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꾼 출신 장수의 아들로 태어난 견훤(甄萱)은 쇠락하던 통일신라 말기 변방의 신라 장수를 하다 패망한 600년 역사의 백제 부흥을 꿈꾸며 후백제를 세웠다.
지방호족의 딸인 견훤 모친은 꿈에 한 사내가 나타나 곁에서 잠을 자고 갔다. 여러 날 같은 꿈이 반복되자 사내의 자주색 옷에 실을 꿴 바늘을 꽂아 두었다. 다음 날 날이 밝자 바늘에 꿰어둔 실을 따라 가보니 멀지 않은 곳에 지렁이가 바늘에 꽃혀 죽어 있었다. 지렁이 정기를 받고 태어난 견훤의 야래자(夜來子)설화이다.
오디오클립에서 후백제 견훤의 스토리를 연기하는 장창호 작가는 견훤이 토착 세력인 지방 호족 후손임을 이 설화가 암시하고 있다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견훤은 신라 상주(尙州) 가은현(阿慈介, 경상북도 문경시 가은읍) 출신 이아자개(李阿慈介) 아들로 태어나 훗날 성씨를 이씨에서 견씨로 바꿨다. 하루는 모친이 밭 일 하는 남편에게 밥을 나르고 돌아오니 호랑이가 아이에게 젖을 먹이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견훤은 자라면서 체격과 용모가 웅대해지고 특이했으며 기개가 호방하고 범상치 않았다.
통일신라 진성여왕 때 서남해 변방을 지키던 견훤이 해적 토벌에 공을 세워 비장(飛將)이라는 장수가 되었다. 결국 신라 변방의 장수로 있을때 쌓은 세력과 얻은 민심을 다져 신라를 등지고 무진주(武珍州, 전남 광주)를 점령해 스스로 왕위에 올랐다. 신라 효공왕에 이르러 완산주(完山州, 전북 전주)에서 도읍을 정하고 백제왕이라 칭하며 '의자왕 원한을 설욕하고 신라에 복수하겠다' 외치며 40여년간 나라를 다스렸다.
견훤 보다 먼저 북쪽에서 군사를 일으킨 후고구려 궁예(弓裔)가 지방 호족으로 자리를 굳히고 있었다. 폭정으로 궁예는 물러나고 개성 지방호족 왕건(王建)이 등극한다. 그리고 견훤은 10살 아래인 왕건을 아우라 칭하며 자신의 조카와 왕건의 사촌 동생을 볼모로 맞교환해 화친을 맺으나 신라 경명왕 때 견훤 조카가 원인을 모른채 죽자 화친은 깨진다. 신라 경명왕과 고려 왕건이 수호 동맹을 맺자 견훤은 천혜의 요새 대야성을 무너 뜨리고 신라의 심장부 서라벌 까지 전광석화 처럼 쳐들어가 경애왕을 죽음으로 내몰고 왕의 이종사촌 김부(金傅, 경순왕)를 새로운 왕으로 세웠다.
927년 천년 신라 왕실을 제압하고 기세등등한 견훤은 돌아가던 길에 공산(公山, 대구 팔공산)에서 왕건 군사와 맞닥 뜨렸다. 한 겨울 개성에서 매서운 바람을 뚫고 달려온 왕건의 5천 기병들은 견훤을 쫓다 오히려 매복해 있던 견훤 군사 역습에 속수무책으로 당한다. 궁예를 함께 몰아낸 왕건의 오른팔 신숭겸(申崇謙) 장군이 왕건을 옷을 입고 싸우다 숨지고 팔공산 동수전투(棟藪戰鬪)의 영웅이 되지만 전쟁에서 고려는 패한다.
공산성에서 겨우 목숨을 건진 백전노장 왕건은 생애에 가장 치욕스런 오점을 남겼다. 견훤은 왕건에게 나주 해상전에서 패한 설욕을 씻고 대 고려전의 승리를 이어가며 한동안 한반도 최강자로 주도권을 잡았다. 정리 김동균기자 justgo999@ulsanpres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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