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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아 수필가
정경아 수필가

문경은 일년에 한 번 방문한다. 이곳은 돌아가신 시아버지가 태어나 자란 곳이지만 살기가 팍팍해 식구들과 야반도주하듯 떠난 애증의 고토라 들었다. 결혼이란 내가 살아온 방식이 바탕나무라면 남편을 빚어낸 가족문화가 접붙어져 새로운 길로 뻗어나가는 삶이 아닐까. 나와 연고가 없던 문경이 백중(百中)을 지나 풀들도 더 이상 웃자라지 않는 주말이면 벌초 여행을 가는 중요한 정기 순례지가 됐으니 말이다.

오래전, 남편과 시어머니는 예초기와 낫을 들고 직접 벌초를 했었다. 돌봐야 하는 묘가 여러 개이다 보니 후유증이 컸다. 익숙지 않는 장비로 고된 작업을 하다가 몸살이 나서 고생하자 문경의 이웃들에게 대신 벌초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 후로 문경에 들를 때는 예초기 대신 인근 휴게소마다 비치된 관광지 안내 소책자를 챙겼다.

벌초는 하지 않더라도 조상들의 묘에는 꼭 들르는데 찾아가는 길이 녹녹치 않았다. 남편과 시어머니는 등산화로 갈아 신고 등산용 배낭에 떡과 과일, 술, 접시를 담았다. 어떤 이가 묘지의 인근 땅을 사서 입구로 통하는 길을 자물쇠로 걸어 잠갔다. 가까운 길을 두고 등산용 스틱에 의지해 풀이 우거진 비탈길을 에둘러 올라야 했다. 함께 오르지 않은 나와 아이들은 마을 어귀 커다란 느티나무 아래서 두 사람을 기다렸다. 산에서 내려온 그들은 산행을 다녀온 사람들처럼 등산화에 진흙이 잔뜩 묻었고 온몸은 땀으로 흠뻑 젖었다. 시어머니 손에는 잔가시가 박혔다. 남편은 굶주린 모기에게 엉덩이를 잔뜩 뜯겼다고 성화였다.

벌초 문화도 점차 대면에서 비대면으로 바뀌어 간다. 나의 친정아버지는 아직 고향에 있는 선산으로 가서 삼촌과 벌초를 한다. 시골은 그에게 유년의 너른 품으로 남았다. 머리가 희끗한 이장인 불알친구는 본인이 그 동네에서 가장 젊은 청년이라고 웃기고 슬픈 이야기를 했다. 다음 세대인 남동생과 사촌은 시골에 아는 사람이 없을 테다. 그들은 벌초 대행 서비스에 의뢰할 거란다. 벌초 대행 전용 앱에 들어가 인터넷 지도상에 산소의 위치를 지정하면 벌초를 대신 해 주고 작업 완료 사진을 찍어 보내 주는데 코로나 이후 신청자가 폭발적으로 늘었다고 한다.

할 일을 마친 식구들과 마음 편히 문경을 돌아봤다. 산자락에는 물기를 머금은 하얀 운무대가 걸렸다. 5가지 풍미를 느낄 수 있다는 빛깔 고운 붉은 오미자가 상점마다 전시돼 있었다. 오미자 과자, 김, 술, 음료수 등 구미가 당기는 색이라 눈길도 발길도 머물렀다. 아이들은 잔디밭 사이사이에 숨은 여치를 찾아 함께 뜀박질을 했다. 개울가에 발을 담그고 널찍한 돌에 앉아 쉬어가는 사람들에게 휴일의 시간은 잔잔하게 흘렀다.

문경새재 도립공원을 걷다가 옛길 박물관에 들렸다. 박물관 입구에는 옛사람들의 여행 가방인 괴나리봇짐이 게시돼 있었다. 봇짐 안에는 오늘날 구글 맵과 같은 나침반과 팔도지도가 필수 소장품으로 들어있었다. 새재에 대한 여러 개의 이야기 중 하나는 이미 있던 것이 아니라 처음 마련하거나 다시 생겨났다는 의미인 '새로 생긴 고개'라는 것이다. 신라 초부터 고려 말까지 1,200년이라는 오랜 시간 동안 문경새재에서 5㎞ 떨어진 하늘재를 이용했다. 조선 시대에 이르러 하늘재는 그 길을 지났던 수많은 발자국들과 저마다의 사연을 묻어 둔 채 새 길인 문경새재에게 또 다른 이야기의 서막을 열 기회를 양보했다. 옛 고개 하늘재, 새 고개 문경새재.

단산 모노레일을 탔다. 백두대간을 따라 지나가는 총 노선 길이 1,800m(왕복 3,600m)인 산악형 모노레일이다. 산세를 따라 나무를 베어 내어 길을 내었다. 레일 가에는 베어낸 나뭇가지 더미들이 보였다. 최고 42도 경사라 꽤 가팔랐다. 신갈나무, 갈참나무, 벼락 맞은 소나무, 거뭇거뭇 그을린 곳은 불이 난 곳이라는 설명도 친절하게 붙었다. 꼭대기에서 내려 전망대로 향했다.

문경이 시야 아래 펼쳐졌다. 더 이상 오를 길은 없었다. 길이 끝나자 하늘길로 뛰어드는 사람들이 있었다. 바람을 타고 새 길로 날아오르는 패러글라이딩을 바라보니 마음이 부풀었다. 하늘길에도 수많은 발자국이 꾹꾹 새겨지고 있었다.

길은 계속 이어진다. 벌초라는 전통 길도 다른 모습으로 새 길을 낼 것이다. 옛길인 하늘재가 흔적으로 남아 있듯이 전통은 간소하고 간편하게 바뀔 테지만 조상을 기리는 마음은 이어질 것이다. 옛길도 언젠가의 새 길이었다. 새 길에는 옛길의 연유가 묻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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