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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해의 공격을 물리친 수로왕…가락국기2 U울림통(71)

금관가야 수로왕이 왕위에 오른 어느 날 바다 너머 용성국(龍成國, 일명 완화국 琓夏國) 왕비가 낳은 알(卵)에서 태어난 탈해(脫解)가 가락국에 이르러 궁궐로 오더니 왕에게 대뜸 왕의 자리를 내어달라 하자 어이 없어하는 가야 수로왕이 거절한다. 그럼에도 탈해가 술법(術法) 대결을 청하자 두 사람은 날짐승으로 변신술을 펼치며 자웅을 가린다. 

 장창호 작가는 온라인 콘텐츠 오디오클립을 통해서 역사서에 널리 알려진 수로왕과 탈해의 변신술 대결은 군사적 대립을 암시한 것으로 추정하며 패기만만 하다 못해 오만한 탈해와 노련한 수로왕의 신화 속 스토리를 연기한다. 

 수로왕의 노련함에 패한 탈해는 패배를 인정하고 가야를 떠나 바닷길로 신라의 땅에 이른다. 서라벌에서 남해 차차웅의 후광을 받아 철기시대를 열며 대망을 이룬다. 석탈해의 철기문화는 울산 북구 달천광산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석탈해 이사금은 가야에 대한 미련이 남았는지 신라 왕이 되어서도 가야를 공격했다 한다.  정리 김동균기자 justgo999@ulsanpress.net 
 
 ▶ 울산신문 오디오클립 'U울림통' 바로가기 
 ▶ 영상 보기 : 장창호TV [74] 가락국기 2 - 수로와 탈해의 술법 

지난 1994년 부터 1년간 부산 복천동 38호분 발굴조사에서 출토된 부산 복천동 38호분 출토 철제갑옷 (보물 제2020호)의 모습. 철기문화를 대표하는 문화재로서 4세기 가야 갑옷의 제작 방식을 가늠케하는 유물이다. 문화재청 출처
지난 1994년 부터 1년간 부산 복천동 38호분 발굴조사에서 출토된 철제갑옷 (보물 제2020호)의 모습. 철기문화를 대표하는 문화재로서 4세기 가야 갑옷의 제작 방식을 가늠케하는 유물이다. 문화재청 출처
금관가야 지도자층의 고분군이 형성된 김해시 대성동 고분군의 전경. 국립김해박물관과 김해 수로왕릉 사이에 동서로 뻗은 높이 약 20m 길이 약 300m 정도 구릉지대에 1∼5 세기에 형성된 고분들이다. 문화재청 출처
금관가야 지도자층의 고분군이 형성된 김해시 대성동 고분군의 전경. 국립김해박물관과 김해 수로왕릉 사이에 동서로 뻗은 높이 약 20m 길이 약 300m 정도 구릉지대에 1∼5 세기에 형성된 고분들이다. 문화재청 출처
지난 199년 처음 발굴 조사가 시작된 김해시 대성동 고분군 조사 중 57호분에서 여성전사로 추정되는 순장자 인골 3구가 발견돼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KBS 역사저널 그날 캡처이미지
 지난 1990년 발굴 조사가 시작된 김해시 대성동 고분군 중 57호분에서 여전사로 추정되는 순장자 인골 3구가 발견돼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유튜브'KBS 역사스페셜' 캡처이미지
삼국유사 권2 제2기이 '가락국기'조에 기록된 가야 수로왕과 탈해의 술법 대결을 다룬 내용 . 규장각 본 /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출처  이때 갑자기 완하국(琓夏國) 함달왕(含達王)의 부인(夫人)이 임신을 하여 달이 차서 알을 낳았고, 그 알이 화하여 사람이 되어 이름을 탈해(脫解)라고 하였다. 이 탈해가 바다를 따라 가락국에 왔다. 키가 3척이고 머리 둘레가 1척이었다. 기꺼이 대궐로 나가서 왕에게 말하기를, “나는 왕의 자리를 빼앗고자 왔다”라고 하니 왕이 대답하였다 “하늘이 나에게 명해서 왕위에 오르게 한 것은 장차 나라를 안정시키고 백성들을 편안하게 하려 함이니, 감히 하늘의 명을 어기고 왕위를 남에게 줄 수도 없고, 또한 우리나라와 백성을 너에게 맡길 수도 없다.”탈해가 말하기를 “그러면 술법(術法)으로 겨루어 보겠는가”라고 하니 왕이 좋다고 하였다. 잠깐 사이에 탈해가 변해서 매가 되니 왕은 변해서 독수리가 되었고, 또 탈해가 변해서 참새가 되니 왕은 변해서 새매가 되었다. 이때에 조금도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탈해가 원래 모습으로 돌아오자 왕도 역시 전 모양이 되었다.탈해가 이에 엎드려 항복하고 말하기를 “내가 술법을 겨루는 곳에서 매가 독수리에게, 참새가 새매에게 잡히기를 면하였는데, 이는 대개 성인(聖人 )이 죽이기를 미워하는 어진 마음을 가져서 그러한 것입니다. 내가 왕과 더불어 왕위를 다툼은 진실로 어렵습니다.” 곧 왕에게 절을 하고 하직하고 나가서 이웃 교외의 나루에 이르러 중국에서 온 배가 와서 정박하는 수로(水路)로 해서 갔다. 왕은 마음속으로 머물러 있으면서 난을 꾀할까 염려하여 급히 수군(水軍) 500척을 보내서 쫓게 하니 탈해가 계림(鷄林)의 국경으로 달아나므로 수군은 모두 돌아왔다. 여기에 실린 기사(記事)는 신라의 것과는 많이 다르다.忽有琓夏國含逹王之夫人妊娠, 旀月生卵, 卵化爲人名曰脫解. 從海而來. 身長三尺頭圎一尺. 恱焉詣闕語於王云, “我欲奪王之位故來耳.” 王荅曰 “天命我俾即于位將令安中國而綏下民, 不敢違天之命以與之位, 又不敢以吾國吾民付囑於汝.” 解云 “若爾可爭其術. ”王曰 “可也.”俄頃之間解化為鷹, 王化為鷲又解化為雀王化為鸇.于此際也寸隂未移.解还夲身王亦復然.解乃伏膺曰, “僕也適於角 術之場鷹之鷲, 雀之於鸇獲免焉, 此盖聖人惡殺之仁而然乎. 之與王爭位良難.” 便拜辝而出, 到麟郊外渡頭將中朝來泊之水道而 行. 王竊恐滯留謀亂, 急發舟師五百艘而追之, 解奔入雞林地界, 舟 師盡還. 事記所載多異與新羅.
삼국유사 권2 제2기이 '가락국기'조에 기록된 가야 수로왕과 탈해의 술법 대결을 다룬 내용 . 규장각 본 /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출처

