 있었다. 

 왕의 장인과 처가 박씨들이 국정 주도권을 잡더니 효공왕은 애첩에 빠져 정사 마저 내팽겨친다. 이를 보다 못한 신하가 애첩을 죽이는 사태가 벌어졌으나 왕에게는 그를 벌할 힘 마저 없었다. 시호에 공(恭)이라는 글자가 포함되어 있어서 폐위 당했거나 적어도 이에 준하는 형태로 임기를 마쳤을 가능성이 높다.
 
 효공왕이 아들 없이 숨지자 신라 김씨 왕조는 끝이 나고 왕의 장인 박예겸 아들 경휘(景暉)가 신덕왕(神德王)이 되어 왕위를 이으며 제8대 아달라 이사금 이후 700여년만에 박씨 왕조가 왕권을 되찾았다. 정리 김동균기자 justgo999@ulsanpres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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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상 보기 : 장창호TV [63] 효공왕의 선택, 나랏일보다 사랑

경주시 배반동 효공왕릉의 전경. 왕릉 주변에 단촐한 릉만 있을 뿐이다. 2021. 1. 17 김대웅
경주시 배반동 효공왕릉의 전경. 왕릉 주변에 단촐한 릉만 있을 뿐이다. 2021. 1. 17 김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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