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오클립] 자비와 장엄...이차돈의 순교
[오디오클립] 자비와 장엄...이차돈의 순교
  • 장창호 극작가, 김동균 기자
  • 2021.10.18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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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온라인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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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울림통] 장창호가 들려주는 삼국유사 (77)

 신라는 눌지왕(417~458)때 고구려 승려 아도와 묵호자로 부터 불교가 전해졌으나 뿌리 내리질 못하고 약 100년이 넘어 528년 법흥왕 때 이차돈(異次頓, 염촉 厭觸)의 순교로 비로소 공인되었다. 

 장창호 작가는 법흥왕의 처형 명령에 이차돈의 목이 베이자 흰 피가 쏟구치고 땅이 진동하며 꽃비가 내린 가운데 베어진 머리는 소금강산으로 날아가 떨어지는 기이한 일을 연기한다. 서라벌에서 신성히 여기던 천경림(天鏡林)에 절을 짓겠다는 소문이 나돌고 오랜 민간 신앙을 이어온 신하들은 왕족의 옹호를 받는 불교에 노골적인 반감을 드러냈다. 법흥왕도 왕의 뜻대로 불교를 공인하지 못하고 고민하자 이를 알아챈 하급 관리 이차돈이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내어 놓키로 했던것이다. 

 이차돈의 순교를 계기로 불교를 공인한 법흥왕은 율령을 반포하고 국가 통치이념을 강건히 세웠다. 사사건건 왕의 뜻을 거슬린 귀족들을 꺽고 유리한 고지를 차지한것이다. 왕은 이차돈이 순교한 소금강 산자락에 백률사(栢栗寺, 경주시 동천동)를 세워 그의 순교를 기리게 되었다. 정리 김동균기자 justgo999@ulsanpres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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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상 보기 : 장PD [82] 이차돈의 순교 3 - 자비와 장엄

이차돈이 순교한후 290년이 지난 817년 신라 41대 헌덕왕이 경주 백률사에 세웠으나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옮겨진 이차돈 순교비의 모습. 김동균기자 justgo999@ulsanpress.net
이차돈이 순교한지 290년이 흐른 817년 신라 41대 헌덕왕이 경주 백률사에 세운 이차돈 순교비는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옮겨져 전시되고 있다. 김동균기자 justgo999@ulsanpress.net

 

경주 동천동 소금강 산자락의 백률사 대웅전의 모습. 백률사는 이차돈이 순교후 법흥왕이 세운 차주사(刺楸寺)와 관련이 있을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문화재청 출처
경주 동천동 소금강 산자락의 백률사 대웅전의 모습. 백률사는 이차돈이 순교후 법흥왕이 세운 차주사(刺楸寺)와 관련이 있을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문화재청 출처
백률사 대웅전에서 1930년에 옮겨져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된 금동약사여래입상(국보 제28호)의 모습. 경주 불국사의 금동비로자나불좌상과 금동아미타여래좌상과 함께 통일신라시대 3대 금동불상으로 당대의 최대 크기로 높이가 1m 77이다. 원래 불상에는 금을 입혔으나 지금은 벗겨졌고 두 손 또한 절단되어 없다. 김동균기자 justgo999@ulsanpress.net
경주 백률사 대웅전에서 1930년에 옮겨져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된 금동약사여래입상(국보 제28호)의 모습. 경주 불국사의 금동비로자나불좌상과 금동아미타여래좌상과 함께 통일신라시대 3대 금동불상으로 당대의 최대 크기로 높이가 1m 77이다. 원래 불상에는 금을 입혔으나 지금은 벗겨졌고 두 손 또한 절단되어 없다. 김동균기자 justgo999@ulsanpress.net

 

