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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딱하게 
 
안현심
 
지구가 23.5도 기울어
바람이 불고 사계절이 있듯
삐딱하게 바라보아야 네 발꿈치 보인다
바로 보았을 때 둥그렇던 얼굴이
올려다보면 갸름한 코스모스
고요한 뜨락에 엎드린 바람자락 보이고
참나무 껍질 속 사슴벌레가 보인다
 
삐딱하게 보기
기울어져 보는 것은
어제 같은 오늘이 아니라
전혀 다른 내일을 생성하는 것
 
황무지에
배롱나무 한 그루
키우는 것
 
△안현심 시인: 1957년 전북 진안 출생. 계간 '불교문예' 등단. '유심' 문학평론. 시집 '연꽃무덤' '상강아침', 산문집 '오월의 편지', 평론집 '물푸레나무 주술을 듣다', 연구서 '미당 시의 인물원형 계보' '한국 현대시의 형식과 기법' 등. 진안문학상, 풀꽃문학 젊은시인상 수상.  
 

박정옥 시인
박정옥 시인

어떤 무리에서든 삐딱한 사람이 있다. 괜한 트집을 잡아 순조롭던 일도 삐걱거리게 한다. 아주 부정적인 사람으로 비친다. 삐딱한 사람은 매사에 불평불만으로 가득한 사람이라 생각하기 쉽다. 강력한 메이저에 간 크게 태클을 거는 사람, 이단아, 또라이, 말하자면 똑바로 가지 못하고 언제나 건들거리는 골치 아픈 사람들이라는 말이다. 매사에 현미경을 들이대는 골치 아픈 사람이 시인이다. 
 
 모두가 함께 더불어 똑바로 가다보면 아주아주 관리가 쉽고 편하다. 그러나 세상은 '똑바로'에 수많은 함정이 가려져 있다. 앞만 보고 가는 똑바로는 얼마든지 위험한 상황을 만들 수 있기에 체크가 필요한 것이다. 
 
 삐딱한 사람은 '똑바로'가 놓치는 것을 체크하는 감지기다. 세상의 발명품이나 제도나 인식의 전환이 모두 삐딱함에서 나온다. 불편한 부분을 개선하게 되는 1차 체크라인이 되는 셈이다. 그리고 삐딱함에서 나온 편리와 합리를 누리며 살아간다. 
 
 지구가 바로 서지 못하고 기울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사계절을 살고 더구나 지구에 빌붙어 있으니 삐딱하게 사는 게 이치에 맞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안 되는 줄 알면서 황무지에 나무를 심고 사막에 물을 대고 달에 가려고 별에 가려고 로켓을 쏘아댄다. 모두 삐딱선의 근성에서 나온 결과물이다. 이런 삐딱함이야말로 오늘과 다른 내일을 만들어가는 핵심 주체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결과적으로 세상 돌아가는 일은 삐딱함에서 비롯된 이익이 '참이다'는 명제가 만들어진다는 사실. 
 
 상투성을 벗어나 기울기가 다른 각도로 주변을 돌아보면 얼마나 매력적인 사람들이 많이 있는지 그 놀라움을 다시 톺아봐야겠다.  박정옥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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