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환해 전 언론인·자유기고가
박환해 전 언론인·자유기고가

내년 3월 치러질 대선을 앞두고 여·야가 '언론 중재법(일명 재갈법)'을 놓고 일촉즉발로 대치하는 등 여의도가 들썩이고 있다. 악의적으로 가짜뉴스(Fake news)를 보도한 언론사에 최대 5배의 손해배상 책임을 부과하는 언론 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지난달 19일 국회 상임위 문턱을 넘었다.

이 법의 개정 취지는 언론사의 악의적인 가짜뉴스 보도로 인한 피해를 방지하겠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야당의 반발 수위가 고조되자 지난달 17일 일부 내용을 변경한 수정안을 공개했으나 야당은 언론사의 고의·중과실을 판단하기 위한 기준이 모호하고, 고위 공직자 및 대기업 임원 등도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해 자칫 언론에 재갈을 물리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사회 전반에 확산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일반적으로 가짜뉴스는 '3불' 체인(chain) 숙주를 먹고 산다. 상황의 '불확실성'이 정서적 '불안'을 야기하고, 그 결과로 사회적 '불신'이 강화되는 체인 숙주가 그것이다. '확증 편향'이라는 기저질환이 있다면 가짜뉴스는 우리에게 더 치명적이다. 사람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게 된다. 이로 인한 여론의 양극화는 우리 사회의 치명적 중증 질환으로 발전한다.

집권당인 민주당은 가짜뉴스를 없애면 된다고 단순하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는 대단히 비현실적이다. 무균 청정사회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현대의학은 바이러스를 일일이 잡으러 뛰어다니는 방식으로 대응하지 않는다. 대신 백신과 치료제로 바이러스의 공격으로부터 지켜 간다.

지난 4월 여당에서 발의하고 지난달 19일 문체위를 통과한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는 우리사회의 가짜뉴스를 '발본색원'하기 위해 직접 뛰어다니겠다는 얘기다. 현실성이 없고 또한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무한대의 소셜미디어와 스트리밍 콘텐츠에 의해 유통되는 가짜뉴스 바이러스를 무슨 수로 모두 퇴치하겠다는 얘기인가. 선별적 응징이라는 정치적 의혹을 벗어날 뾰족한 묘수는 있는가? 더욱이 가짜뉴스의 징벌대상에 언론을 포함하는 것은 인체의 세포가 숨 쉴 공간을 갖지 못해 생기는 치명적 역기능을 간과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위험하다.

자유는 산소다. 사회 유기체 내부에서 산소의 흐름은 건강한 생존을 위한 필수 요건이다. 자유의 산소가 폐에서 심장을 통해 뇌와 전신에 제대로 공급되지 않으면 그 유기체는 바로 생명을 다한다. 공기 속에 불순물이 있다고 산소의 공급을 차단해서는 안 된다. 시민사회 전체가 건강한 호흡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면서, 백신과 치료제와 같은 스마트한 방법으로 대처해야 한다.

인류 역사의 건강한 진보에는 늘 자유 정신이 있었다. 16세기 유럽의 종교개혁은 모든 신앙인이 신 앞에 독립적으로 서는 자유를 통해 중세교회의 폭정을 극복했다. 미국 독립혁명과 프랑스혁명에서 외친 자유 정신은 서구 민주주의의 서막이었다.

100여 년 전 3·1운동은 암울한 식민시대를 벗어나기 위한 자유 운동이었다. 1987년 민주화운동은 전제 통치를 민주 통치로 진보케 한 시민 자유 운동이었다. 사회의 진보를 얘기할 때 반드시 자유 정신의 진보를 함께 얘기해야 하는 이유가 역사 속에는 얼마든지 있다.

가짜뉴스가 건강한 시민사회를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라는 점에서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것이 정치적으로 기획된 가짜뉴스라면 더 큰 문제다. 가짜뉴스라는 빈대 잡느라 표현의 자유라는 초가삼간을 모두 태울 수 있는 법제에는 어느 누구도 동의할 수 없을 것이다. 

지난해 4·15총선과 지난 4월 4·7 보궐선거에서 보듯, 국민들은 가짜뉴스의 홍수 속에 현명한 한 표를 던졌다. 가짜뉴스 바이러스 창궐은 비단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 세계가 '인포데믹'이라고 불리는 가짜뉴스 팬데믹으로 큰 고통을 겪고 있다.

독일·영국·프랑스 등 정부는 올 들어 구체적이고 엄격한 규제 방안을 이미 내놓았거나 준비 중이다. 그러나 이들 모두 규제의 대상을 글로벌 소셜미디어와 스트리밍 플랫폼에 한정하고 있다. 언론을 또 다른 방식으로 제어하는 것은 부작용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언론 스스로도 자성적 실천방안을 적극적으로 찾고 수행해야 한다. 팩트가 곧 백신이고 치료제다. 따라서 언론이 산소 같은 자유에 수반되는 책무성을 상실한다면 결국 대다수 국민들로부터 외면은 물론 퇴출을 피하기 힘들 것이다.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