삼국유사 권3 제3 법흥 '원종흥법 염촉멸신(原宗興法 厭髑滅身)' 조에 기록된 22살의 하급관리 염촉(이차돈)이 자신을 희생해 불법의 이익을 깨닫는 내용. 규장각 본 /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사진출처[그는] 죽백(竹栢)과 같이 [곧은] 자질을 드러내고 수경(水鏡)과 같이 [맑은] 뜻을 품었으며, 적선(積善)한 이의 증손으로서 조정의 중심(爪牙)으로 촉망되고, 성조(聖朝)의 충신으로 태평성대(河淸)의 시종이 되기를 바랐다. 그때 나이 스물두 살로 사인 (신라 관작에 대사(大舍), 소사(小舍) 등이 있었는데, 대개 하사(下士)의 등급이다) 의 자리에 있었다.용안(龍顔)을 우러러보고 [왕의] 뜻을 눈치 채고 아뢰기를, “신이 들으니 옛사람은 비천한 사람(蒭蕘)에게도 계책을 물었다고 하니, 중죄를 피하지 않고 [대왕의 뜻을] 여쭙기를 원합니다”고 하였다. 왕이 말하기를, “네가 할 바가 아니다”고 하였다. 사인이 말하기를, “나라를 위하여 몸을 희생하는 것은 신하의 큰 절개이며, 임금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것은 백성의 바른 의리입니다. 사령을 그릇되게 전했다고 하여 신을 형벌하여 머리를 벤다면 만민이 모두 복종하여 감히 지시를 어기지 못할 것입니다”고 하였다. 왕이 말하기를, “살을 베어 저울에 달더라도 한 마리 새를 살리려고 했고, 피를 뿌리고 목숨을 끊어서라도 일곱 마리의 짐승을 스스로 불쌍히 여겼다. 나의 뜻은 사람을 이롭게 하려는 것인데, 어찌 죄 없는 사람을 죽이겠느냐? 네가 비록 공덕을 짓는다고 할지라도 죄를 피하는 것만 못할 것이다”고 하였다. 사인이 말하기를, “모든 것이 버리기 어렵지만 제 목숨보다 더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소신이 저녁에 죽어 아침에 대교가 행해진다면, 불일(佛日)이 다시 중천에 오르고 성주(聖主)께서는 길이 편안하실 것입니다”고 하였다. 왕이 말하기를, “난새와 봉새의 새끼는 어려서도 하늘을 뚫을 듯한 마음이 있고, 기러기와 따오기의 새끼는 나면서부터 바다를 건널 기세를 품었다고 하더니 네가 이와 같구나. 가히 대사(大士)의 행이라고 할 만하다”고 하였다. 이에 대왕은 일부러 위의를 갖춰 바람 같은 조두(風刁)를 동서로 늘이고 서릿발 같은 무기를 남북에 벌여 놓고 여러 신하들을 불러 묻기를, “그대들은 내가 정사(精舍)를 지으려고 하는데 고의로 지체시키는가?” 향전에 이르기를, “염촉이 왕명이라고 하면서 공사를 일으켜 절을 창건한다는 뜻을 전했더니 여러 신하들이 와서 간하였다.挺竹栢而爲質抱水鏡而爲志, 積善曽孫望宫内之爪, 聖朝忠臣企河清之登侍. 時年二十二當充舎人 羅爵有大舎·小舎等, 盖下士之秩.. 瞻仰龍顔知情擊目奏云, “臣聞古人問策蒭蕘, 願以危罪啓諮.” 王曰 “非爾所爲.” 舎人曰 “爲國亡身臣之大節, 爲君盡命民之直義, 以謬傳辭刑臣斬首, 則萬民咸伏不敢違敎.” 王曰 “解肉枰軀將贖一鳥, 洒血摧命自怜七獸. 朕意利人, 何殺無罪. 汝雖作㓛德不如避罪.” 舎人曰 “一切難捨不過身命. 然小臣夕死大敎朝行, 佛日再中聖主長安.” 王曰 “鸞鳳之子㓜有凌霄之心, 鴻鵠之児生懷截波之勢, 爾得如是. 可謂大士之行乎.” 於焉大王權整威儀, 風刁東西霜仗南北, 以召群臣乃問, “卿等於我欲造精舎故作留難 郷傳云, “髑爲以王命傳下㒷工創寺之意, 羣臣來諌. /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출처* 염촉 (厭髑) : 이차돈 (異次頓)
