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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구 시가지 전경. 울산신문 자료사진
남구 시가지 전경. 울산신문 자료사진

"수변 공원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새 아파트에서 살고 싶었어요."
 울산 남구 지역에 모 지역주택조합원으로 가입한 김모(44)씨의 말이다. 번화가인 삼산동 한복판에서 버젓이 조합원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고, 아무런 의심 없이 지역주택조합에 뛰어들게 됐다. 인근 신축 아파트보다 3.3㎡당 200만원 가량 싼 가격에 위치도 최적지였다. 김씨의 가족들은 남들처럼 신축 아파트에 살 수 있다는 희망과 꿈에 부풀었지만 현실은 처참했다. 
 업무대행사가 유령 조합원들을 내세워 마치 사업이 잘 되고 있는 것 마냥 속인 것이다. 당초 사업계획과 달리 세대 수도 반토막났지만, 수 억원의 사업비는 온데간데 없었다.
 내 집 마련의 꿈을 안고 시작한 지역주택조합이 설립인가를 받고, 아파트 공사가 착공되기까지 소요되는 시간은 꽤 길다.
 울산 남구의 경우, 관내에서 진행하고 있는 지역주택조합은 총 10곳이다. 이 가운데 공사 착공에 들어간 곳은 단 3곳.

선암남영지구 6년 지나도 답보상태

 현재 남구 내에서 가장 높은 공정률을 보인 곳은 대현지역주택조합이다. 공정률이 75%로, 시공사는 코오롱 글로벌(주)다. 착공일은 2019년 4월이다. 
 총 848세대 아파트를 짓는 사업으로, 조합원은 553명이다. 현재 남구에서 추진되고 있는 지역주택조합사업 가운데서도 가장 큰 규모다. 
 그러나 이 주택조합이 설립인가를 받은 날은 2015년 9월로, 착공하기까지 무려 4여년이라는 시간이 걸린셈이다.
 지난해 공사에 들어간 번영로더샵지역주택조합과 문수로대공원지구지역주택조합도 마찬가지다. 
 현재 공정률이 20~25%가량 보이고 있지만, 아파트 공사가 시작되기까지 3~4년이 소요됐다. 
 나머지 지역주택조합도 조합 설립 인가를 받기 위한 과정에 있거나 사업계획 승인 추진 중이다. 
 조합 설립인가를 받고 난 후, 사업계획승인 절차를 거치고 나면 허가가 나는데, 그러기 위해선 사업장 부지의 95% 소유권 확보를 해야 하지만 이마저도 여러 지주들과 협의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다.
 특히 선암남영지역주택조합의 경우 총 66세대로 작은 규모임에도 대규모 사업장인 대현지역주택조합과 같은 해에 설립인가를 받았지만, 6년이 된 지금까지도 공사에 들어가지 못하고 사업계획승인 절차에 머물러 있다.
 업계 관계자는 지역주택조합 특성상, 수 백명의 조합원들과 함께 돈을 모아 아파트를 짓는 사업이기 때문에 여러 변수가 존재해 이런 결과를 초래한다고 밝혔다. 
 사업을 진행하고, 안건을 정하는 과정에서 조합원들과 총회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개개인을 한 자리에 모으기에도 힘들 뿐더러, 내부 관계자가 사업비를 횡령해 고소·고발전을 이어가는 등 조합 내부마다 저마다 암초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시간이 지체될수록 사업비가 증가해 추가 분담금을 내야하는 데 이 같은 위험 요소를 모르고 지역주택조합에 뛰어든 사람이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레이크파크자이는 시작전 공중분해

 남구에서는 조합원 모집 신고조차 하지 못한 채 조합이 공중분해된 곳도 있다.
 바로 레이크파크자이 지역주택조합이다. 
 이 지역주택조합은 지난 2016년 야음동 397-1 일대에 6만㎡ 규모로 1,246세대를 건립하기로 했다. 
 울산에서 이례적으로 1,000세대가 넘는 대규모 지역주택사업에 너도나도 조합원으로 가입했다.
 그러나 현재 이 조합원들 가운데 270명은 업무대행사를 상대로 2여년간 민사·형사 소송을 진행 중에 있다.
 업무대행사가 신탁에 입금돼 있는 업무 추진비와 분담금 총 146억원을 마음대로 사용하기 위해 수십여 명의 명의를 도용한 의혹이 있기 때문이다. 현재 남아있는 잔여액은 6,500만원뿐이다. 
 분담금을 인출하기 위해서는 전체 세대 수 50%의 조합원들의 동의가 있어야 하는데, 이 과정을 거치지 않기 위해 이 같은 일을 벌인 것이라고 조합원들은 주장하고 있다. 또 업무대행사는 조합원들과 협의를 거치지 않고 임의로 710세대로 사업을 축소·변경했다. 

146억원 중 남은 금액 6500만원 뿐

 이 조합은 이런 문제들 속에서 위원장이 4번이나 바뀐 상태다. 전임 위원장들은 대행사의 직원이거나, 사주를 받고 위원장직을 맡은 사람들이었다. 
 현재 윤병국 레이파크자이 지역주택조합추진위원장은 조합원들이 납부한 조합비 146억원을 업무대행사·자금관리 신탁사 등이 비리를 저질러 사용했다는 정황을 포착해 조합원들이 낸 돈을 돌려받기 위해 동서분주하다. 
 조합원들 개개인의 피해금액이 최대 5,000만원 이상으로, 개중에는 이 사업이 어그러지면서 가정이 파탄난 곳도 있다.
 윤 위원장은 "소송을 준비하면서 만난 사람들이 나에게 인터넷에 '지역주택조합'이라는 6글자만 쳐봤어도 쉽게 지역주택에 가입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하더라"면서 "나 또한 남들과 마찬가지로 내 집 마련의 꿈을 안고 지역주택조합에 가입했지만, 결과가 좋지 않았다. 남편 몰래 조합원으로 가입한 아내들은 수 천만원을 떼였으니, 남편 눈치 보면서 오늘 하루만 조용히 넘어갈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착잡한 심경을 전했다. 

넣은 돈 생각에 발빼기 힘들어

 그러면서 "위원장직으로 선임되고 난 후 2019년 초에 첫 안건으로 올린 것이 조합유지 여부였다"면서 "2명을 제외한 조합원들이 사업을 접고, 조합원들의 돈을 떼먹은 사람들을 상대로 민사·형사 소송을 하자고 했다. 레이크파크자이 지역주택조합은 사업을 더 이상 진행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 우후죽순 생겼던 지역주택조합의 피해가 막심하자 관련 법들이 강화되면서 법이 개정되고 있지만 여전히 피해는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한 번 조합원으로 가입하면 냈던 돈이 아까워 발을 빼는 것도 힘드니, 잘 알아보고 가입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정혜원기자 usjh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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