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오클립] 고구려에 불교가 오다
[오디오클립] 고구려에 불교가 오다
  • 장창호 극작가, 김동균 기자
  • 2021.10.11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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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온라인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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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울림통] 장창호가 들려주는 삼국유사 (75)

 서기 372년 고구려 제17대 소수림왕때 중국 전진(前秦)을 통해 승려 순도(順道)가 불경과 경문을 전하면서 한반도에 불교가 처음 들어 왔다고 한다. 

 소수림왕은 평양성으로 쳐들어온 백제의 정복 군주 근초고왕에 의해 부친 고국원왕이 숨지자 복수심에 불타고 있었으나 국력을 키워야만 했다. 먼저 다종교였던 나라의 마음을 한곳으로 모으기 위해 불교를 공인했다. 교육기관 태학(太學)을 세워 귀족 자제들을 유교적 정치이념에 충실한 국가 인재로 양성하고 율령을 반포해 중앙집권적 국가 기틀을 다졌다. 

 소수림왕은 고구려 최초의 사찰 초문사(肖門寺 : 성문사 省門寺, 평안남도 평양)를 세우고 승려 순도가 머물게 했다. 동진(東晉)에서 승려 아도(阿道)가 들어와 이불란사(伊佛蘭寺)를 지어 머물게 하면서 해동불법이 시작되었다고 전한다.

 백제를 견제하던 소수림왕 말기에는 북쪽에서 거란족이 침략하고 가뭄이 극심해져 백성들이 굶주려 서로 잡아먹을 지경에 이를만큼 몹시 힘들었으나 전쟁과 굶주림의 시련을 이겨내기 위해 불교.유교.율령 등 3축을 기반으로 국가체제를 다졌다 . 정리 김동균기자 justgo999@ulsanpres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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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상 보기 : 장창호TV [77] 불교가 오다 - 아! 고구려
 

1963년 7월 경남 의령군 대의면 하촌리의 마을도로 공사 중 출토돼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불상 '연가7년명금동불입상(延嘉七年銘 金銅如來立像, 국보 제119호)'의 모습. 이 불상은 높이 16.2cm인 소형 청동불상의 광배(光背) 뒷면에 연가(延嘉, 고구려 연호) 7년인 539년에 제작되었으며 낙랑(평양) 동사(東寺)의 승려들이 세상에 널리 퍼뜨리려 했던 천불(千佛)상 가운데 29번째 불상으로 이름은 인현의불(因現義佛)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1967년 덕수궁미술관에서 전시 중 되돌려 주겠다는 쪽지를 남기고 도난당했으나 12시간만에 한강철교 교각 아래 모래밭에 되찾았으나 범인을 잡지 못했다. 한국 고대 조각사의 기준작이자 한국적인 정서와 미감이 발휘된 최초의 불상이라 평가 받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1963년 7월 경남 의령군 대의면 하촌리의 마을도로 공사 중 출토돼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불상 '연가7년명금동불입상(延嘉七年銘 金銅如來立像, 국보 제119호)'의 모습. 이 고구려 불상은 높이 16.2cm인 소형 청동불상으로 광배(光背) 뒷면에 연가(延嘉, 고구려 연호) 7년인 539년에 제작돼 낙랑(평양) 동사(東寺)의 승려들이 세상에 널리 퍼뜨리려 했던 천불(千佛)상 가운데 29번째 불상으로 이름은 인현의불(因現義佛)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1967년 덕수궁미술관에서 전시 중 되돌려 주겠다는 쪽지를 남기고 이 불상을 도난당했다. 도난 12시간만에 한강 철교 교각 아래 모래밭에서 되찾으나 범인은 잡지 못했다. 한국 고대 조각사의 기준작이자 한국적인 정서와 미감이 발휘된 최초의 불상이라 평가 받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신라에 불교를 처음 전한 고구려 승려 아도(阿道)가 지은 절이라 전해지는 경기도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 정족산(鼎足山)에 있는 사찰 전등사(傳燈寺)의 대웅전(보물 제178호) 내부의 모습. '불법(佛法)의 등불을 전한다'는 뜻을 지닌 전등사는 고구려 소수림왕 때 381년에 지어져 우리나라 사찰 중 가장 오랜 창건 역사를 지닌 천년 고찰이다. 문화재청 출처
신라에 불교를 처음 전한 고구려 승려 아도(阿道)가 지은 절이라 전해지는 경기도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 정족산(鼎足山)에 있는 사찰 전등사(傳燈寺)의 대웅전(보물 제178호) 내부의 모습. '불법의 등불을 전한다'는 뜻을 지닌 전등사는 고구려 소수림왕 때 381년에 지어져 우리나라 사찰 중 가장 오랜 창건 역사를 지닌 천년 고찰이다. 문화재청 출처
전등사 대웅전 지붕 모서리 네곳에 지붕을 떠 받드는 추녀 조각상인 4개의 나부상(裸婦像, 왼쪽 위 부터 시계방향으로 남동. 남서. 북서. 북동 )의 모습. 일명 ‘참회의 나녀상’ 혹은 '대웅전을 지키는 원숭이'이라 불리는 이 나부상에는 전설이 있다. 전등사를 짓던 도편수가 어느날 인근 주막 주모와 눈이 맞았다. 도편수는 돈이 생길 때마다 훗날을 기약하며 주모에서 모두 맞겼는데 사찰이 다 지어갈때 주모가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배신을 당한 도편수는 대웅전의 처마 네곳에 벌거벗은 여인이 지붕을 떠받치는 조각을 만들었다고 한다. 문화재청 출처
전등사 대웅전 지붕 모서리 네곳에 지붕을 떠 받드는 추녀 조각상인 4개의 나부상(裸婦像, 왼쪽 위 부터 시계방향으로 남동. 남서. 북서. 북동 )의 모습. 일명 ‘참회의 나녀상’ 혹은 '대웅전을 지키는 원숭이'이라 불리는 이 나부상에는 전설이 있다. 전등사를 짓던 도편수가 어느날 인근 주막 주모와 눈이 맞았다. 도편수는 돈이 생길 때마다 훗날을 기약하며 주모에서 모두 맞겼는데 사찰이 다 지어갈때 주모가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배신을 당한 도편수는 대웅전의 처마 네곳에 벌거벗은 여인이 지붕을 떠받드는 조각을 만들었다고 한다. 문화재청 출처
전등사 약사전(보물 제179호) 내부의 모습. 문화재청 출처
전등사 약사전(보물 제179호) 내부의 모습. 문화재청 출처
고려 숙종때 만들어진 높이 1.64m, 입지름 1m의 철종(鐵鍾, 보물 제393호)의 모습. 이 종에는 '중국 하남성에 있는 백암산 숭명사의 종'이라 새겨져 있다. 일제 말기 금속류 강제수탈 때 빼앗겼다가 해방후 부평 군기창에서 발견돼 전등사에 옮겨져 보존되고 있다. 문화재청 출처
고려 숙종때 만들어진 높이 1.64m, 입지름 1m의 철종(鐵鍾, 보물 제393호)의 모습. 이 종에는 '중국 하남성에 있는 백암산 숭명사의 종'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일제 말기 금속류 강제수탈 때 빼앗겼다가 해방후 부평 군기창에서 발견돼 전등사에 옮겨져 보존되고 있다. 문화재청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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