삼국유사 권3 제3 법흥 '원종흥법 염촉멸신(原宗興法 厭髑滅身)' 조에 기록된 22살의 하급관리 염촉(이차돈)이 자신을 희생해 불법의 이익을 깨닫는 내용. 규장각 본 /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사진출처[그는] 죽백(竹栢)과 같이 [곧은] 자질을 드러내고 수경(水鏡)과 같이 [맑은] 뜻을 품었으며, 적선(積善)한 이의 증손으로서 조정의 중심(爪牙)으로 촉망되고, 성조(聖朝)의 충신으로 태평성대(河淸)의 시종이 되기를 바랐다. 그때 나이 스물두 살로 사인 (신라 관작에 대사(大舍), 소사(小舍) 등이 있었는데, 대개 하사(下士)의 등급이다) 의 자리에 있었다.용안(龍顔)을 우러러보고 [왕의] 뜻을 눈치 채고 아뢰기를, “신이 들으니 옛사람은 비천한 사람(蒭蕘)에게도 계책을 물었다고 하니, 중죄를 피하지 않고 [대왕의 뜻을] 여쭙기를 원합니다”고 하였다. 왕이 말하기를, “네가 할 바가 아니다”고 하였다. 사인이 말하기를, “나라를 위하여 몸을 희생하는 것은 신하의 큰 절개이며, 임금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것은 백성의 바른 의리입니다. 사령을 그릇되게 전했다고 하여 신을 형벌하여 머리를 벤다면 만민이 모두 복종하여 감히 지시를 어기지 못할 것입니다”고 하였다. 왕이 말하기를, “살을 베어 저울에 달더라도 한 마리 새를 살리려고 했고, 피를 뿌리고 목숨을 끊어서라도 일곱 마리의 짐승을 스스로 불쌍히 여겼다. 나의 뜻은 사람을 이롭게 하려는 것인데, 어찌 죄 없는 사람을 죽이겠느냐? 네가 비록 공덕을 짓는다고 할지라도 죄를 피하는 것만 못할 것이다”고 하였다. 사인이 말하기를, “모든 것이 버리기 어렵지만 제 목숨보다 더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소신이 저녁에 죽어 아침에 대교가 행해진다면, 불일(佛日)이 다시 중천에 오르고 성주(聖主)께서는 길이 편안하실 것입니다”고 하였다. 왕이 말하기를, “난새와 봉새의 새끼는 어려서도 하늘을 뚫을 듯한 마음이 있고, 기러기와 따오기의 새끼는 나면서부터 바다를 건널 기세를 품었다고 하더니 네가 이와 같구나. 가히 대사(大士)의 행이라고 할 만하다”고 하였다. 이에 대왕은 일부러 위의를 갖춰 바람 같은 조두(風刁)를 동서로 늘이고 서릿발 같은 무기를 남북에 벌여 놓고 여러 신하들을 불러 묻기를, “그대들은 내가 정사(精舍)를 지으려고 하는데 고의로 지체시키는가?” 향전에 이르기를, “염촉이 왕명이라고 하면서 공사를 일으켜 절을 창건한다는 뜻을 전했더니 여러 신하들이 와서 간하였다.挺竹栢而爲質抱水鏡而爲志, 積善曽孫望宫内之爪, 聖朝忠臣企河清之登侍. 時年二十二當充舎人 羅爵有大舎·小舎等, 盖下士之秩.. 瞻仰龍顔知情擊目奏云, “臣聞古人問策蒭蕘, 願以危罪啓諮.” 王曰 “非爾所爲.” 舎人曰 “爲國亡身臣之大節, 爲君盡命民之直義, 以謬傳辭刑臣斬首, 則萬民咸伏不敢違敎.” 王曰 “解肉枰軀將贖一鳥, 洒血摧命自怜七獸. 朕意利人, 何殺無罪. 汝雖作㓛德不如避罪.” 舎人曰 “一切難捨不過身命. 然小臣夕死大敎朝行, 佛日再中聖主長安.” 王曰 “鸞鳳之子㓜有凌霄之心, 鴻鵠之児生懷截波之勢, 爾得如是. 可謂大士之行乎.” 於焉大王權整威儀, 風刁東西霜仗南北, 以召群臣乃問, “卿等於我欲造精舎故作留難 郷傳云, “髑爲以王命傳下㒷工創寺之意, 羣臣來諌. /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출처* 염촉 (厭髑) : 이차돈 (異次頓)
왕은 이에 노하여 염촉을 책망하고, 왕명을 거짓으로 꾸며 전하였다고 하여 형벌을 가하였다”고 하였다.라고 하였다. 이에 여러 신하들이 전전긍긍하며 황급히 맹서하고 손가락으로 동서를 가리켰다.  왕이 사인을 불러 힐문하니, 사인은 얼굴빛이 변하면서 대답할 말이 없었다.  대왕이 분노하여 그의 목을 베라고 명령하니 유사(有司)가 [그를] 묶어 관아로 끌고 왔다.  사인이 발원하고 옥리(獄吏)가 목을 베니 흰 젖이 한 길이나 솟아올랐다.  향전에는 사인이 맹세하기를, “대성법왕(大聖法王)께서 불교를 일으키려고 하므로 [저는] 신명을 돌보지 않고 인연을 모두 버리니 하늘에서는 상서를 내려 사람들에게 두루 보여주소서”라고 하니,  이에 그의 머리가 날아가서 금강산(金剛山) 꼭대기에 떨어졌다고 하였다. 하늘은 사방이 침침해지고 사양(斜陽)이 빛을 감추고, 땅이 진동하면서 꽃비가 내렸다.  