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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길 시인·평론가
안성길 시인·평론가

예전 홍콩과 대만에서 만든 중국무협영화가 스크린을 휩쓴 적 있다. 주제가 단순 소박해서 그만큼 흑백과 선악이 분명하고 강렬한 재미에 인기도 높았다. 악인에게 파멸한 가문이나 집단에서 어렵게 살아남은 어리고 선한 주인공은 고생 끝에 혈육의 원수 곧 한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불구대천지원수를 끝내 찾아내어 처단하는 내용이 거개의 얼개였다.

그런데 삼국지에는 합종연횡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해관계에 따라 각종 세력이 이합집산하는 것을 뜻한다. 오늘의 급변하는 국내외 정세 속에서는 철석같은 동지도 영원한 적도 없다. 자유진영의 주적세력은 격변기였던 지난 1991년 12월 26일 낮 12시에 와해되었다. 즉 소련의 붉은 기가 내걸린 지 만 69년 만에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졌다. 그 자리엔 러시아의 삼색기가 올랐으나 자유진영의 기대와 달리 대립 양상이 좀 달라졌을 뿐 갈등은 여전했다. 또 빈부 격차의 심화와 개별 국가들의 영토 야욕과 패권으로 국가 간 대립은 여전히 무한 반복중이다. 

우리의 경우 북한뿐만 아니라 우방인 대만과도 단절하고 생존 때문에 공산국가인 중국과의 수교를 선택해야만 했고, 이스라엘 역시 팔레스타인 등과의 갈등은 생존 앞에서 피할 도리가 없었다. 사실 북한은 한 핏줄이고, 6·25 때 함께 피 흘리며 싸워준 대만은 혈맹이고, 중국은 무력으로 이 땅을 침공한 적국이다. 그러나 국제정세는 이해관계에 따라 급변한다. 이를 잘 설명한 책이 미국의 라인홀드 니부에의 '도덕적인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다. 집단의 생존 앞에서는 도덕뿐만 아니라 많은 가치들이 무기력할 수밖에 없다.

최근에 필자는 우연찮게도 '토지'의 작가 박경리 선생의 '일본산고'와 한국계 미국 작가 이민진의 '파친코', 동북아 국제정치의 전공학자인 이명찬 박사의 '한일역전' 등을 접했는데, 모두 진실한 화해를 모르는 이웃이면서 가깝고도 먼 일본인과 일본이 관계되고 있었다.

먼저 박경리 선생의 역작 '토지'의 주 배경이 불구대천의 일제강점기다. 이를 집필하는데 혼신을 다한 선생이 쓴 '일본산고'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들이 나온다. "나는 젊은 사람에게 더러 충고한다. 일본인에게는 예를 차리지 마라. 아첨하는 약자로 오해받기 쉽고 그러면 밟아버리려 든다" "일본을 이웃으로 둔 것은 우리 민족의 불운이다. 일본이 이웃에 폐를 끼치는 한 우리는 민족주의자일 수밖에 없다. 피해를 주지 않을 때 비로소 우리는 민족을 떠나 인간으로서 손잡을 것이다" 최근 도쿄 올림픽 선수식당을 별도 운영한 한국은 극력 비난했지만 힘 센 미국의 식당운영에는 일언반구도 못하는 철면피한 이중성의 일본을 생각하면 선생의 일갈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미국 작가 이민진의 '파친코'는 회사에서 일본의 주재원으로 부임한 남편 따라 간 지역의 재일교포(Zainichi Korean)의 고단한 삶을 생생하게 담아낸 장편이다. 주인공 김선자와 그녀의 어머니, 아들, 손자 등 4대에 걸친, 일인들의 차별과 멸시, 혹독한 혐한 속에서 한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눈물겨운 얘기다.

일전에 재일동포 3세 고교생이 주인공인 가네시로 가즈키의 자전적 성장소설 'GO'를 영화로 만든 'GO'를 본 적 있다. 그때 주인공 스기하라가 사랑하는 여학생 사쿠라이에게 자신이 '일본인이 아니라 한국인'임을 밝히자, 그녀는 충격적이게도 자기 아버지가 '한국이나 중국 사람들의 피가 더럽다'고 얘기했다는 장면에서 정말 화들짝 놀랐다. 그 장면은 대다수 일본인들이 한국인들에게 벌이는 차별과 편견 즉 혐한이 아무런 근거 없이 무지하게 습관적으로 행해짐을 엿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컷은 너무도 무자각적으로 저들의 일상에서 차별이 자연스럽게 대물림됨을 증거하고 있기도 했다. 

그리고 한일관계의 전문가 이명찬 박사의 '한일역전'은 한일 청구권협정이 발효된 지난 1965년의 양국의 국력 차가 약 100배였는데, 2020년 현재 한국은 거의 모든 면에서 일본을 추격했거나 역전시켰다고 하고 있다. 2021년 4월 OECD의 자료를 보면, 2019년 실질구매력지수(PPP) 1인당국내총생산(GDP)는 우리가 4만 2,728달러, 일본이 4만 2,239달러다. 즉 이제 한국인들이 일본인보다 실질 소득과 구매력, 생활수준 등이 더 높게 나온다고 한다.

위 책에서 또 하나 핵심으로 내세운 것은 '영속패전론(永續敗戰論)'이다. 이는 일본 진보 학자 시라이 사토시 교수의 용어다. 그는 1945년 '패전' 이후 일본 사회는 '패전'을 '패전'이 아닌 '종전'이라 인식한다. 이러면 패전했지만 그 책임을 아무도 안 지게 된다. 그 결과 한국과 동남아국가로부터는 지배적 지위가 유지돼 국가적, 민족적 우월의식에 씌어 재일한국인, 한국과 동남아를 하대하고 차별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일인들의 극도의 집단적 혐한과 차별의 병적인 근본 뿌리다. 이들과의 진실한 관계는 우리가 두 배 세 배 더 강해질 때뿐이다.

사사건건 우리 뒤통수를 노리는 야비한 일본, 엄청난 인구, 막강한 경제력에도 정의와 원칙이 없는 중국, 핵과 벼랑끝 전술의 북한 등 한반도의 주변은 온통 지뢰밭이다. 정의를 믿고 실천해 온 자유 대한민국의 한국인으로서의 삶은 오로지 피땀으로 쌓은 실력과 강력한 경제적 문화적 힘을 바탕으로 냉혹하고 변화무쌍한 약육강식 국제정세 속에서 독자적이고 더욱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것뿐이다. 따라서 우리들 시민 한 사람이 당장 교통법규를 더 잘 지키고 개인 방역에 더욱 세심한 것 등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자. 그게 오늘 우리가 사는 현명한 태도일 것이며, 생존을 보장하는 평범하지만 가장 효과적인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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