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생각도 없을 것이다
이규리
어미 새가 먹이를 물어 새끼들 부리에 넣어줄 때
한 마리씩 차례대로
새끼는 새끼대로
노란 주둥이를 찢어질 듯 벌리고 기다릴 때
그 외 아무 생각도 없을 것이다
노랑이나 목숨은
입구가 단단하여
절명이 그렇게 온다면
입을 벌리고 한 생각만 집중한 채
그렇다면 한 생을
정확하게 전달했는가
나는
▲ 이규리: 1994년 '현대시학' 등단. 시집 '앤디 워홀의 생각' '뒷모습' '최선은 그런 것이에요'. 산문집 '시의 인기척' '돌려주시지 않아도 됩니다'
이 시에 나의 감상을 보태는 일이 사족 같다. 생은 무엇인가에 대한 무수한 질문으로부터 선명한 획 하나를 긋고 있다. 여운이 묵직하게 울려 퍼지고, 그 종소리 속에 내 마음을 앉혀 오래 두고 싶어진다.
번잡하고 어수선한 하루가 갔다. 다시 온다. 말의 홍수 속에서 일의 홍수 속에서 정작으로 내 자신을 돌아다보고 삶을 성찰하는 시간을 갖지 못한 채 하루 위에 또 하루가 포개지면서. 나의 외로움과 나의 허기를 직면하는 시간이 생략된 채. 결국은 부질없는 일에 매달려.
'그 외 아무 생각도 없을 것이다'라는 한 문장이 얼마나 많은 절벽을 건너서 내게로 온 것일까를 생각한다. 이 말의 대단한 생명력은 다른 말과 사유를 다 지우고서야 살아나는 것.
얼음망치처럼 나의 속도를 해체시키고 번잡함도 다 제거해버리는 힘이라니. 이 곳 저 곳 기웃거리며 허공에 흩뿌린 나의 말들이 먼저 사라진다. 경계 없이 달려 나가던 마음도 생채기낸 시간도 멍하니 풀어지면서 생이 말끔해지는 느낌.
그리고 마지막 연이 압권이다. '나는'이다. '당신은'이 아니고 나는!
'절명이 그렇게 온다면 한 생을 정확하게 전달했는가'라는 질문의 끝을 자신에게로 향함으로써 시가 더욱 깊게 완성되는 것을 본다. '나는' 대신에 '당신은'이라고 했으면 어땠을까. 그 높은 톤에 고요가 깨지지 않았을까.
시월이다. 질문을 더 많이 만들어내는 계절, 침묵 너머의 세상에서 들려오는 미세한 소리를 향해 귀를 열어둔다. 무언가 새로운 낌새에 촉을 집중한다. 나에게로 다가오는 고요의 맨살을 만져볼 수 있기를. 점점 길어지는 새벽에 깨어 어둠 같은 '나'를 만날 수 있기를.
김감우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