성왕(聖人)은 슬퍼하여 눈물이 곤룡포를 적시고, 재상은 근심하여 조관(蟬冕)에까지 땀이 흘렀다.  샘물이 갑자기 마르매 고기와 자라가 다투어 뛰고, 곧은 나무가 먼저 부러지니 원숭이가 떼를 지어 울었다.  춘궁(春宮)에서 말고삐를 나란히 했던 친구들은 피눈물을 흘리며 서로 돌아보고, 월정(月庭)에서 소매를 맞잡던 친구들은 창자가 끊어지듯 이별을 애석해 하였다. 상여를 바라보며 장송곡을 듣는 이들은 마치 부모를 잃은 듯하였다.  모두들 말하기를, “개자추(子推 )가 다리 살을 벤 것도 이 고절(苦節)에 비할 수 없고, 홍연(弘演)이 배를 가른 일인들 어찌 이 장렬함에 견주랴.  이는 임금님(丹墀)의 신앙력을 붙들어 아도(阿道)의 불심을 이룬 성자(聖者)다”고 하였다. 드디어 북산의 서쪽 고개 즉, 금강산이다.  전(傳)에서는 머리가 날아가 떨어진 곳에 장사지냈다고 하였는데, 여기에 밝히지 않은 것은 무슨 까닭인지?에 장사지냈다.  나인(內人)들은 이를 슬퍼하여 좋은 터를 잡아서 난야(蘭若)를 짓고, 이름을 자추사(刺楸寺)라고 하였다.  이에 집집마다 예를 하면 반드시 대대로 영화를 얻고, 사람마다 도를 닦으면 마땅히 불법의 이익을 깨닫게 되었다.王乃責怒於髑, 刑以僞傳王命..” 於是羣臣戰戰兢懼倊侗作誓指手東西. 王喚舎人而詰之, 舎人失色無辭以對. 大王忿怒勑令斬之, 有司縳到衙下. 舎人作誓, 獄吏斬之, 白乳湧出一丈 郷傳云, 舎人誓曰, “大聖法王欲㒷佛敎, 不顧身命多却結縁, 天垂瑞祥遍示人庻.” 於是其頭飛出落於金剛山頂云云.. 天四黯黲斜景爲之晦明, 地六震動雨花爲之飄落. 聖人哀戚沾悲淚於龍衣, 冢宰憂傷流輕汗於蟬冕. 甘泉忽渴魚鼈爭躍, 直木先折猿猱群鳴. 春宫連鏕之侣泣血相顧, 月庭交䄂之朋断膓惜别. 望柩聞聲如䘮考妣. 咸謂子推割股未足比其苦節, 弘演刳腹詎能方其壯烈. 此乃扶丹墀之信力咸阿道之本心聖者也. 遂乃葬北山之西嶺 即金剛山也. 傳云頭飛落處因葬其地, 今不言何也.. 内人哀之卜勝地造蘭若, 名曰刺楸寺. 於是家家作禮必獲世榮, 人人行道當曉法利.
왕은 이에 노하여 염촉을 책망하고, 왕명을 거짓으로 꾸며 전하였다고 하여 형벌을 가하였다”고 하였다.라고 하였다. 이에 여러 신하들이 전전긍긍하며 황급히 맹서하고 손가락으로 동서를 가리켰다. 왕이 사인을 불러 힐문하니, 사인은 얼굴빛이 변하면서 대답할 말이 없었다. 대왕이 분노하여 그의 목을 베라고 명령하니 유사(有司)가 [그를] 묶어 관아로 끌고 왔다. 사인이 발원하고 옥리(獄吏)가 목을 베니 흰 젖이 한 길이나 솟아올랐다. 향전에는 사인이 맹세하기를, “대성법왕(大聖法王)께서 불교를 일으키려고 하므로 [저는] 신명을 돌보지 않고 인연을 모두 버리니 하늘에서는 상서를 내려 사람들에게 두루 보여주소서”라고 하니, 이에 그의 머리가 날아가서 금강산(金剛山) 꼭대기에 떨어졌다고 하였다. 하늘은 사방이 침침해지고 사양(斜陽)이 빛을 감추고, 땅이 진동하면서 꽃비가 내렸다. 성왕(聖人)은 슬퍼하여 눈물이 곤룡포를 적시고, 재상은 근심하여 조관(蟬冕)에까지 땀이 흘렀다. 샘물이 갑자기 마르매 고기와 자라가 다투어 뛰고, 곧은 나무가 먼저 부러지니 원숭이가 떼를 지어 울었다. 춘궁(春宮)에서 말고삐를 나란히 했던 친구들은 피눈물을 흘리며 서로 돌아보고, 월정(月庭)에서 소매를 맞잡던 친구들은 창자가 끊어지듯 이별을 애석해 하였다. 상여를 바라보며 장송곡을 듣는 이들은 마치 부모를 잃은 듯하였다. 모두들 말하기를, “개자추(子推 )가 다리 살을 벤 것도 이 고절(苦節)에 비할 수 없고, 홍연(弘演)이 배를 가른 일인들 어찌 이 장렬함에 견주랴. 이는 임금님(丹墀)의 신앙력을 붙들어 아도(阿道)의 불심을 이룬 성자(聖者)다”고 하였다. 드디어 북산의 서쪽 고개 즉, 금강산이다. 전(傳)에서는 머리가 날아가 떨어진 곳에 장사지냈다고 하였는데, 여기에 밝히지 않은 것은 무슨 까닭인지?에 장사지냈다. 나인(內人)들은 이를 슬퍼하여 좋은 터를 잡아서 난야(蘭若)를 짓고, 이름을 자추사(刺楸寺)라고 하였다. 이에 집집마다 예를 하면 반드시 대대로 영화를 얻고, 사람마다 도를 닦으면 마땅히 불법의 이익을 깨닫게 되었다.

