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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승부 전 울산대 생명화학공학부 교수
신승부 전 울산대 생명화학공학부 교수

'아 목동들의 피리 소리는/산골짜기마다 울려 퍼지고…/여름은 가고 꽃은 떨어지니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아일랜드의 노스탤지어가 회한처럼 묻어 있는 노래입니다. 

'녹색의 섬' 아일랜드에서는 100년 전에 오늘, '레지오 마리애'라고 하는 모임이 처음으로 시작되던 날이었습니다. 

세계 제1차 대전으로 인해 가장 많은 전사자가 있었다는 참담한 시절이었습니다. 전쟁 말기에는 징집 연령을 12세까지 낮췄다고 하니 그 비참함을 짐작 할 수 있습니다. 

그때 '대니 보이'는 다니엘이라는 이름의 열일곱 살짜리 아들을 전장으로 보내야만 했던 제임스 피츠 패트릭이라는 한 아버지가 작사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전쟁으로 인해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질병과 굶주림으로 지쳐 가고, 아이들은 영양실조로 병들고, 노인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들이 흔하게 일어나던 시절이었습니다. 

거기에 더해 영국의 수상 크롬웰의 철권통치 아래에서 신교와 구교의 종교적 갈등까지 겹치던 시절이었습니다. 이 때에 가톨릭 신자이면서 공무원이었던 프랭크 더프에 의해 시작된 것이 레지오 마리애입니다.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서 살아가자" 

그것이 모임의 동기였고, 이것이 가톨릭 평신도 사도직의 꽃 레지오 마리애의 시작이라고 합니다.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그분들은  어느 날 저녁 약속된 자리에 모여서 함께 의논하고 합의하는 가운데 스스로도 가난에 시달리면서도 병들고 더 가난한 이웃을 찾아서 열심히 헌신하기 위해 모인 분들이었습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그는 다만/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그들은 김춘수 시인의 꽃처럼 열세 명으로 이뤄진 '자비의 모후'라는 이름으로 출발하는 꽃의 이름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도입 된 것 역시도 6·25 전란으로 나라 전체가 몹시 힘들었던 1953년 5월이었습니다. 

"가장 작은 형제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마이클 토어 신부의 첫 번째 훈화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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