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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 사직을 왕건에게 넘기다...경순왕의 선택2. U울림통(65)

 견훤에 의해 왕위에 오른 신라의 마지막 임금 제56대 경순왕(敬順王)은 숨진 경애왕의 장례식을 치루나 수호 동맹국인 고려 왕건은 신하만 보내 조문을 했다. 

 봄이 되자 왕건이 뒤늦게 조문을 와서 무려 열흘간을 머물며 선물도 전하며 긴 이야기를 나눈다. 그가 돌아간 후 935년 봄 경순왕은 국운을 내건 큰 결심은 내린다. 왕은 신라 사직 1000년을 접고 고려 왕건에게 항복하며 나라를 넘기려 한다.  장자 마의태자(麻衣太子)가 반기를 들며 개골산(皆骨山, 금강산)에 들어가 평생 마(麻)로 된 옷만 입고 살았다. 

 신하들과 고려 수도 개성에 도착한 경순왕은 왕건에게 귀순을 요청했다. 결국 고려에 합방된 신라국은 폐지되고 서라벌을 경주(慶州)라 칭한다. 그리고 경순왕은 딸 낙랑공주과 결혼해 부마가 되고 식읍(食邑)으로 하사된 경주를 다스렸다. 이로서 천년 신라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고려가 한반도의 새로운 주역이 된다. 정리 김동균기자 justgo999@ulsanpres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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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상 보기 : 장창호TV [67] 경순왕의 선택 #2

쓰러져 가는 나라를 세우고자 신라 경순왕이 울산 남구 삼호동(무거동) 인근에서 행색이 남루한 스님을 불러 제사를 지냈다. 제사를 마친 스님이 문수보살의 모습으로 나타나 '더 애쓰지 말라'는 말만 남기고 사라지자 왕이 신하들과 말을 타고 쫓았으나 찾을수 없었다. 이때 태화강을 건너 사라진 문수보살을 애타게 세 번이나 불렀다고 한다. 이후 신라 패망을 암시한 전설이 남겨진 이 마을을 문수보살을 세번 불렀다고 해서 삼호(三呼)라 했다. 일설에는 마을에 호수가 세게 있어 삼호(三湖)라 불렀다고 한다. 사진은 문수산과 영축산 자락 아래 태화강 왼쪽에 위치한 삼호동의 전경과 구 삼호교 아래에 위치한 신라 경순왕과 삼호동의 유래가 적힌 비석(사진 원안). 2020.12.23 김동균기자 justgo999@ulsanpress.net
쓰러져 가는 나라를 세우고자 신라 마지막 임금 경순왕이 문수산 자락 작은 절에서 행색이 남루한 스님을 불러 남구 삼호동 일대에서 제사를 지냈다. 제사를 마친 스님이 문수보살의 모습으로 나타나 '더 애쓰지 말라'는 말만 남기고 사라지자 왕이 신하들과 말을 타고 쫓았으나 찾을수 없었다. 이때 태화강을 건너 사라진 문수보살을 애타게 세 번이나 불렀다고 한다. 이후 신라 패망을 암시한 전설이 남겨진 이 마을을 문수보살을 세번 불렀다고 해서 삼호(三呼)라 했다. 일설에는 마을에 호수가 세 곳이 있어 삼호(三湖)라 불렀다고 한다. 사진은 문수산과 영축산 자락 아래 태화강 왼쪽에 위치한 삼호동의 전경과 구 삼호교 아래에 위치한 신라 경순왕과 삼호동의 마을 유래가 적힌 비석(사진 원안). 2020.12.23 김동균기자 justgo999@ulsanpress.net
북한 고성 금강산에 위치한 마의태자(麻衣太子)릉의 기단석의 모습. 뒤편 일본군이 고용한 조선인 인부들이다. 1916 국립중앙박물관 출처
강원도 고성군 금강산에 위치한 마의태자(麻衣太子)릉의 기단석의 모습. 뒤편 일본군이 고용한 조선인 인부들이다. 1916 국립중앙박물관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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