王乃責怒於髑, 刑以僞傳王命..” 於是羣臣戰戰兢懼倊侗作誓指手東西. 王喚舎人而詰之, 舎人失色無辭以對. 大王忿怒勑令斬之, 有司縳到衙下. 舎人作誓, 獄吏斬之, 白乳湧出一丈 郷傳云, 舎人誓曰, “大聖法王欲㒷佛敎, 不顧身命多却結縁, 天垂瑞祥遍示人庻.” 於是其頭飛出落於金剛山頂云云.. 天四黯黲斜景爲之晦明, 地六震動雨花爲之飄落. 聖人哀戚沾悲淚於龍衣, 冢宰憂傷流輕汗於蟬冕. 甘泉忽渴魚鼈爭躍, 直木先折猿猱群鳴. 春宫連鏕之侣泣血相顧, 月庭交䄂之朋断膓惜别. 望柩聞聲如䘮考妣. 咸謂子推割股未足比其苦節, 弘演刳腹詎能方其壯烈. 此乃扶丹墀之信力咸阿道之本心聖者也. 遂乃葬北山之西嶺 即金剛山也. 傳云頭飛落處因葬其地, 今不言何也.. 内人哀之卜勝地造蘭若, 名曰刺楸寺. 於是家家作禮必獲世榮, 人人行道當曉法利. /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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