 이때 갑자기 완하국(琓夏國) 함달왕(含達王)의 부인(夫人)이 임신을 하여 달이 차서 알을 낳았고, 그 알이 화하여 사람이 되어 이름을 탈해(脫解)라고 하였다.
 이 탈해가 바다를 따라 가락국에 왔다.
 키가 3척이고 머리 둘레가 1척이었다.
 기꺼이 대궐로 나가서 왕에게 말하기를, “나는 왕의 자리를 빼앗고자 왔다”라고 하니
 왕이 대답하였다 “하늘이 나에게 명해서 왕위에 오르게 한 것은 장차 나라를 안정시키고 백성들을 편안하게 하려 함이니, 감히 하늘의 명을 어기고 왕위를 남에게 줄 수도 없고, 또한 우리나라와 백성을 너에게 맡길 수도 없다.”
 탈해가 말하기를 “그러면 술법(術法)으로 겨루어 보겠는가”라고 하니 왕이 좋다고 하였다.
 잠깐 사이에 탈해가 변해서 매가 되니 왕은 변해서 독수리가 되었고, 또 탈해가 변해서 참새가 되니 왕은 변해서 새매가 되었다.
 이때에 조금도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탈해가 원래 모습으로 돌아오자 왕도 역시 전 모양이 되었다.
 탈해가 이에 엎드려 항복하고 말하기를 “내가 술법을 겨루는 곳에서 매가 독수리에게, 참새가 새매에게 잡히기를 면하였는데,  이는 대개 성인(聖人 )이 죽이기를 미워하는 어진 마음을 가져서 그러한 것입니다.
 내가 왕과 더불어 왕위를 다툼은 진실로 어렵습니다.”
 곧 왕에게 절을 하고 하직하고 나가서 이웃 교외의 나루에 이르러 중국에서 온 배가 와서 정박하는 수로(水路)로 해서 갔다.
 왕은 마음속으로 머물러 있으면서 난을 꾀할까 염려하여 급히 수군(水軍) 500척을 보내서 쫓게 하니 탈해가 계림(鷄林)의 국경으로 달아나므로 수군은 모두 돌아왔다.
 여기에 실린 기사(記事)는 신라의 것과는 많이 다르다.

忽有琓夏國含逹王之夫人妊娠, 旀月生卵, 卵化爲人名曰脫解.
從海而來.
身長三尺頭圎一尺.
恱焉詣闕語於王云, “我欲奪王之位故來耳.”
王荅曰 “天命我俾即于位將令安中國而綏下民, 不敢違天之命以與之位, 又不敢以吾國吾民付囑於汝.”
解云 “若爾可爭其術. ”王曰 “可也.
”俄頃之間解化為鷹, 王化為鷲又解化為雀王化為鸇.
于此際也寸隂未移.解还夲身王亦復然.解乃伏膺曰, “僕也適於角 術之場鷹之鷲, 雀之於鸇獲免焉, 此盖聖人惡殺之仁而然乎.
之與王爭位良難.”
便拜辝而出, 到麟郊外渡頭將中朝來泊之水道而 行.
王竊恐滯留謀亂, 急發舟師五百艘而追之, 解奔入雞林地界, 舟 師盡還.
事記所載多異與新羅.  / 한국사테이터베스트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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