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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헌기 새로운소통연구소장  

예전에는 올림픽이 끝나면 획득한 메달 개수를 집계해 국가 종합 순위를 매기곤 했다. 물론 이번에도 하긴 했다. 

나는 2020 도쿄올림픽에서 우리나라가 종합 몇 위를 기록했는지 모른다.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여러 반응을 보건대 아마 나만 그런 건 아닌 모양이다.
 
순위 말고 기억에 남은 건 따로 있다. 태권도에서 은메달을 딴 이다빈 선수가 상대 선수에게 '엄지 척' 하며 쿨하게 퇴장하는 장면이나 유도 결승전에서 패배한 조구함 선수가 상대 선수의 팔을 들어 올려주던 장면이다. 많은 사람이 이런 장면을 보고 '진정한 올림픽 정신'이라며 칭찬했다. 반면 메달을 따지 못한 종목에 대해 '수모'라는 글자를 붙여 내보낸 기사들은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다.
 
이는 하나의 상징이다.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역도 장미란 선수는 4위로 마무리하며 “실망을 드렸을까 봐 염려된다"며 눈물을 보였다. 2021년에 열린 도쿄올림픽은 경기에 임하는 선수들과 경기를 지켜보는 사람들 모두 성적지향주의에 매몰되기 보다 스포츠 본연의 흥미와 드라마를 즐기는 모습을 보였다. 엘리트 체육의 오랜 지상과제였던 '국위선양'의 시대가 지나갔다는 징표라 할 수 있다.
 
MZ세대(밀레니얼+Z세대)가 과거와 다른 태도를 보이는 것은 그들이 유독 특별한 유전자를 갖고 태어나서 그런 게 아니다. '세대'는 일종의 사회 변화를 보여주는 창이고 그렇기에 MZ세대의 태도에서 우리 사회가 어떻게 변했는지 가늠해볼 수 있다.
 
사실 우리나라는 오랜 기간 선진국 콤플렉스에 빠져 있었다. 어떻게 해서든 뒤처지지 말아야 한다는 강박이 올림픽에도 그대로 투영되곤 했다. 이번 도쿄올림픽에 대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태도나 경기에 임한 MZ세대 선수들의 모습은 이제 우리나라가 그러한 강박을 떨쳐냈음을 보여줬다. MZ세대가 특별한 유전자를 가진 게 아니라 우리 사회가 '열등감 극복 정국'에 들어선 것이다.
 
그간 우리나라는 국제사회에서 인정받을 만한 성취를 이룬 사람을 소위 'Do you know 클럽'에 포함시키곤 했다. 그 역시 올림픽에서 획득한 메달 수로 국가 종합 순위를 매기는 것과 비슷한 성질의 열등감이 발현된 것이었다. 
 
우리나라가 약소국이지만 세계적인 성취도 있다는 것을 타인에게 강변하는 행위였으니 말이다. 이제는 누구도 외국인에게 'Do you Know BTS?' 혹은 나아가 'Do you know Korea?'라고 묻지 않는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어차피 세계가 다 안다고 전제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열등감을 극복하고 있는 흐름을 처음 체감한 건 2019년 여름 일본 아베 신조 정부가 일으킨 수출 규제부터였다. 1990년대 이후에 태어난 이들이 일본을 향해 비웃는 태도로 불매운동을 전개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열등감 극복 국면에 들어섰음을 직감했다. 이어서 2020년 2월에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 주요 4개 부문을 석권한 성취를 충분히 즐기기도 전에 전 세계적인 코로나19 대유행 국면에서 K-방역이 국제사회의 상찬을 받는 광경을 목도하며 직감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나는 동료들과 함께 쓴 '추월의 시대'라는 책에서 이러한 변화에 대해 설명했다.
 
기성세대는 도쿄올림픽에서 보여준 MZ세대의 자신감을 보고 놀라워하는 한편 여전히 우리나라가 선진국 추월의 시대에 진입했다는 사실은 잘 받아들이질 못한다. 그래서 MZ세대의 모습을 보고 우리 사회의 변화가 반영된 것이라고 이해하기 보다 그저 세대 특성 정도로만 여기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MZ세대의 태도 역시 특별한 유전자 때문이 아니라 '추월의 시대'의 징후 중 하나일 뿐이다. 기성세대 역시 우리의 위치를 조금 더 객관적으로 바라봐야 미래 세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간 우리나라가 이만큼 성장하고 발전한 동력은 선진국 따라잡기에 골몰한 것이었다. 선진국의 모습을 이상화하고 그에 못 미치는 우리의 모습에 각성을 촉구하는 방식으로 성장했다. 
 
이제는 달라질 것이다. 아니, 이미 달라지고 있다. 선진국 추격을 끝내고 추월의 시대에 진입한 우리나라는 MZ세대가 그러했듯이 이제 열등감으로 구성돼 있던 자의식을 자긍심으로 바꿔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올림픽에서 성과를 국위선양으로 여기던 모델이 지금의 MZ세대에게 전혀 적용되지 않듯이 콤플렉스에 기반해 있던 과거의 발전모델도 앞으로 우리 사회에는 전혀 통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기성세대는 지금의 MZ세대가 보여준 자신감을 보고 놀라워만 할 게 아니라 자신감의 근원을 파악해야 한다. 그러지 못한다면 'Do you know Korea?'라는 질문은 MZ세대가 외국인이 아니라 기성세대에게 던지게 될지도 모르겠다. 이제 MZ세대는 자신감을 갖고 새로운 희망과 미래를 그려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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